한국일보

트럼프 나라에 무슨 일이?

2018-04-09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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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나라에 무슨 일이?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요즈음 거의 모든 이들은 미국을 하나로 묶어주던 이음새가 찢겨졌다는(합리적)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정치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은 여러 갈래로 찢어졌다: 정치적 양극화는 소득불균형의 심화에 기인한 경제적 양극화와 보조를 맞춰 진행됐다.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는 강력한 지리적 배경을 갖고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 태평양과 대서양 양안에 위치한 미국의 대형 도시들은 지난 70년대 이래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진 반면 그 이외의 다른 지역들은 뒤처졌다.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부유한 지역들은 대부분 힐러리 클린턴에게 투표했고, 낙후지역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미국 양안 도시들이 모든 면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한 듯 보이는 메트로폴리탄 지역 내에도 경제적으로 좌초한 빈곤층 주민들이 적지 않다.

실질적이고 심각한 현안 가운데 하나인 주택가격 급등의 배경에도 지역이기주의(Niimbyism)가 큰 그림을 이루고 있다.

지역적 경제력 차이는 분명히 실재하며,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차이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이런 차이를 이루는 배경은 무엇일까? 도대체 트럼프를 지지했던 ‘레드 스테이트’(red states)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지역 격차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세계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은 최고의 부국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수백만 명의 농부들을 거느린 국가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기 혹은 실내 화장실도 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1970년까지 이런 차이는 급속히 폭을 좁혀갔다.

미국에서 가장 빈곤한 주인 미시시피주를 예로 들어보자. 1930년대, 미시시피주의 1인당 소득은 매사추세츠주의 주민 1인당 평균 소득의 30%에 불과했다.

1970년대에 이르면 이 수치는 70%까지 올라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득격차가 아마도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격차축소 과정에 역류현상이 일어났다. 오늘날 미시시피의 주민 1인당 소득은 매사추세츠주 주민 1인당 소득의 55%에 불과하다.

이를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미시시피주와 미국 연안도시들 사이의 소득격차는 시실리와 북 이탈리라 사이의 수입 격차만큼이나 크게 벌어진 셈이다.

이는 미시시피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오스틴과 글래서의 새로운 보고서와 서머즈의 다큐먼트는 주민당 소득의 지역격차 수렴이 완전히 멈춰섰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상대적 쇠퇴를 보이는 지역들은 점증하는 사회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일하지 않는 노동적령기 남성의 비율과 사망률이 치솟고 있고 사망률과 아편 소비율도 올라가는 중이다.

사족 하나. 이런 식의 상황발전은 윌리엄 윌슨이 맞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일리엄은 비 백인 이너시티 빈곤층지역에 만연된 사회병폐는 아프리카-아메리칸 문화의 불가사의한 결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요인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블루칼라 일자리가 사라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사실 농촌지역 백인들도 이와 비슷한 경제적 기회 상실에 직면하자 유사한 사회적 해체를 겪었다.

그렇다면 트럼프 나라의 문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버클리대학의 엔리코 모레티가 밝힌 견해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가 2012년에 발간한 ‘일자리 신 지리학‘(The New Geography of Jobs)이라는 책은 미국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다.

모레티는 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산업이 이득을 보게 됐다고 지적하고 이런 산업체들은 맞춤한 노동자 후보들이 밀집한 지역에서 가장 큰 성과를 올렸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여기에 해당하는 지역들은 성장의 선순환을 경험했다: 지식집약적 산업이 번성하면서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자들의 유입을 촉진했고, 이는 다시 그들이 지닌 이점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했다.

이와 동시에 교육정도가 낮은 인력으로 출발한 지역들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낙후 지역들이 잘못된 산업을 육성했고, 이로 말미암아 일자리를 찾지 못한 고급인력들의 엑소더스로 두뇌유출 사태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같은 구조적 요인들도 분명 중요한 스토리이겠지만 나는 여기에 보태 자기파괴적인 정치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오스틴 엣 알(Austin et al.) 보고서는 낙후 지역들을 지원대상에 추가하는 국가 정책의 타당성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낙후지역 지원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수용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연방정부가 비용의 상당부분을 분담하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일자리를 창출함에도 불구하고 메디케이드 확대에 반대한 주정부들의 대다수가 미국의 극빈지역에 포진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교적 부유했던 캔사스주와 오클라호마주와 같은 일부 주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1970년 이후 크게 뒤쳐졌고, 주정부가 앞장서 경기진작을 겨냥한 과감한 감세를 시행했지만 이로 인해 경기침체가 촉발됐고 결국 눈더미 같이 불어난 예산적자로 교육시스템까지 완전히 망가지는 파국을 맞았다.

이처럼 캔사스주와 오클라호마주를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외부적 요인이었으나 그들은 그곳에서 탈출하기는커녕 그들 스스로 구덩이를 더욱 깊게 팠다.

국가정책 차원에서 점을 인정하자: 트럼프 지지 주들은 사실상 그들 자신의 빈곤화에 표를 던졌다.

전후 지역격차 축소에는 뉴딜 프로그램과 공공투자가 큰 역할을 했다. 정부를 축소하려는 보수적 차원의 노력은 미국민 전체에 해를 가할 것이나 그중에서도 공화당 득세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점차 커지는 지역적 간극을 좁히는 것은 현명한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의 지역격차는 현 행정부가 실제로 시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련의 정책들에 의해 더욱 악화될 것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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