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힘 못 쓰는 ‘FAANG’

2018-04-0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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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인터넷 샤핑몰인 아마존의 원래 이름은 ‘카다브라’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자꾸 ‘시체’(cadaver)로 오인하는 바람에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개명을 결심하고 새 이름을 찾던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인 아마존에 착안했다.

아마존 숲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없는 물건이 없는 곳’이라는 상징성도 있는데다 상호가 A로 시작할 경우 알파벳 리스트에서 제일 먼저 올라온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미 최대 소매업소지만 아마존의 시작은 미미했다. 프린스턴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월가에서 일하다 시애틀로 이사한 제프 베조스는1994년 자기 집 차고에 자그마한 인터넷 책 가게를 차렸다. 사업이 번창하자 책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비디오, 오디오 등 영역을 늘려갔고 급기야 오늘날 안 파는 것이 없는 소매 왕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아마존은 2015년 시가로 당시까지 최대던 월마트를 제쳤고 현재 시장 가치로는 세계 1위, 매출로는 알리바바에 이어 2위의 인터넷 판매업체다.

1999년 타임은 베조스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으며 올 초 베조스는 만년 부자 랭킹 1위 빌 게이츠를 제치고 최고 부자가 됐다. 포브스는 올 3월 그의 재산을 1,120억 달러로 추산하고 최고 갑부의 반열에 올려놨다. 개인 재산이 1,000억 달러가 넘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러나 좋은 일은 오래 가지 않는 법인가. 그가 최고 갑부로 등극한 후 지난 한 달 간 아마존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다. 지난 3월 9일 1,580달러에 육박하던 아마존은 그 후 계속 추락하더니 2일 떨어진 1,372 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최고치에 비해 12% 넘게 하락한 셈으로 베조스의 재산도 1,000억 달러 아래로 내려갔을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마존만이 아니다. 소위 신 대세 기업으로 미국 증시를 주도하고 있는 페이스북, 애플, 넷플릭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등이 모두 맥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들을 머릿 글자를 따 ‘FAANG’이라고 부른다. ‘송곳니’라는 뜻의 ‘FANG’과 발음이 같다. 이들 기업 주가 하락으로 지난 3월초부터 지금까지 증시에서 증발한 시가 총액만 3,970억 달러에 달한다. 웬만한 나라 1년 GDP와 맞먹는 액수다.

이들이 추락한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아마존이 약세를 보이는 것은 트럼프의 계속된 트위터 협박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 수년간 주가가 지나치게 오른 것이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2015년 1월 300달러가 채 안 되던 아마존 주가는 지난 3월 초 1,500달러가 넘었으니까 3년 사이 다섯배가 오른 셈이다. 마치 1990년대말부터 2000년 초까지 게속된 닷컴 버블을 연상케 한다. 단 그 때와 다른 점은 그 때는 수익도 없는 회사 주식들이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지금 아마존은 확실히 이익을 내고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회사라는 점이다.


테슬라는 자율 주행차 사고와 관련, 전국 교통 안전위원회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 5.1% 하락했고 페이스북은 사용자 데이타 부실 관리가 도마에 오르면서 2.8% 내려갔다.

이들 주식의 폭락은 기술주의 동반 하락을 불러 세미콘 제조회사인 AMD는 5.2%, 비디오 게임업체인 액티비전 블리저드는 3.5%, 네트워크 기어 제조회사인 시스코는 4.4% 추락을 면치 못했다.

이들 기업의 향후 전망에 관해서는 늘 그렇듯 견해가 엇갈린다. 낙관적인 증시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의 올 이익 성장율이 22%로 S&P500 기업 평균 17%를 웃돌 것이라며 페이스북은 작년 53%, 애플 46%, 알파벳 33%가 올랐는데 올 초 시작된 하락은 이에 대한 자연스런 조정이라 보고 있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지금 미국 주식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과대 평가돼 있고 하이텍 주식일수록 더 그렇다며 닷컴 버블의 재판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주가 등락폭을 재는 변동성 지수가 근래 보기 드물게 높아지고 있는 것도 위험 신호라는 것이다.

이들 하이텍 주가가 일시 조정에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지속적인 하락이 계속될 경우 전체 주식 시장 침체와 경기 불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 동향에 누구도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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