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수진영에 투입된 전과자

2018-04-02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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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에 투입된 전과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지난 2010년, 매시 에너지가 운영하는 탄광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29명의 남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와 관련, 매시 에너지의 전 최고경영자(CEO) 돈 블랑켄십은 2015년 탄광 안전기준 위반과 관련한 공모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러나 블랑켄십은 올해 중간선거에 웨스트버지니아의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올해 중간선거에서 공직에 출마하는 공화당계 전과자는 모두 4명으로 이들 대부분이 예비경선을 통과해 무난히 당의 후보지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외에 확실한 비리혐의에 직면한 상태에서 보란 듯 공화당 예비선거를 통과한 역대 정치인들로 명단의 범위를 확대하면 로이 무어에서부터 도널드 트럼프까지 숫한 이름이 추가된다.

물론 부정한 민주당 정치인들도 한둘이 아니지만,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리혐의가 터져 나오기 무섭게 정치생명이 끝장났다.

이에 비해 요즘 공화당 내부에서는 특이한 광경이 연출된다. 사기꾼이건 전과자이건 아니면 그보다 더 형편없는 인물이건 간에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은 개운치 않은 이력에도 불구하고 골수당원들로부터 강력하고 지속적인 지지를 끌어 모으고 있다.

예를 들어 무어는 앨라배마 보궐선거에서 박빙의 차이로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지만 공화당계 유권자표의 91%를 독식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집권 1기인 현 시점에서의 인기도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공화당의 기반세력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런 현상으로 말미암아 당 내부에서도 적대국과의 유착의혹을 포함한 트럼프의 크고 작은 국정농단에 책임을 물으려들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공공연하게 털어놓았다.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작금의 공화당에 사기꾼들이 수두룩하게 포진하고 있고, 그들이 당 내부의 힘겨루기에서 위세를 떨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니, 그와 정반대로 블랑켄십, 혹은 트럼프와 같은 인물의 성공은 지난 수십 년간 공화당이 추종해온 정치적 전략에서 파생된 필연적 결과다.

레이건 이후 공화당이 미국인 유권자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는 것은 단순한 진실이다.

공화당의 지속적이면서도 변함없는 정책은 고소득계층에 혜택이 편중된 소득재분배다.

사회안전망을 약화시켜가면서 부유층의 세금을 줄여주는 것 역시 그들의 주된 의제다.

물론 인기 없는 아젠다이다. 미국인의 일부만이 부유층 감세를 지지한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적은 극소수가 주요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축소를 원한다.

공화당은 부분적으로 그들의 현실적 정책 아젠더를 부인하는 방법으로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위대한 미국’이라는 전통적인 사회적 가치를 옹호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표심을 잡았다. 한마디로 인종주의를 부추겨 선거에서의 승리를 챙긴 셈이다.

이처럼 거물 사기꾼에 대한 지속적인 의존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화당 지도부와 지지기반 모두에 강력한 선별효과를 가져왔다.

당의 정치 게임을 쫓아가기 위해선 말과 행동이 다른 처신이 요구되기 때문에 여기에 익숙해진 공화당 정치인들 중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사기꾼들이 많다. 당의 지지기반도 사기꾼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이를 테면 “바로 저런 사람들이 문제”라는 정치인들의 주장에 쉽게 넘어가고, 공화당 아젠더가 그들에게 얼마나 해가 되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어리숙한 유권자들이 골수지지층의 태반을 차지한다.

한마디로 트럼프주의가 일어날 수밖에 없게끔 운명 지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조잡한 인종주의와 낯뜨거운 부정직은 수 십년 간 그의 소속정당이 유권자들을 상대로 판매해온 상품의 과장된 버전이고,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 저소득 가정의 의료보험 박탈 등과 같은 그의 주요 정책 아젠더는 공화당의 정통 의제와 다를 바 없다.

그의 보호무역주의조차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공화당의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지 W. 부시는 철강에 관세를 부과했고, 레이건은 일본산 자동차 수입을 제한했다.

부유층 감세는 공화당의 근본 원칙인 반면 자유무역은 그렇지 않다.

공화당 정치행태가 거물 사기꾼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틀지어졌는지 일단 깨닫게 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추측이 따라 나온다.

첫째, 내부로부터의 구속(redemption)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원칙을 지닌 도덕적 정치인들이라면 트럼프 따위의 사기꾼들로부터 당을 회수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지기반이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공화당은 정직한 자들의 나라가 아니다.

사기꾼들은 당이 거듭해서 선거에서 완패를 하지 않는 한, 줄기차게 지배력을 행사해가며 정치적 광야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둘째, 당은 그러나 실제로는 취약성을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유권자들이 사기꾼을 알아볼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민망스런 스캔들이 아닌 오바마케어에 대한 공화당의 공격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뒷배경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11월, 민주당은 이 같은 반발기류에 힘입어 연방의회 상하양원의 지배력뿐 아니라 많은 주정부까지 수중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시나리오가 불발한다면? 바로 여기서 당신이 무서워하는 세 번째 추론이 나온다. 즉 현재 공화당이 펼치는 게임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민주주의에 대한 편견이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당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챈 유권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한 가지 방법은 그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유권자 억압과 정도를 벗어난 게리맨더링은 이미 공화당 핵심전략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우리가 목도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만약 공화당 지도부가 역겨운 선거조작을 망설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제까지 그들을 눈여겨 지켜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그런 올바른 공화당 정치인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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