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와 무역, 그리고 좀비들

2018-03-26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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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무역, 그리고 좀비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대니얼 페니트릭 모이니한은 거의 40년 전 “공화당이 정책 정당으로 변모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한 가지 내용만 수정하면 그의 발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늘날 공화당은 벌써 오래 전에 죽었어야 했을 산송장들이 어기적거리고 돌아다니며 정치인들의 뇌를 파먹는 좀비들의 정책 정당이다.

이들 좀비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독트린은 부유층 감세가 경제적 기적을 가져오는 반면 이들에 대한 세금인상은 재앙의 레시피라는 “공급측면”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공급측면 경제학에 대한 이들의 무한 신뢰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증세에 뒤이은 호황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조지 W. 부시의 감세 이후 궁극적인 재앙으로 연결된 미적지근한 경기회복, 캔사스주의 감세 실험 대실패 등에도 불구하고 힘을 잃지 않았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가 래리 커들로를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원장으로 발탁한 것은 ‘감세 좀비’가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커들러는 감세의 무한한 미덕을 신봉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신념에 바탕한 그의 경기전망들은 언젠가 뉴욕매거진의 조너던 체이트가 지적했듯 빗나간 정도가 너무나 심해 마치 실수투성이의 공연예술을 보는 듯하다.

경제정책에는 세금 이상의 것이 있다; 의회가 그에게 송부한 감세안에 무조건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트럼프조차 감세보다는 국제 정책, 특히 무역적자라는 악마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바로 그곳이 흥미를 돋우는 지점이다.

알다시피 ‘세계화 지지자’인 게리 콘이 떠나면서 이제 트럼프에게 국제경제학에 관해 조언을 해줄 사람은 다른 분야의 보좌관들과 마찬가지로 좀비 아이디어에 사로잡힌 인물뿐이다.

그러나 좀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사실 두 부류가 존재하지만 이들 모두 그릇된 아이디어를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의 잘못은 거의 완전히 방향이 다르다.

국제교역문제만 놓고 보자면 트럼프월드는 좀비 내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쪽 편에는 트럼프의 무역 짜르인 피터 나바로를 비롯한 신중상주의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국제 무역을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로 바라본다: 무역흑자국은 이긴 것이고, 적자국은 패자라는 식이다.

그러나 논리와 역사는 이런 견해를 넌센스(non-sense)라고 부른다. 무역흑자는 때론 약점이고, 무역적자가 힘의 신호일 때도 간혹 있다.(수학적인 면에서 해외투자액보다 외국인들의 국내투자가 더 많으면 무역적자를 내게 된다).


게다가 신중상주의자들은 부가세의 역할에 대해 상습적으로 조잡한 오해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트럼프의 귀를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돌과 트럼프의 머릿속에 있는 구멍이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들은 트럼프에게 그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일러준다. 왜냐하면 그들의 착오는 그의 직감과 기막히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책에 관한 한 그는 따로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교역과 관련해 트럼프에게 위험한 넌센스를 주입하는 무리는 그들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신금본위지지자들(neo-goldbuds)라 불러 무방한 자들의 집합소다.

이들은 국력을 통화의 힘으로 측정하려는 자들로, 강한 달러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지 않으려들며 달러화 약세를 필요로 하는 그 어떤 이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중상주의처럼, 혹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공급측면 경제학처럼, 이런 견해는 벌써 수차례 깨어졌고, 나 역시 1987년에 이를 반박하는 글을 쓴 바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살아남아 산송장처럼 어기적거리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의 편견에 어필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행정부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신금본위지지자는 트럼프 휘하이긴 하지만 막강한 정책결정 영향력을 쥐고 있는 데이비드 말파스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다.

베어 스턴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말파스는 커들로와 마찬가지로 줄기차가 빗나간 경기 전망과 처방을 제시했던 인물이다.

그는 2011년 발표한 기고문을 통해 미국 경제가 앓고 있는 병을 치유할 처방은 강력한 달러(와 더 높은 이자율)라고 선언했다.

그건 분명 기이한 주장이었다. 당시 실업률이 9%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기에 달러화 강세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을 것이다. 왜냐하면 달러화 강세는 미국산 제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무역적자를 늘리게 되는데,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에서 무역적자는 국내 상품과 용역의 수요를 축소시키는 완벽한 악당의 역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들로는 말파스의 견해를 공유하는 듯 보인다. 실상 트럼프에 의해 기용된 후 뉴스거리가 될 만한 그의 첫 번째 발언은 트럼프가 미국의 허약함을 보여주는 신호라 여기는 무역적자를 더욱 악화시킬 강한 달러화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트럼프는 왜 국제경제정책에 관해 이처럼 상충된 견해를 지닌 자들을 고용한 것일까?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가 내부 충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다양한 이슈들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터이다.

게다가 논쟁의 양쪽 편에 선 인사들은 그들 모두를 트럼프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는, 무지에 대한 강력한 편향성을 공유한다.

어쨌건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국제무역과 관련, 죽기를 거부하는 두 세트의 불량한 아이디어 사이의 싸움인 좀비들의 전투를 앞두고 있다.

자, 이제 시작이다. 팝콘 좀 줄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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