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서 드문 북미정상회담 기대론은 ‘김정은의 경제목표’에 주목

2018-03-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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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정권 정통성을 경제발전과도 연계”…”미국의 대북 최대 지렛대”

▶ “주한미군 철수 요구 여부가 북한 진지성 지표”…”과거에도 관계개선에 관심 있으면 요구 안했다”

미국서 드문 북미정상회담 기대론은 ‘김정은의 경제목표’에 주목
미국 언론에 인터뷰와 논평을 통해 등장하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은 북한의 의도에 대한 불신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자질에 대한 회의 때문에 비관론이 주를 이룬다.
대북 대화파로 분류되는 전직 관리들이나 민간 전문가들마저 상당수는 회담 실패의 경우 불거질 전쟁 불가피론을 걱정하면서 회담의 현실적 기대치를 낮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

대북 협상을 통한 핵 문제 해결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선제공격론을 펴는 매파 중의 매파인 존 볼턴 전 유엔 대사는 폭스뉴스 등과 인터뷰나 칼럼을 통해 '뭐하러 5월 말까지 기다리느냐. 3월 말이라도 가능한 한 빨리 만나라'고 주장한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에서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비핵화할 것이냐. (핵탄두와 해체한 시설물 등을 싣고 나갈) 배와 비행기는 이미 준비돼 있다. 어디로 보내면 되느냐'고 물어보고 답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비핵화할 마음이 없는 것이니 회담을 끝내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 이후 일은 그의 지론대로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볼턴은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 자신의 최대 압박 덕분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화자찬도 부인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회담 준비에 6개월, 회담하느라 9개월 등으로 시간을 벌어 그사이에 미국의 선제공격 위험을 피하면서 아직 완성하지 못한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장거리 핵미사일을 완성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런 미국 내 주된 반응 가운데 드물게,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발전 목표에 주목해 북미정상회담 제의의 진지함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은 6자회담 대북 협상 특사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끌어낸 조지프 디트라니와 지난 2년간 북한과의 반관반민 대화를 주도해온 수전 디마지오 뉴 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과 조엘 위트 38노스 선임연구원이다.

디트라니는 21일(현지시간) 국제안보 전문 온라인 매체 '사이퍼 브리프'에 기고한 글에서 2003년부터 2005년 사이 대북 협상 과정에서 북한 측은 "미국 대통령이 자신들의 지도자와 만나면 양자 사이의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이제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할 기회를 갖게 됐다"고 디트라니는 지적하면서 '완전하고 증명할 수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급진전함에 따라, 김정은이 이제 북한의 허약한 경제에 관심을 일부 돌리는 것 같다"며 경제발전이 핵무력 완성과 함께 북한 주민들에게 제시된 약속임을 상기시켰다.

북한 측과 협상 경험에 대해, 디트라니는 북한 측은 '우리를 핵국가로 인정해주면, 우리는 미국의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미국 측은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응수했었다고 전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국가 인정' 대목을 '비핵화 논의용의'로 바꾸고 '미국의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는 대목은 남겼기 때문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디트라니는 평화협정과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을 통한 안전보장 등 9.19 공동성명의 틀 안에서 설명했다.

수전 디마지오와 조엘 위트는 지난 10일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많은 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것은 심각한 실책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지난 2년간 북한 관리들과 비공식 대화에 참여해온 우리는 이 문제를 달리 본다"며 역시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발전 목표에 주목했다.

이들은 "김정은이 자신의 정통성을 경제사정 개선과 연계시켜 온 만큼, 이것이 미국에 가장 유망한 대북 지렛대"라며 "이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도 9.19 공동성명에 포함된 평화협정 등 북한의 체제안보와 비핵화를 교환하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결정을 "현명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이 결실하면 역사적 돌파구를 열게 되거나 현재의 충돌 국면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북미정상회담의 "최종적이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슈"로 이들은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문서로 확인하는 것을 들었다. 대북 대화파들 가운데서도 일부는 비핵화 합의를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동결을 현실적 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나, "북한이 비핵화에 관한 대화 용의를 밝힌" 마당에 동결 목표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북한이 대화에 진지한 지를 가늠할 지표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의 요구를 고집할 것이냐 아니냐를 들었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비관론자들은 북한이 이런 요구를 들고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으나, "그런 요구는 수용될 수 없음을 북한도 알고 있다"고 디마지오와 위트는 지적했다. 따라서 이 요구의 고수 여부에 따라 북한의 협상 의지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북한의 입장은 고정불변이 아니어서 관계개선에 관심이 있을 때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도 된다고 말했다고 이들은 상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남·북·미 3자 정상회담과 미국이 보증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언급한 것은 팽배한 비관론이나 현실론 속에 미국 행정부나 북한 당국이 기존의 북미 협상 틀 너머로 사고의 지평을 크게 넓혀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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