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글로벌 선사는 몸집 키우는데… 한국정부는 ‘뒷짐’

2018-03-19 (월) 고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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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주 예약까지 끝났는데 정부 지원 늦어져

▶ 조선업 비해 주목도 떨어져 뒷방신세 전락

글로벌 선사는 몸집 키우는데… 한국정부는 ‘뒷짐’
한국정부의 해운업 재건 계획 발표가 계속해서 미뤄지면서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해운 강국으로서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글로벌 해운사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덩치를 키우면서 한국 해운사들의 위상이 가뜩이나 쪼그라든 가운데 이 같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지는 올해 상반기가 벌써 절반 가까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국내 유일의 국적 선사인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부터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발표에 맞춰 올 상반기에 2만TEU급 12척, 1만3,000TEU급 8척 등 총 20척(약 35만TEU)의 대규모 선박을 발주할 계획이었다.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선복량을 높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해운분석기관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한국 1위인 현대상선의 현재 선복량은 33만TEU로 글로벌 1위인 덴마크의 머스크(418만TEU)는 물론 중국·일본·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 경쟁사에 비해서도 크게 밀린 14위에 그치고 있다. 시장점유율도 1.5%에 불과하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전인 지난 2016년 8월만 하더라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3.0%와 2.1%를 차지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국내 해운사들의 시장점유율이 3%포인트 이상 추락한 것이다.

현대상선은 올 상반기를 이같이 쪼그라든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국내 해운업 재건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법안이 통과한데다 지난 2월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이 발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상선도 오는 2020년 발효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올 상반기 중에 친환경·고효율 대형 컨테이너 선박을 발주해 선복량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상반기 중에 발주를 해야 2020년 이전에 인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조선업 살리기에 온 힘을 쏟는 사이 해운업 경쟁력 회복 방안은 계속 뒷전으로 밀리면서 해운사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발주 시기가 늦어지면 제때 선박을 인도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다 최근 들어 선박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락슨리서치의 선종별선가지수에 따르면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의 평균 가격은 지난해 말 1억700만달러에서 올해 초 1억775만달러로 올라갔다. 최근 들어 조선업이 바닥을 치고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선박 가격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상반기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최근 글로벌 해운사들의 선박 발주가 늘어나고 있어 선박 발주가 하반기로 미뤄지면 선박 인도 시기가 2020년을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해운업 살리기 방안이 미뤄지는 배경을 두고 지방선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선업에 비해 해운업이 여론의 주목을 덜 받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업의 경우 각 지역마다 대규모 인원을 고용하고 있어 구조조정 결과에 따라 지방선거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해운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운업은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략 산업이기 때문에 다른 산업과는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며 “정부가 종합적인 그림을 그리고 강력한 지원책을 제때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부에서도 가능하면 빨리하는 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기본 목표와 지향하는 바는 다 준비됐기 때문에 관계부처와 협의해서 최대한 빨리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고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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