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홈리스 기거하는 자동차는 “집이다” 이색판결

2018-03-17 (토) LA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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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애틀 ‘거리 불법주차 트럭 토잉’ 재판

▶ 압류당한 홈리스 “벌금 과도… 감당 못해” 재판 카운티 판사 “압류·강제매각은 개인권리 침해”

홈리스 기거하는 자동차는 “집이다” 이색판결

시애틀이 속한 킹 카운티 홈리스의 약 20%는 자동차에서 살고 있다. 2017년 통계인데 이 숫자는 이번 3월초 판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애틀에 거주하는 스티븐 롱(57)은 지난 몇 년간 자신의 2000년형 GMC 시에라 픽업트럭을 ‘내 집’이라고 불러왔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이제 판사의 동의를 얻어냈고 법정 서류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반대 또한 만만치 않다. 반대자들은 이 같은 판사의 최근 판결이 유지된다면 시애틀은 미 전국에서 가장 혼잡한 도시 중 하나가 될 것이며 별 규제 없이 자동차에서 자면서 살 수 있는 ‘관대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로 시애틀은 경찰이나 주차 단속요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동차에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의 도피처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애틀이 속한 킹 카운티 수피리어코트의 캐더린 쉐이퍼 판사는 지난 3월2일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경찰이 시티 스트릿에 장기간 주차된 롱의 픽업트럭을 토잉한 것은 롱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그 트럭은 ‘그의 집’이었다.

쉐이퍼 판사는 롱에게 부과된 누적 벌금 900달러는 ‘과도한 벌금’으로부터 보호하는 수정헌법 8조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롱의 픽업트럭을 압류한 것은, 집을 쉽게 압류하거나 강제로 매각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워싱턴 주 공유지불하법 위반이라고도 지적했다. 이때 ‘집’의 범위에는 달리 살 곳이 없는 홈리스가 기거하는 자동차도 포함된다고 판사는 주지시켰다.

쉐이퍼 판사는 벌금에서 300달러를 깎아주면서 시 당국이 자동차들 압류를 중단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자동차는 단수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집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롱의 트럭은 그가 벌금을 소액 분할 납부하기로 동의한 후 그에게 되돌려졌다.

시 당국은 쉐이퍼 판사의 판결을 강력 비난했다.

이번 판결이 “원하는 대로 아무데나 차를 주차할 수 있다는 헌법적 권리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마이클 라이언 시 검사는 법정 서류를 통해 말했다. 지난해 킹 카운티 내에는 약 2,300명이 자동차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시애틀 홈리스 인구의 약 20%에 해당된다.


라이언 검사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이번 판결이 시애틀의 주택난을 악화시킬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시애틀의 부동산 시장은 미 전국에서 가장 비싼 곳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반면 롱의 지지자들은 이번 판결이 가난한 사람들과 홈리스들을 위한 승리라고 환영했다.

“이 중요한 판결은 감당하기 힘든 주택난 속에서 자동차를 집 삼아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도를 주며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무료변론 제공 콜럼버스 법무서비스 소속으로 롱의 변호를 맡은 앨리슨 빌로우 변호사는 말했다.

물론 롱의 픽업은 ‘집’처럼 보이진 않는다. 손 볼 데가 많은, 시동조차 잘 안 걸리는, 같은 곳에 오래 주차된 채 움직이기 힘든 그저 낡은 트럭일 뿐이다.

그러나 롱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밤이면 그 트럭은 그가 지친 심신을 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런데 2016년 10월 어느 날, 그 안식처가 사라져 버렸다.

“집에 왔는데, 집이 없어져 버렸다”고 시애틀 풋볼구장에서 청소 일을 하는 롱은 말했다. “난 완전 충격에 빠졌지요”

인근 부동산 소유주가 롱의 트럭을 한 이웃의 ‘집’이 아닌 골칫거리로 본 것이었다. 롱의 모든 소지품은 다 그 트럭의 뒤 칸에 들어 있었고 롱은 좌석에서 잠을 잤었다. 그는 청소 일을 했지만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 4년 간 이처럼 홈리스로 지낸 것이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게 그 트럭 안에 있었어요, 내 연장이랑 모든 게…”

법정 기록에 의하면 롱은 토잉 당하기 1주일 전 경찰에게 법이 명시한 대로 매 72시간마다 한 번씩 트럭을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경찰은 그냥 돌아갔다. 며칠 후 트럭 창문엔 47달러짜리 파킹 티켓이 붙어 있었다. 트럭은 같은 자리에 계속 주차되어 있었는데 며칠 후 사라진 것이다.

압류차량 주차장으로 찾아간 롱은 토잉비와 차량 보관비를 합해 577달러를 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매일 27달러씩 더 내야 한다고도 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트럭은 매각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매달 50달러씩 갚기로 하고 트럭을 찾아 왔다. 그는 트럭을 시 외곽에 사는 친구의 집에 주차시켜 두고 벌금에 대한 어필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는 1982년도 쉐비 픽업트럭을 빌려 그 안에서 살면서 청소 일을 계속했다.

“시 당국은 롱을 형사고발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가장 귀중한 자산인 집을 가져가 버려 그를 땅바닥에서 방수포를 덮고 자게 만들었다”고 말한 롱의 변호사는 “그는 홈리스 처지의 사람에겐 엄청난 벌금과 수수료를 납부하기로 동의한 후에야 자신의 집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쉐이퍼 판사의 결정은 미 전국에서 이런 종류의 첫 번째 판결로 생각한다는 롱 변호팀의 생각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문제에 직면한 도시들은 여럿이다.

LA는 연방 항소법원이 자동차 내 거주를 불법으로 규정한 1983년의 금지령을 2014년 무효화 시킨 이후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2016년 LA는 특정 상업 지역의 파킹장 내 주차와 거주를 허용하는 조례를 승인, 현재 약 8,000명이 자동차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산타바바라 등에서도 밤샘 주차와 화장실 제공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시애틀에선 몇 군데 주차 안전지대를 마련해 운영하던 프로그램이 축소되어 현재 거주용 주차 안전지대은 한 곳으로 줄었는데 그나마 4월에 폐쇄 예정이다.

이 같은 상황은 쉐이퍼 판결로 변할 수 있지만 시애틀 시당국이 항소할 것이라고 밝혀 자동차에 사는 홈리스들의 상황은 여전히 불안을 못 벗어나고 있다.

<LA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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