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회식에서 사라진 “노래방 2차~”

2018-03-13 (화)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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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 광풍에 풍속도 변화, “혹시 모를 불상사 막자”

▶ 야유회·웍샵도 줄어

서울 종로구에서 10년 넘게 노래방을 운영했다는 A(67)씨는 요즘 폐업을 고민 중이다. 회식 또는 술자리 뒤 “2차!”를 외치며 찾아왔던 직장인 발길이 최근 뚝 끊겨 월세조차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씨는 12일 “최근엔 ‘미투’ 열풍을 인식한 탓인지 더 피하는 느낌”이라며 “업계에선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도심 곳곳 노래방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뜻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로 일찍 귀가하는 문화가 확산된데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라 혹시 모를 사고나 오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노래방을 아예 찾지 않는 분위기가 더해졌다.

노래방 주인 이모씨는 “회식 후 뒤풀이를 주도하던 직장 상사들조차 ‘조기 귀가’ 대열에 합류하면서 손님이 더 줄었다”며 “상사 노래 취향에 맞춰 탬버린을 흔들던 부하 직원 모습은 머지않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 취급 받을 것”이라고 했다.


야유회나 웍샵 장소로 인기 많던 수도권 숙박업소 사정도 마찬가지. 봄만 되면 부서나 팀 단위로 휴일을 할애해 떠나던 웍샵이 대폭 간소화하면서 주말 손님이 크게 줄고 있다고 한다. 인천 강화도에서 단체 전문 펜션을 운영하는 김수임씨는 “지난해 이맘때면 꽉 찼을 3, 4월 주말 예약장부가 올해는 절반 정도만 찼다”며 “1박2일 웍샵이 갈수록 줄어드는 탓”이라고 했다. 공연관람 후 맥주 한 잔 하는 식이거나, 굳이 야유회를 떠나도 평일 당일치기 문화가 정착되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다수가 불편해 하는 행사는 줄이거나 없애려는 기업 및 공공기관 움직임도 있다.

직장 동료와 노래방 또는 웍샵을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영상콘텐츠 유통업체 임원 이승무(45)씨는 “올해 웍샵은 평일 사내 체육대회로 대체하기로 했다”며 “고위층 인식부터가 바뀌고 있어, 회식 때 노래방을 가거나 멀리 웍샵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신규 직원과 가까워지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등의 순기능까지 사라질 것 같다”고 아쉬워하는 얘기도 들린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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