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핵을 가진 늙은이의 망언

2018-03-12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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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가진 늙은이의 망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리가 외국인들에 의해 어떤 피해를 입었고, 어떻게 이용당했는지 장황하게 늘어놓는 수다스런 노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사실 우리는 그런 말을 들을 만큼 들었다. 식탁머리에서 장광설을 쏟아내는 수다스런 늙은이들이 ‘진정한 미국’을 대변한다는 내용의 분석기사가 대선을 전후해 대략 1만 7,000건이나 쏟아져 나왔으니 말이다.

잘난 척 하지 않으려 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주장이 왜곡투성이라는 점을 금새 알아차린다.

아니, 그의 주장과 달리 우리는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강력범죄의 거대한 파도를 경험하고 있지 않다. 엄청난 거액의 자금을 대외지원금 형식으로 다른 국가들에게 퍼주고 있지도 않다. 이들 외에 수다쟁이 노인이 늘어놓은 다른 주장들 역시 사실과 다르다.


그가 사실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아마도 폭스뉴스 등 어디선가에서 얻어들은 사실 확인조차 안 된 정보들일 터이다.

그렇다. 일반인들이 이런 일을 했다면 우리는 대충 눈감아줄 수 있다.

돌보아야 할 자녀와, 직장인으로서 업무, 어떻게든 살아내야 할 일상의 삶을 지닌 보통 사람들에게 정책에 대한 꼼꼼한 식견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정책에 대해 완전히 무지해선 안 되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철석같이 믿으면서 정확한 정보조차 없이 쉰 소리를 늘어놓는 늙은이가 하필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어떨까?

강철과 알루미늄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그의 선언은 나쁜 정책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진짜 우려스러운 것은 그의 경제팀조차 모르게 그런 결정에 도달한 맹랑한 방식이다. 일차적으로 그는 자신이 택한 조치의 법적 정당성으로 국가안보 보위를 내세운다. 어쨌든 우리는 캐나다처럼 불안정하고 적대적인 국가에 알루미늄 공급을 의존할 수 없다(캐나다는 최대 대미 강철 공급원이기도 하다.) 는 식의 논리다.

요점은 관세정책의 명분에 사기성이 짙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로 인해 다른 국가들에게 보복조치를 취할 라이선스를 주는 셈이고, 그들은 분명 우리에게 반격을 가할 것이다.


세계 교역에서 미국보다 덩지가 큰 플레이어인 유럽연합(EU)는 이미 할리 데이빗슨과 버번, 블루진 등에 보복관세를 가할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한편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부과안을 발표한 이후 며칠 사이에 트럼프는 잘못된 내용의 트윗을 연이어 쏟아냈다.

나는 그가 단지 내가 동의하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부조차 완전히 틀렸다고 인정한 잘못된 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그는 미국이 캐나다에 대해 엄청난 무역적자를 기록 중이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미국 측 집계에 따르면 오히려 미국이 약간의 흑자를 기록 중이다.

유럽의 국가들이 미국상품들에 엄청난 관세를 매기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정부의 수출업체 가이드는 유럽연합으로 나가는 미국 수출품에 단지 평균 3%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건 성가신 소소한 실수가 아니다. 모든 사안에 대해 포괄적인 브리핑을 청취할 수 있지만 브리핑을 듣기보다 ‘폭스 & 프렌즈’ 시청을 더 즐겨하는 트럼프의 머릿속에 담긴 무역관은 미국이 흉악한 이민자들로 인해 홍역을 치른다는 식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이런 상상속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의 말은 영락없는 일방적 취중방담이다. 그는 “무역전쟁은 좋고, 이기기 쉽다”는 트윗을 날렸다. 여기서 ‘승리’는 분명 상대국로부터 사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터이지만, 무역에서의 승리란 그런 것이 아니다.

설사 관세로 미국의 적자를 없애버릴 수 있다 해도 숫한 부작용을 얻게 된다.
신속한 이자율 상승이 부동산시장과 많은 빚을 진 채무자(재레드, 바로 너야)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고, 달러화의 가파른 상승으로 미국의 농가들을 비롯한 수출업체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또한 전면적인 무역 전쟁이 일어날 경우 국제 공급체인이 흔들리면서 엄청난 숫자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의 자체 예상에 따르면 유럽연합과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수출은 각각 260만 개, 160만 개와 120만 개의 미국내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다.

트럼프가 실제로 그의 장광설을 실행에 옮길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만약 행정부 안에 어른이 몇 명이나마 남아 있다면 그들은 아마 트럼프의 주의를 분산시킬 반짝이는 물체를 찾아낼 것이다. 말하자면 트럼프로 하여금 그가 완승을 거두었다고 확신하게 만들어줄 캐나다와 멕시코의 의미없는 ‘양보’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무역전쟁이 정말 발발할지 여부에 상관없이 명확히 드러나는 트럼프의 호전적 무지는 우리를 걱정스럽게 만든다.

무역에 관한 거칠고 무지한 발언 그 자체만으로도 미국의 신뢰도는 상처를 입게 된다: 만약 동맹국들을 상대로 그들이 생각지도 않은 정책을 빌미삼아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을 가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안에 대해 동맹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또 있다. 트럼프의 호전적 무지가 단지 무역에 그칠 것이라 믿을만한 이유가 있는가?

실제로 우리는 그가 범죄에 관해서도 무역과 마찬가지로 무지몽매하다는 것을 안다. 국가안보 이슈에 대해 그가 범죄나 무역 문제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을만한 근거도 없다.

수다쟁이 늙은이의 허튼소리를 듣는 것은 최상의 상황에서조차 짜증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늙은이가 핵무기를 지닌 세계 최강의 군을 통솔한다는 것은 완전 겁나는 일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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