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화·충돌 기로에 놓인 미국과 북한

2018-03-06 (화) 오준 전 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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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충돌 기로에 놓인 미국과 북한

오준 전 유엔대사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얼마 전 TV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과 함께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우리 언론에 보도됐다. 그가 실제로 말한 것은 북한의 김정은과 협상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비핵화를 외교적으로 달성하려면 상대해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북한이 협상할 준비가 됐을까. 아니라면 우리는 계속 압박을 높일 것이다”라고 했다.

다음날 뮌헨안보회의에서 미 상원의원은 미국이 대북 공격을 하면 신속하고 대규모가 될 것이라고 했다. 며칠 후 ‘코피 작전’에 대해 최초 보도한 영국 신문은 사이버 공격 가능성을 후속 보도로 냈다. 우리가 평창올림픽 마지막 경기들에 열광하는 동안 외신들은 한반도 긴장과 무력 충돌 가능성을 부쩍 많이 언급했다.

이러한 최근 동향은 미북 간에 대화가 임박한 것인지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것인지 일견 혼란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미국의 태도는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즉 대화든 충돌이든 어떻게 해서든지 북한의 핵 능력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우리의 핵무력은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이 된다고 했다.


이것은 큰 오산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북한이 미국의 묵인 가능성을 기대했다면 중거리 핵 능력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 2016년 말에 핵·미사일 실험을 중지했어야 했다. 물론 그렇게 했어도 미국과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력은 계속됐겠지만 현재와 같은 결단의 상황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틸러슨 장관은 미국 전체가 북핵 사정권 안에 있다는 위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를 불안하게 함으로써 더욱 결의를 다지게 만든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미국이 직접적인 북핵 위협에 처하면 두려워서 타협을 추구할 것이라고 정말 믿었다면 북한은 미국을 너무 모른다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가 끝났음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면서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이 현재 정책이라고 하고 있다. 최대 압박은 전략적 인내와 어떻게 다른가. 최근에 나오는 미측 입장을 보면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이 차이점인 것 같다. 즉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의 장거리 핵 능력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압박이 안 통하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로서는 물론 무력사용을 피하고 압박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나오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이 압박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해줘야 한다. 사실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유례없이 강력하다. 미국의 단독 제재 때문에 중국도 제재를 충실히 이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세계 어느 국가든 수출의 90%와 석유류 수입의 50%가 차단되고 국제금융과 대외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 대북 압박에 핵심적인 중국·일본·러시아와 우리나라가 제재를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미측이 북한의 태도 변화가 시간문제라는 판단을 갖게 되면 자연히 무력사용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압박 효과에 대한 의구심과 초조함이 커질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평창올림픽으로 재개된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이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추구하는 것이 정권의 안정이라면 핵무장은 불안정만을 가져올 것이며 비핵화로 나와 제재를 벗어나야 남북대화와 협력이 가능하고 미래가 보장된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북한의 편이 아니며 비핵화 대화 이외의 다른 어떤 출구도 막혀 있는 현실을 이해하게 해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비핵화 대화가 시작된다면 모든 당사자는 오판의 위험을 줄이면서 시간을 갖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그것이 한반도 안과 밖에서 보는 위험도의 차이가 너무나도 큰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오준 전 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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