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화당 특성의 알맹이

2018-02-26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작게 크게
공화당 특성의 알맹이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가 부패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부정직하다는 전제를 이미 오래전에 받아들인 사람들조차 프레지던츠 데이(Presidents‘ Day) 주말에 그가 쏟아낸 장광설에 다소 충격을 받은 듯 보인다.

플로리다 주 팍랜드에서 발생한 총격참사를 러시아의 대선개입 의혹을 조사 중인 연방수사국(FBI)을 공격하는 빌미로 삼는 한편 러시아의 선거개입이 없었다던 자신의 과거 발언을 부인하는 등 장광설을 통해 한 단계 높아진 비열함을 보여준 것은 그의 과거 기록과 견주어 보아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한 발 뒤로 물러나 생각해보면 트럼프의 장광설은 그의 성격과 어지간히 일치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특성은 그의 개인적 성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사 혹은 공화당 유력인사들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시인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적이 언제인가?

새삼스런 일도 아니고, 누구나 다 그렇고 그런 게 아니냐고 말하지 말라.

그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을 내 부모님은 성숙한 인간성이라 말씀하셨는데 당시만 해도 이것은 정치인은 물론 성인 전체가 지녀야할 필수 덕목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다른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여기에서도 두 정당 사이에 거대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물론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바르고 정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보는 바로는 그것이 무엇이건 기꺼이 책임을 지려는 공화당 인사는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작금의 공화당이 지닌 특성의 내용물은 대의정치의 기반을 흔드는 부패와 위선의 증상인데 이런 특징은 개인행동뿐 아니라 정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공화당의 질병에 관해 말하기 전에 이번 행정부에 만연된 비 트럼프적인 특성의 결핍에 관한 여러 예들 가운데 몇 개를 살펴보자.

사소하지만 그래도 언급할 가치가 있는 본보기가 납세자들이 낸 혈세로 여객기 1등석을 이용한 환경보호청장 스캇 프루잇의 얘기다. 그의 지출이 연방지침을 어긴 것은 맞지만 여기서 돈은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1등석을 타야했던 이유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그에게 할 말이 많은 보통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예로 트럼프의 비서실장인 존 켈리를 살펴보자. 막말 비방과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는 상관인 트럼프와 막상막하의 수준이다.

연방하원의원 프레데리카 윌슨에게 엉뚱한 비난을 퍼부은 켈리가 자신의 실수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본 후에도 잘못된 발언을 취소하지 않았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최근에도 켈리는 백악관 보좌관인 로브 포터의 가정폭력 혐의에 관해 “그를 내치기 불과 40분 전” 스탭 멤버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우겼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딴판의 얘기다.

설사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미처 알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옳았다. 그러나 공화당 친구들은 도통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또 있다. 로이 무어는 아직도 선거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결국 공화당에서 트럼프만이 유별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책임회피가 트럼프로부터 시작된 관행도 아니다.

이미 지난 2006년, 나는 하자가 많은 이라크 점령과,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늑장 대응과 관련해 책임을 인정하는 고위 관리들이 전혀 없다는 점을 들어 부시 행정부의 도덕적 결함을 신랄하게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정치인만을 나무라고 있는 게 아니다.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연방준비제도의 노력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는 그릇된 예측을 내놓은 후 아직까지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버티는 우파경향 경제학자들에게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나까지 포함해 누구나 틀릴 수 있다. 그러나 틀린 것과 잘못을 시인하고 그로부터 배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분명히 해두자.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려는 태도가 완전히 사멸한 것은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개전초기에 이라크 전을 지지했다거나 2016년 대선에서 실착한 것과 관련, 충분히 사과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클린턴은 반대진영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실수를 시인했다.

그렇다면 공화당의 성격장애는 어떻게 발생한 것인가? 확신하건대 개인의 행동은 궁극적으로 정치적이다. 지금의 공화당은 이제까지 미국사에서 일찍이 보지 못했던 불성실의 토대위에 세워진 정당으로 추구하는 바와 목표가 진짜가 아니라 시늉에 불과하다.

국기를 흔들어대는 그들의 애국심과 엄격한 도덕성의 촉구, 방만한 재정에 대한 엄중한 경고는 금권 정치인들을 더욱 부요하게 만들려는 숨은 의제의 가림막에 불과하다.

공화당의 성격 장애는 유력한 당원 대다수의 성격결함이라는 메아리로 끝난다.

그렇다면 공화당 관리와 의원들은 개인적 성향을 좇아 정당을 택한 불량배들인가 아니면 부패한 동료들의 영향으로 함께 썩어버렸지만 잠재적으로는 선량한 자들인가? 아마도 둘 모두에 부분적으로 해당될 것이다.

어쨌건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해두자. 2018년의 미국은 무례하지 않고서도 의견불일치를 보이거나, 두 정당 모두에 선량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곳, 아니면 그것이 무엇이건 그대로 외우고 싶은 양당의 강론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대신 우리는 최악의 지도자들이 통치하는 악덕정치(kakistocracy) 체제 안에서 살고 있다는 불쾌한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