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8년 노스캐롤라이나 출생, 남침례회 안수
▶ LA 전도대회 후 세계적 복음 전도자 발돋움…전세계 185개국 전도집회

1973년 12월3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빌리 그래엄 목사의 전도 집회에 110만 청중이 운집해 있다. <빌리 그래엄 도서관>

전직 미 대통령들과 함께 한 모습. 왼쪽부터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빌리 그래엄 목사, 아들 프랭클린 그래엄,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빌리 그래엄 도서관>
빌리 그래엄 목사의 삶과 업적
21일 타계한 빌리 그래엄 목사는‘미국의 목자’로 불린 20세기 미국 기독교의 대표적 복음주의 설교자다. 그래엄 목사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복음주의 신앙의 근본 요소인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설교로 전 세계인의 영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가장 성공한 전도자로 꼽힌다.
■생애
그래엄 목사는 1918년 11월7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태어났다. 1940년 플로리다 성경대학을 졸업하고 남침례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43년 일리노이주 휘튼대학을 졸업한 후 웨스턴스프링스 제일침례교회 목사로 사역의 길에 들어섰다. 이어 국제십대선교회(YFC)에 참가하면서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엄 목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8세 때인 1947년 LA에서 자신의 첫 군중집회인 로스 전도대회를 통해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54년 영국 런던 전도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발돋움했다.
그래엄 목사는 1950년 빌리 그래엄 전도협회(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를 창설해 전 세계 전도대회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또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 등 매스 미디어 매체 등을 통한 전도 프로그램으로 복음 전도에 힘썼다.
빌리 그래엄 전도협회에 따르면 그래엄 목사는 전 세계 185개국을 돌면서 2억1,500만 여명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그래엄 목사는 86세이던 2005년까지 설교를 계속하다 은퇴하고 자택에서 요양하며 지냈다. 그가 창립한 빌리 그래엄 전도협회는 현재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엄이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의 영적 조언자
그래엄 목사는 해리 트루먼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동안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신앙적 멘토이자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한 인물이다. 대선 후보들도 한 번 정도는 그를 반드시 방문하는 게 일종의 통과의례가 됐을 만큼 미국 사회에서 존경을 받아왔다.
CNN은 그래엄 목사가 린든 존슨과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위한 정신적 상담을 해 온 인물이라고 전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그래엄 목사의 영향으로 젊은 시절 방황을 끝내고 기독교 신자로 거듭났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트위터를 통해 “위대한 빌리 그래엄이 별세했다. 그런 인물은 없었다. 그는 모든 종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그를 기릴 것이다. 매우 특별한 분이다”라고 애도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나와 아내 로절린은 그래엄 목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 나는 그래엄 목사를 친구이자 조언자로서 꼽을 수 있어서 기쁘다”라고 적었다.
■한국과의 인연
그래엄 목사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도 깊은 족적을 남겼다. 그가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은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12월이었다. 당시 그는 부산에서 북한 출신 피란민 등을 상대로 설교를 했다. 이어 1956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래엄 목사는 서울운동장에서 8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설교를 했다.
세 번째 한국 방문기간인 1973년 5~6월엔 전국을 돌며 연인원 334만 명을 대상으로 설교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해 12월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도대회에는 무려 110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했고, 당시 김장환 목사가 즉석 통역을 한 그의 설교는 한국 개신교계의 부흥을 이끈 대전환점이 된 역사적 장면으로 꼽힌다.
그래엄 목사는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 생존 당시인 1992년과 1994년 방북해 평양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