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이드 인 이탈리아’ 로 알고 샀는데 ‘메이드 인 차이나’

2018-02-21 (수) 심희정·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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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렌시아가, 스니커즈 인기 끌자, 슬쩍 중국으로 공장 이전해 생산

▶ 루이비통 루마니아서 90%공정에도, 메이드 인 이탈리아 달고 슈즈 판매

‘메이드 인 이탈리아’ 로 알고 샀는데 ‘메이드 인 차이나’
# 명품 스니커즈 마니아 김모(30대)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백화점에서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 스니커즈’를 구입한 뒤 포장을 뜯어 살펴보니 신발 안쪽에 ‘메이드인 차이나’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명품이니 당연히 ‘이탈리아산’이겠지 생각했다.

매장에 문의해보니 “17FW 모델까지는 이탈리아에서 제조되고 18SS 제품부터 원산지를 옮겨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는 “20만원이면 사는 중국산 짝퉁을 내가 100만원 넘게 주고 산 것이나 다름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업계 전문가들은 “소수의 브랜드를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대량생산 체제인 만큼 희소성·장인정신·전통을 내세우는 명품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며 “이제는 소비자들이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떼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렌시아가가 정초부터 히트제품인 ‘트리플S 스니커즈’의 원산지 논란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해당 제품이 잘 팔리자 이탈리아산을 중국산으로 슬그머니 둔갑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발렌시아가 측은 원산지를 변경하면서 소비자들에 이 같은 내용을 일절 고지하지 않아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원산지 논란도 소비자들이 항의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발렌시아가는 17FW 제품까지만 해도 신발을 벗으면 바로 보이는 인솔 부분에 이탈리아산임을 표시했다.

반면 이후 제품부터 중국산 표시를 신발 혓바닥 안쪽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원산지가 바뀐 것을 소비자가 알아차리기 힘들게 하려고 이렇게 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블로그 등에서는 김씨 같은 소비자들이 17FW 제품과 18SS 제품을 비교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발렌시아가를 필두로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원산지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들 럭셔리 브랜드 상당수의 원산지가 동유럽 제3국이나 중국이다.

인건비가 저렴한 제3국에서 90%를 만든 후 이탈리아로 옮겨 마지막 라벨을 다는 꼼수로 이탈리아산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아예 눈속임도 포기하고 중국 공장에서 대량생산 체제로 찍어내는 제품까지 있다.


스스로 짝퉁인 듯 짝퉁 아닌, 명품을 위장한 ‘페이크 명품’이 돼버린 것이다.

이탈리아산으로 둔갑시키는 대표주자로는 루이비통이 꼽힌다. 저개발국에서 제품을 거의 완성한 뒤 유럽에서 마무리하는 식이다. 루이비통 슈즈의 경우 루마니아 공장에서 90% 완성한 신발을 이탈리아로 보내 밑창을 붙인 뒤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만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개국 이상에서 제품을 제조할 경우 마지막 공정이 진행된 곳을 원산지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이를 교묘히 활용하는 것이다.

루마니아 임금은 이탈리아의 15분의1 수준이지만 신발 가격은 그대로다. 루이비통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아울러 루이비통의 명함지갑 같은 소품 일부는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 등지에서 만들어 ‘메이드 인 스페인’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가의 샤넬백 역시 프랑스·이탈리아 외에 스페인에서 종종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원산지 세탁은 현지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 현지 방송국은 프라다와 구찌가 루이비통 슈즈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구찌는 2004년부터 스니커즈 중 일부를 세르비아에서 만들고 프라다는 신발 윗부분을 슬로베니아에서 생산하고 있다. 프라다를 중심으로 버버리·아르마니·발리·돌체앤가바나·미우미우 등 럭셔리 브랜드 상당수도 중국에서 제품을 만든다.

프라다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제조기술이 좋기 때문에 머잖아 누구나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프라다는 가방·의류·신발의 경우 생산물량의 20%가량을 중국에서 제조한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갈수록 인건비가 저렴한 곳으로 이동해 제품을 만들지만 가격은 계속 올리고 있다. 특히 비쌀수록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가 잘 먹히는 한국에서 횡포는 더 심하다.

샤넬만 해도 지난해 세 차례나 가격을 올렸고 에르메스도 올 들어 1년 만에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심희정·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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