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투’ 후폭풍에 떠나는 고은 시인·이윤택 연출가

2018-02-20 (화) 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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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수원 떠나겠다”… 이윤택 “벌 받겠다, 성폭행 없었다” 사과 논란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고백 이후 한국판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각계로 번지는 가운데 문화예술계 원로들의 성추행이 폭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문단과 연극계를 대표하는 고은(85) 시인과 이윤택(67) 연출가는 ‘미투’ 후폭풍으로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일각에선 사법처리 가능성도 거론된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였던 고은 시인은 2013년 수원시가 마련해 준 장안구 광교산 자락의 주거 및 창작공간(‘문화향수의 집’)에 거주한 지 5년 만에 떠나게 됐다. 수원시는 고은 시인이 고은재단 관계자를 통해 “올해 안에 계획해뒀던 장소로 이주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18일 밝혔다. 지난해 5월 이후 광교산 주민 일부는 “우리는 개발제한구역 때문에 재산 피해를 보고 있는데, 수원시가 고은 시인에게 특별 지원을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미투’ 운동과 관련해 지역 여성단체들이 “수원시는 고 시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11월 서울도서관에 조성된 고은 시인의 기념 공간 ‘만인의 방’은 3·1운동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고 시인의 성추행 논란은 최영미 시인이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게재한 시 ‘괴물’이 화제에 오르면서 확산됐다. 이 시는 ‘En선생이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란 내용으로 시작된다.

또 이윤택 연출가가 과거 연극 배우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Me 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10여 년 전 지방 공연 당시 자신이 겪었던 일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당시 이 연출가가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꼭 여자 단원에게 안마를 시켰고 자신을 여관방으로 호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안갈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다.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고 적었다. 김 대표는 이후 자신은 “더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방을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했다는 A씨는 17일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 밀양과 부산에서 이 연출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적었다. 한국극작가협회는 이날 연출가이면서 극작가인 이윤택을 회원에서 제명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통해 ‘간접 사과’했던 이윤택 연출가는 폭로가 계속 이어지자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법적 책임을 포함해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며 공개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성폭행 주장에 대해선 “성관계 자체는 있었지만 폭력적이고 물리적 방법으로 강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변명해 ‘면피성 사과’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연출가가 이끌던 연희단거리패는 해체를 선언했다. 서정욱 변호사는 “문화예술계 등에서 조직의 위계질서를 악용한 갑질이 성폭력이란 최악의 형태로 나타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면서 “이번에는 법적 책임까지 포함해 철저히 처벌함으로써 악습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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