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발 긴축에 통상 쓰나미까지…위기타개 묘책 없어 막막

2018-02-20 (화) 구경우·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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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청구서 흔드는 노동계… 구조조정 중에도 임금 올릴 판, 최대 수출품 반도체까지 미국 세이프가드 대상 거론도

▶ 정부, 주력산업 쇠퇴 인정하고 규제 서둘러 풀어야

미국발 긴축에 통상 쓰나미까지…위기타개 묘책 없어 막막
“이익을 내지 못하면 파산뿐입니다.”

메리 바라 제네럴모터스(GM) 최고경영자(CEO)가 4년간 2조5,000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는 한국GM의 철수를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지자 정부와 산업계·노동계가 발칵 뒤집혔다. 협력업체까지 직간접 고용만 30만명에 달하는 한국GM이 철수하면 실업대란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GM은 뒤로는 산업은행이 자금을 지원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는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행정부의 아픈 부분을 정확히 찔렀다”고 표현했다. 백척간두에 있는 한국GM 노조가 4년간 누적 3조원의 적자에도 지난해 기본급 5만원 인상, 격려금 600만원, 성과급 450만원 등을 받아낸 것도 친노조 정부이기에 가능했다는 해석이다.


촛불 청구서를 흔드는 노동계와 친노동 성향의 정책을 펴는 정부는 조선업 현장도 자가당착으로 만들었다. 수주 감소로 현금이 바닥난 대우조선해양(042660)은 정부가 지원한 공적자금(2조9,000억원)으로 버티고 있는데 올해 민주노총 산하 대우조선해양노조 지도부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조명탑 농성을 벌였다.

결국 상여금에서 기본급 일부를 떼어 전체 임금을 높이는 쪽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노조의 명분은 올해 최저임금(16.4% 인상·7,530원)에 미달하는 인원이 있다는 것. 하지만 전체 정규직 직원들의 임금을 높였고 공적자금으로 돌아가는 회사는 올해 약 50억원 이상의 부담을 더 지게 됐다.

내부적으로 노조가 임금 인상 투쟁을 하는 사이 밖으로는 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특히 최근 1,100원 선을 밑도는 원·달러 환율은 한국 수출기업들의 전망을 암울하게 하고 있다. 올해를 회복의 원년으로 삼는 조선업의 경우 환율이 1,200원 선이던 지난 2016년 1·4분기에는 1만3,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가격이 1,390억원이었지만 1,105원을 기록한 지난해 4·4분기에는 1,210억원으로 180억원 낮아졌다.

한국 조선사들은 최근 1,100~1,200원 선에 맞춰 인건비와 원재료·운영비 등 매출원가를 맞춰놓았다. 원화가 강세면 원가에 맞춰 수주가격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 자동차 업종 타격도 심각하다. 환율이 10원 빠지면 현대·기아자동차는 2,000억원(현대차(005380) 1,200억원·기아차 800억원)의 매출이 빠진다.

지난해 그나마 선방한 전자와 철강은 올해 미국의 거센 통상보복에 직면할 상황이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대부분의 철강제품에 반덤핑 관세가 부과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더 강한 제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한 미국이 올해 우리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도 제재 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연속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한국 내 기준금리도 따라올라 기업들의 금융비용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정부마저 지난해 과세표준 2,000억원 이상 기업들의 법인세를 인상한 터라 기업의 부담은 더 늘었다.

문제는 한국 산업을 덮치는 대내외 정책 쓰나미에 기업들의 동력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제조업의 평균 가동률은 71.9%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67.6%)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업황 부진과 매출 감소 등의 충격으로 전체 설비의 30%가 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82를 기록했던 제조업 업황전망은 이달 77로 하락했고 94(1월)까지 올랐던 매출전망을 87로 다시 하락했다.


한국기업들은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안 보인다”고 호소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고용을 원하고 있지만 생산성 향상 없는 대기업 정규직 위주의 임금 인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노동투입량이 2011년 104에서 지난해 119까지 올랐지만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101에서 93까지 추락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적은 생산성을 내는 구조가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용이 과보호된 정규직은 연공서열식 호봉제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으로 숙련도가 낮아지고 있다”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깨지 않는 한 정부의 바람처럼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등 대외 문제도 마찬가지다. 통상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국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거론하고 있을 뿐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기댈 곳 없는 기업들은 결국 해외로 눈을 돌리는 처지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 설비투자 증가율(계절조정)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해외투자는 490억달러로 해외 기업의 한국 내 투자(229억달러)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우리 산업과 기업이 처한 현실을 진지하게 직시하고 산업정책을 짜야 한다”며 “기업의 비용과 부담을 줄일 수 없다면 기업이 신산업에 투자할 수 있게 규제라도 혁파해야 일자리도 생긴다”고 강조했다.

<구경우·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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