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은행·증권사 ‘신탁업 갈등’…눈치 보는 금융당국

2018-02-20 (화)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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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개정 필요한데 원론만 되풀이

▶ 업계 “규제완화 방향 뭐냐” 부글

금융권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는 한국 금융당국이 신탁업만큼은 명확한 추진 방향을 잡지 못해 개편이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신탁업을 둘러싼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권 간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어 관련 법 개정에 소극적인 모양새다.

지난 13일 금융 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다음달에 발표되는 보험·증권·신탁업 등 ‘금융권 진입규제 개편방안’에 신탁업 개편을 위한 법적 검토 내용은 담기지 않을 예정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신탁업 세분화 및 자본금 요건 완화 등의 개편방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탁업 인가 개편의 핵심은 신탁업을 활성화하도록 비금융기관도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무법인이나 병원도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위탁자 사후에 배우자나 자녀 등 지정자를 위해 재산을 관리·운용하는 등 신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규제 완화를 명시하는 법적 테두리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 신탁업은 자본시장법에 법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신탁업법을 별도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금융투자업계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해 이 문제로 양측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올해 들어서는 권용원 신임 금투협회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신탁업법 분리는 자본시장법 내에서 해결하는 게 맞다”며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두 업권의 갈등은 신탁업 활성화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영역 간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령화 등 사회 변화에 따라 신탁 상품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신탁업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양측의 신경전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말 신탁 수탁액은 715조원으로 전년(601조원) 대비 약 16% 늘었다.

금융당국이 법 개정에 소극적인 건 두 업권 간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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