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벤쿠버에서 소치·평창까지...여제는 전설을 만들었다

2018-02-18 (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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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상화 아시아 최초 3연속 500m 메달]

▶ 첫 100m 가장 빨랐지만

생애 마지막 올림픽의 500m 결승선을 통과한 이상화(29·스포츠토토)는 만감이 교차한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태극기를 건네받고는 이상화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고 관중석의 아버지 이우근씨, 어머니 김인순씨도 같은 표정이었다.

‘빙속여제’ 이상화가 올림픽 3회 연속 메달의 대기록을 세웠다. 18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500m. 15조에서 출발한 이상화는 첫 100m를 10초20에 끊었다. 앞 조의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32·일본)보다도 0.06초 빠른 기록. 이상화는 그러나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삐끗하면서 37초33으로 마무리했다. 시즌 최고인 36초71과 자신의 세계기록인 36초36에 조금 못 미쳤다. 이상화는 경기 후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가 나온 것 같다”며 “그것만 아니었더라면…”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초반 100m에서 제가 빠르다는 걸 저도 느꼈다”는 그는 “너무 빨라서 그런 속도를 오랜만에 느껴봐서 너무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36초95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고다이라에게 0.38초 뒤진 은메달이다. 500m 25연승을 달리던 고다이라는 세 번째 올림픽에서 첫 금을 캐냈다. 이상화는 금메달만 놓쳤을 뿐 2010밴쿠버올림픽과 2014소치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올림픽 3회 연속 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이 종목 올림픽 3연속 메달은 1980~1988년 독일의 카린 엔케와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1992·1994년 금)에 이은 역대 세 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다. 대형 태극기를 들고 링크를 돌며 손 인사를 건네는 이상화에게 관중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이 경기에서 체코의 카롤리나 데르바노바가 37초34로 동메달을 차지한 가운데 한국의 김현영(성남시청)은 38초251로 12위, 김민선(의정부시청)은 38초534로 공동 16위를 차지했다.


이상화에게는 이번이 네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이다. 시작은 2006년 토리노였다. 3위와 0.17초 차. 앳된 얼굴의 이상화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열일곱 여고생 신분으로 참가한 생애 첫 올림픽. 5위로 아깝게 메달권에 들지 못한 이상화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당시는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도 낮았고 서른이 다 될 때까지 선수생활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이상화는 이미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여제이면서도 시즌 랭킹은 2위라는 묘한 상황 속에 평창올림픽을 맞았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도전자의 입장에서 안방올림픽을 맞은 것이다. 토리노에서 흘렸던 통한의 눈물을 2010년 밴쿠버와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기쁨의 눈물로 바꿔놓았던 이상화는 또 많이 울어야 했다. 고질적인 무릎 통증에다 2016-2017시즌에는 종아리 부상으로 슬럼프를 겪었기 때문이다. 1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하고 시즌을 접었다. 그저 그런 선수였다가 소치올림픽 이후 2년간의 네덜란드 유학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선수로 다시 태어난 일본의 고다이라가 이사이 최강자로 떠올랐다. 이상화는 이번 시즌 부상에서 회복해 월드컵에서 은 5, 동메달 1개를 따냈으나 월드컵 7차례 레이스를 모두 우승한 고다이라에게 빛이 가렸다.

이상화는 밴쿠버 대회를 앞두고 달력의 경기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려넣고는 ‘인생역전!’이라고 적었고 소치 때는 경기 전날 ‘반갑다 또 도전할게’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출사표로 출발선에 섰다. 바로 ‘평창은 내 것’. 이상화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축제라고 생각하고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치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2개의 금메달이 있다. 못 할 수도 있고 원하는 기록이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올림픽을 맞는 ‘지지 않는 꽃’ 이상화는 그렇게 성숙해져 있었다.

빙속 500m는 이번 올림픽부터 단 한 차례 레이스로 경기 방식이 바뀌었다. 소치 때까지는 2차 시기까지 있었다. 원래 1,000m도 출전하려던 이상화는 계획을 바꿔 주종목인 500m에 ‘올인’했지만 바뀐 경기 방식은 이상화의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제다운 혼신의 레이스를 선보였고 홈팬들은 그가 사라질 때까지 “이상화”를 연호했다. /강릉=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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