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억6,000만달러 잭팟이냐? 사생활 보호냐?

2018-02-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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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볼 당첨자 ‘익명 요구’ 재판 시작

▶ “대신 받아주겠다” 등 돈 노린 시달림 스트레스 하루 1만4천달러 손해보며 당첨금 수령 유보 복권 뒷면 서명 전 신탁 설립하면 익명도 가능

5억6,000만달러 잭팟이냐? 사생활 보호냐?

일확천금을 꿈꾸는 로토 구입 열기는 미 전국에서 식을 줄 모르고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돈벼락이 쏟아진 후엔 또 다른 불안이 생기는 듯하다. 뉴햄프셔에선 지난 1월 5억6,000만 달러의 파워볼 잭팟을 터뜨린 후 계속 익명 보장을 요구하는 한 여성이 주 복권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이번 주 13일 시작되었다. [뉴욕타임스/AP]

뉴햄프셔 주 내슈아에서 미 복권사상 7번째로 높은 액수의 5억6,000만 달러 파워볼 당첨자가 나온 것은 지난 1월 6일이었다. 그러나 당첨자는 추첨 한 달이 넘는 지금까지 아직 당첨금을 수령하지 않고 있다.

법정 서류에 ‘제인 도(Jane Doe, 익명의 여성을 의미)’라고만 알려진 이 당첨자는 익명으로 남기를 강력히 원하지만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한 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 주 복권국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당첨자는 사생활 보호 위한 익명보장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그 재판이 지난 13일 힐스보로 카운티 수피리어 법원에서 열렸다.


거액 복권 당첨자의 익명 보장 요구가 핫뉴스로 보도된 후 그녀의 변호팀 사무실에는 이미 전 세계에서 각종 제의가 폭주하고 있다. 그녀가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들로부터 돈을 노리는 위협과 사기 등 온갖 요구에 시달려 당첨자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변호팀은 전한다.


자신의 이름을 제인 도의 실명으로 개명하여 그녀 대신 당첨금을 수령하겠다면서 수수료로 1백만 달러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수 십 명에 이른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자녀 5명을 둔 한 홈리스 어머니는 제인 도를 대신해 당첨금을 타다주는 대가로 6베드룸 하우스와 중고차에 자녀 각자에 대한 소액의 신탁설립을 요구하기도 했다.

코스타리카에 사는 한 사람은 1백만 달러와 여행경비, 그리고 “뉴햄프셔에 가면 입을 따뜻한 옷”을 제공하면 당첨금을 수령해 주겠다고 제의했다.

제인 도의 변호팀이 법정 서류에서 온갖 제의가 폭주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이날 재판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쟁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뜻밖의 거액이라는 횡재는 순진한 시민을, 돈을 갈취하려는 사기꾼과 범죄자들에게 무방비로 노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호팀은 그녀를 이전 복권 당첨자들에게 닥쳤던 “폭력, 위협, 시달림, 사기 그리고 끊임없는 기부 간청”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실명 비공개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2012년 100만 달러 복권에 당첨되었던 시카고의 우루즈 칸은 한 달 후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했는데 경찰은 타살로 보고 있다. 당첨금은 아내와 딸에게 분배되었다. 2006년 플로리다에서 1,700만 달러 복권에 당첨된 에이브라함 쉑스피어는 3년 만에 돈을 거의 탕진했으며 새로 사귄 여자 친구에게 남은 재산 130만 달러를 넘겨준 후 총격살해 당했다. 2006년 2,000만 달러 복권 당첨자 제프리 댐피어는 처제와 불륜관계를 가졌으며 납치살해 당했다. 그보다 10여 년 전 500만 달러 복권에 당첨된 헝가리 이민여성은 남편에게 독살 당했다…)

그러나 뉴햄프셔 주 복권국은 매우 다른 입장을 고수한다. 복권국이 당첨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의 호기심 충족이나 복권 판매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패 대비책이라는 주장이다.


복권국은 매년 수 억 달러 규모의 수입과 당첨금을 감독한다.

“누군가 5억6,000만 달러 공공 복권에 당첨되었다면 누구인가, 공정한 절차를 거쳤는가를 아는 것은 공공이익 사안이다”라고 이날 법정에서 복권국을 대변한 존 컨포티 주 검찰차장은 말했다.

또 복권국은 제인 도가 안전을 위협받는다는 주장에 대해 어떤 위험도 경비를 강화해 관리할 수 있다면서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인 도의 변호팀은 이미 경호원들을 채용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주들은 거액 당첨자들의 이름을 공공기록으로 간주하지만 몇몇 주에선 익명도 허용한다. 또 뉴햄프셔를 비롯한 일부에선 신탁(trust)을 설립해 개인이 아닌 신탁 명의로 당첨금을 수령할 수 있다.

당첨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제인 도는 복권에 적힌 지시사항을 따랐으며 복권국 웹사이트에도 “복권에 서명하라”라고 되어 있다.

그녀가 만약 변호사와 먼저 상의했더라면 이 모든 복잡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먼저 신탁을 설립하고 신탁명의로 당첨금을 수령했더라면 일반에 공개되는 당첨자의 신원은 그녀 개인이 아닌, 신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복권에 서명을 하면서 그럴 기회는 사라졌다는 것이 복권국의 해석이다.

제인 도의 변호팀은 복권과 복권국의 웹사이트가, 서명하면 익명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하지 않아 소비자를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디에도 당첨자에겐 “당첨금 수령 위한 신탁 설립의 옵션이 있다”라는 조언이 없다는 것이다.

복권국 관계자들은 복권을 분실하거나 도둑맞을 경우에 대한 안전책으로 복권에 서명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며 복권국이 법적 조언까지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팀은 이미 복권국이 신탁의 당첨금 수령과 당첨자 개인의 익명성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절차의 투명성을 위해 개인의 신원을 공개하야 한다는 복권국의 주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 전 변호팀은 법정 밖 해결을 위해 제인 도가 복권국 관계자들 앞에서 복권 뒷면의 서명을 지워버리고 신탁이 다시 서명하도록 하자고 제의했다. 오하이오에서 그런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권국은 제인 도의 이름을 지우는 것은 규정에 어긋나는 복권 위조이며 위조된 복권은 무효라면서 제의를 거부했다.

제인 도가 자신의 당첨 사실을 누구와 공유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변호팀은 그녀에게 “당신이 가족과 친구와 친척들을 좋아한다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판결 날짜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런 유보상태로 하루가 지날 때마다 제인 도는 매일 당첨금액의 1일 이자인 1만4,000달러씩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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