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융파동과 민스키 역설

2018-02-15 (목) 채수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작게 크게
지난주 미국 주식은 5% 이상 급락했다. 오를 때나 내릴 때나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주식전문가들은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계속 인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견 맞는 얘기이기는 하나 크게 보면 때가 됐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금리 인상 자체가 경기와 자산가격의 과열에 제동을 걸기 위한 대책으로서 시장 상황을 반영해 움직이는 것이다. 바람직한 것은 이런 정책적 노력으로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금융파국을 막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 불안정성이다. 19세기 산업화로 인한 사회변동을 보면서 카를 마르크스는 이 두 가지 문제점을 간파했다. 그는 노동이 상품화되고 상품이 화폐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의 속성이 문제의 뿌리라고 생각했다. 1848년에 발표된 ‘공산당 선언’에서 그는 은행의 국유화를 주장했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경험하면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실물이 아닌 화폐를 보유하려는 사람들의 속성 때문에 금융이 작동하지 않아 경제불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1936년 간행된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시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이 달을 원하기 때문에 실업이 생긴다’고 했다. 화폐는 생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폐에 대한 수요가 늘어도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생각했지만 케인스는 자본주의의 약점을 고쳐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이먼 민스키는 주기적 금융 파동이 일어나는 과정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호황 국면에서 이자 상환에 문제가 없어 부채가 증가하게 되고 이자 부담이 커지면 금융권이 대출을 조이면서 금융경색이 진행돼 어느 시점에서 파국이 일어난다고 한다. 민스키의 통찰에는 역설이 있다. 호황이 파국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이는 의사결정이 분산된 시장 메커니즘의 약점이기도 하지만 단기적으로 인식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은행들은 호황일 때 다퉈 대출을 늘린다. 생각이 한발 앞선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해 금융이 빠듯해지는 단계에 오면 너도나도 다퉈 대출을 회수한다. 은행들이 문제를 키우고 파국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만 탓할 게 아니다. 정책을 세우고 운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좋을 때 그것이 마치 자기들의 성과인 양 자랑하며 과도하게 확장적인 정책을 펴다가 경기를 진정시킬 시기를 놓치고 상황이 파국에 가까워지면 고민에 빠진다.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긴축을 하면 오히려 파국을 앞당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도 민스키 역설이 적용된다. 평화가 전쟁을 배태한다. 평화가 계속되면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안보를 게을리한다. 예방적으로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과감한 행동을 할 타이밍을 놓친다. 국가지도자들은 갈등으로 치닫는 위험한 행동을 일삼는다. 전쟁 국면에서 의사결정자들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갈등하는데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손실과 희생이 따르는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 안보를 다루는 사람들은 민스키 역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나 저잣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눈앞의 상황에 따라 행동하며 이익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요구를 하기 마련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더라도 멀리 보고 선제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여론조사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따라 움직일 일이 아니다.

평가는 세월이 지난 뒤에 받는 것이 좋겠다. 아니 평가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 경제위기나 전쟁을 막은 공적은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니어서 역사적 평가도 기대하기 힘들다.

<채수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