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닥“셔터만 누르세요”대중화 주도, 소니‘마비카’나오며 디카시장 폭발
▶ 구닥다리라서 더 좋다…간직하고픈 한 컷 찍다
사진과 동영상을 바탕으로 한 소셜네트웍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하루에 공유되는 사진과 동영상은 9,500만개에 달한다.
사진ㆍ동영상 촬영의 보편화는 어느 새 우리의 일상이 됐다. 이를 가능하게 한 카메라의 어원은 ‘어두운 방’이란 뜻의 라틴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서 유래했다. 이는 어두운 공간이나 상자 안에 작은 구멍을 뚫어 빛을 통과시키면 밖에서 새들어오는 빛을 따라 맞은편에 거꾸로 상이 맺히는 장치를 가리켰다. 19세기까지 화가들이 풍경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카메라의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의 촬영기법인 ‘헬리오 그래피’는 1826년 세상에 나왔다. 라틴어로 태양광선(helio)으로 그린 그림(graphy)란 뜻이다. 빛을 받은 역청을 라벤더 오일로 지우면 빛을 받은 부분은 굳어서 남고, 빛을 받지 않은 부분은 오일에 녹는 현상을 이용했다. 다만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상이 맺히기까지는 무려 8시간이나 걸렸다.
헬리오 그래피를 발전시킨 게 프랑스인 루이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이다. 구리판에 은을 얇게 씌운 뒤 수은 증기를 이용해 현상하는 다게레오타입(은판사진술)은 헬리오그래피로 8시간이나 걸리던 작업을 20분 내외로 줄였다. 은판 사진술은 1839년 8월19일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합동회의에서 공표됐다. 이날은 사진의 공식 탄생일로 기록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사진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1888년 코닥의 설립자인 조지 이스트만이 최초로 롤필름을 장착한 카메라를 선보였고, 이듬해 코닥은 “셔터만 누르십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맡겠습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란 문구를 앞세워 사진의 대중화를 주도했다. 사진을 찍은 다음 카메라 채로 코닥에 보내면 현상ㆍ인화를 마치고, 새 필름까지 넣어 다시 카메라 주인에게 돌려줬기 때문에 사진 현상ㆍ인화를 위한 복잡한 도구를 개인이 가질 필요가 없었다.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20년대 들어 현재와 같은 크기의 필름(35㎜)을 쓰는 소형 카메라가 등장해 휴대성이 크게 개선됐고, 렌즈에 비친 모습 그대로 뷰 파인더에서 볼 수 있는 기술 등도 속속 적용됐다.
필름 카메라 시장이 확대되면서 대표주자인 코닥 역시 황금기를 누렸다. 1995년 미국의 한 월간지가 전 세계 유명 상표 282개를 대상으로 한 가치평가에서 코닥은 코카콜라ㆍ말보로ㆍIBMㆍ모토로라ㆍ휴렛팩커드ㆍ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아날로그 사진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 했다. 1981년 일본 소니가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마비카’를 내놓은 뒤 관련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코닥의 파산(2011년)은 아날로그 사진의 추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디지털 카메라 역시 반짝 호황을 누리는 데 그쳤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품질이 나날이 좋아지자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일본 카메라영상기공협회(CIPA)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카메라 판매량은 2010년 1억2,150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12년 9,814만대→2013년 6,284만대→2014년 4,343만대→2015년 3,540만대→2016년 2,419만대로 급감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등대사진관에서 서원희(남)씨 가족이 19세기 유행했던 습판사진술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30초 뒤 필름 나옵니다! 준비해주세요.”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등대사진관. 감광유제(빛에 반응하는 물질)를 철판에 바른 이규열 공동대표가 소리쳤다. 그 말에 작은 스튜디오 안이 분주해졌다. 감광유제가 마르기 전까지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로 옷을 맞춰 입은 서원희(36) 이현종(34) 서주혁(1) 가족이 자세를 다잡았다. 이들은 사진 촬영을 위해 인천에서 이곳까지 왔다. 아이가 태어난 올해를 잘 마무리 하고 싶어 지난 여름 촬영을 예약했다.
이창주 공동대표가 건네받은 필름을 나무판에 끼워 카메라에 넣었다. 1900년대 초반 미국 뉴욕에 있었던 ‘코로나 뷰’라는 회사가 만든 카메라다. 감광유제가 젖어있는 상태에서 촬영ㆍ현상하는 습판사진술(1800년대 중후반 크게 유행)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미국에서 들여왔다. 감도(ISO)가 1밖에 안 돼 사진이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강렬한 빛이 필요하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탓인지 주혁이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틀어놓은 휴대폰을 카메라 렌즈 앞에 두고 시선을 뺏어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창주 대표가 말했다. “감광유제가 마르면 어차피 사진 못 찍으니까 우선 찍을게요.” 번쩍. 조명에서 나온 강렬한 빛이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철판을 정착액에 넣고 앞뒤로 흔들자 희미한 상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19세기 사진기술로 촬영한 흑백사진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자세를 잡는 것부터 현상까지 총 30분이 걸렸다. 서씨 가족은 총 두 번의 사진을 찍었다. 서씨는 “아들이 표정을 살짝 찡그렸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워 좋다”고 말했다. 이씨도 “사진촬영에 대한 기대감, 남편과 함께 이번 촬영에 부여했던 의미 등이 현상된 사진 한 컷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매년 연말마다 변해가는 가족 모습을 남겨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2015년 문을 연 이곳엔 주말마다 가족ㆍ연인 단위로 4~5팀이 방문해 사진을 찍는다. 이규열 공동대표는 “스마트폰으로 금방 찍고 확인하는 일회성 사진이 아니라 찍는 과정부터 촬영 이후에도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사진을 찾아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철판에 찍기 때문에 종이 사진보다 변색이 덜 되고, 습기에도 강하다. 현재 한국내에서 습판사진을 찍는 곳은 3곳 밖에 없다.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사진관도 ‘간직할 수 있는 사진 한 컷’을 위해 방문한 이들로 북적였다. 오후 1시 개점하자마자 결혼 7년차인 김신권(37) 김희경(35) 부부가 사진관에 들어섰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결혼기념일(12월25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김신권씨는 “입사 10주년을 맞아 3일 휴가를 받았는데 해외여행을 가기 보다 오랫동안 간직하면서 가끔 꺼내볼 수 있는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싶어 대구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평일에는 80~100팀, 주말에는 120~140팀이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러 연희동사진관을 찾는다. 김 대표는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사람들이 신선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 사진이 보편화하면서 각종 보정작업으로 얼룩진 사진을 본 모습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데, 오히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근 아날로그 사진이 주목 받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아날로그의 반격’ 저자인 데이비드 색스는 이렇게 분석했다.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는 실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특히 최근 아날로그 사진의 인기는 ‘복고’ ‘추억’ 등과 같은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아날로그 사진의 소비 주체 상당수가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즉석 사진을 찍는가 하면, 구닥다리 유물로 치부되던 필름 카메라도 이들 세대에게 인기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디지털이 일상화한 젊은 세대에겐 아날로그가 오히려 새로운 자극”이라며 “젊은 세대 안에서 보편화하지 않은 아날로그 문화를 즐긴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좀 더 돋보이게 하려는 소비형태”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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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