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년 걸친 연방제 협상 끝내 무산…양분된 섬나라 ‘반통일 민족주의’

2017-12-15 (금) 김종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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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은 선거 중

▶ 남북 키프로스 내달 각각 대선·총선

2년 걸친 연방제 협상 끝내 무산…양분된 섬나라 ‘반통일 민족주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가운데)이 올해 1월 기자회견에서 무스타파 아큰즈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 대통령(왼쪽),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공화국 대통령(오른쪽)과 함께 유엔 중재로 열린 키프로스 평화회담의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AP]

그리스계와 터키계로 양분된 키프로스 남북 정부가 2018년 초 각각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는 남쪽 키프로스 공화국은 1월28일 대선 1차 선거를 준비하고 있고, 터키만이 승인한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은 1월7일 조기총선을 치른다.

각각 인구 100만 명과 30만 명 남짓인 소규모 섬나라가 두 정권으로 양분돼 있으니 통일 문제가 자연스레 정치를 지배한다. 2013년 당선된 키프로스의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와 2015년 집권한 북키프로스의 무스타파 아큰즈 대통령은 모두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고 유엔 중재 하에 2년간 협상에 임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스위스 크랑몽타나에서 마주 앉은 양측의 회담이 최종 결렬되면서 두 대통령은 이제 통일에 반대하거나 미온적인 민족주의 세력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양측이 협상 과정에서 통일 체제로 합의했던 ‘2구역 2체제 연방제(Bizonal Bicommunal Federation)’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키프로스, 진짜 문제는 경제?

키프로스의 현직 대통령 아나스타시아데스는 보수정당인 민주집회당(DISY) 소속이지만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2004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제출한 ‘키프로스 아난 계획’이 국민투표 의제로 올랐을 때, 노동인민진보당(AKEL)과 시민연합 등 좌파정당은 통일을 지지했고 DISY와 민주당(DIKO) 등 보수정당은 지나치게 많은 양보를 했다며 반대했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은 보수진영 가운데서 드물게 아난 계획을 지지했고 한때 당내에서 그의 축출이 거론될 정도였다. 그러나 바로 이 선택이 지난 대선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이번 대선에도 그에 대한 지지는 변함없이 높고, 연임이 유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은 현재 대선 정국에서 양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좌파 진영은 아나스타시아데스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민족주의 진영의 지지를 얻기 위해 통일협상을 의도적으로 무너트렸다고 여긴다. 반면 우파 측에서는 아나스타시아데스가 동참한 연방제 통일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인데다, 북키프로스 정부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입장이다. 물론 우파 측은 협상이 결렬된 궁극적 책임은 북키프로스 주둔군을 철수하지 않으려는 터키에 돌린다.

여론조사 분위기는 우파 진영이 우세하다. 지난 대선에서 아나스타시아데스를 지지한 DIKO는 연방제보다 더 유리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니콜라스 파파도풀로스라는 새 얼굴을 내세웠는데, 전직 대통령 타소스 파파도풀로스의 아들로서 정치적 유산을 계승했고 나이는 44세라 상대적으로 젊은 이미지도 강점이다. 현재는 좌파 AKEL의 스타브로스 말라스 후보와 2위 다툼을 하고 있는데, 결선에만 진출한다면 아나스타시아데스를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후보로 꼽힌다.

한편에선 통일 논의 자체가 무기력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세계 선거가 그렇듯 결국 문제는 경제다. 아나스타시아데스 집권 5년간 경제지표는 나아졌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률이 높아 18세에서 35세 사이 청년층의 62.4%가 대선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 중 통일문제를 핵심 정치의제로 여기는 이들은 9%에 불과했다. 아나스타시아데스는 지난 대선에서 통일을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제시하며 당선됐지만 당장은 통일협상이 실패한 이상 이 논리도 설득력을 잃었다.

대선을 한 달 앞둔 현재 전 인구 3분의1에 이르는 부동층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2위 그룹도 반전을 꾀할 수 있다. 말라스는 균등성장과 복지를, 젊은 정치를 표방하는 파파도풀로스는 청년 지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말라스와 AKEL은 2012년 키프로스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파파도풀로스와 DIKO는 아나스타시아데스와의 차별성을 부각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년 걸친 연방제 협상 끝내 무산…양분된 섬나라 ‘반통일 민족주의’

북키프로스, 통일 전에 국가 승인부터?

평화통일 완수를 일생의 과업으로 삼은 아큰즈 북키프로스 대통령은 지난 7월 어렵사리 끌어온 협상이 무산된 후 “아무 결과도 내지 못하는 협상에 휩쓸리지 않겠다”며 통일 협상에 임하는 키프로스 측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이 세대의 시도는 끝났다. 평화통일은 다음 세대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방제 통일을 적극 추구했던 아큰즈의 발언은 지난 2년간 협상에 대한 북키프로스인들의 실망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내각의 성향이 대통령과 다른 점도 아큰즈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북키프로스는 대통령과 내각이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다. 아큰즈 자신은 현재 당적이 없지만 원래 진보정당인 공공민주당(TDP) 출신이다. 반면 총리는 보수 국민단결당(UBP)이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DP)과 연정을 구성해 배출한 휘세인 외즈귀르귄 총리다. 북키프로스도 키프로스와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이 통일을 지지하는 반면, UBP 등 보수정당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외즈귀르귄 총리는 일단 아큰즈 대통령의 통일 협상을 지지했지만, UBP에는 통일협상에 부정적인 데르비쉬 에로을루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아직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이번 조기총선도 UBP 측이 ‘연방제 재검토’를 의안으로 제출한 데에 연정 파트너 DP가 사실상 반대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DP는 보수진영으로부터 ‘배신 행위를 했다’는 비난을 받고 지지율이 급전직하해 의석 확보조차 위태롭다.

이 틈을 타 각광을 받고 있는 정당이 2016년 등장한 인민당(HP)이다. 기존 양대정당인 UBP와 진보 공화터키당(CTP)에 이은 3위를 달리고 있다. HP는 UBP와 CTP 중 어느 정당도 단독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할 경우 양당 사이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맡아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HP의 대표인 쿠드레트 외제르세이는 중도 성향으로 평가되나 통일 문제에서는 UBP보다 더 보수적으로, 연방제보다는 약화된 연합제(Confederacy) 혹은 숫제 2국가 체제를 선호한다. 북키프로스가 국제사회의 승인을 먼저 받아야 대등한 통일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비록 현 세대의 북키프로스인들은 터키보다 키프로스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하지만, 터키가 북키프로스의 유일한 창구인 만큼 터키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북키프로스가 만에 하나 터키와 병합을 선택할 경우 북키프로스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시민권 중 하나인 유럽연합(EU) 시민권에 접근할 수 없게 되고, 키프로스는 자국을 승인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와 육로로 국경을 맞닿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북키프로스 소재 동지중해대학의 아흐메트 쇠진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장은 북키프로스인들이 불리한 것처럼 보이나 결국 키프로스에도 재앙이 될 것”이라며 키프로스의 전향적인 접근을 촉구했다.

<김종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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