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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사실들

2017-12-14 (목) 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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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 가수 카렌 카펜터, 충격적 죽음으로 알려져

▶ 제인 폰다·레이디 가가 등 “같은 증세로 고통” 고백

거식증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사실들

karen carpenter/ 1983년 거식증으로 숨진 유명 가수 카렌 카펜터.

한참 먹고 마시는 계절이다. 가족 모임도 많고, 대부분의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연말 파티를 열어준다. 동문회도 자주 열리고, 가까운 친구들과 요란한 망년회를 계획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술과 음식이 넘쳐나는 시즌의 한쪽 코너에는 굶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해서 음식을 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먹고 싶지 않은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비만 문제는 끊임없이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그러나 그 정반대의 문제를 가진, 위태롭게 마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서 신경성 거식증(anorexia nervosa)과 폭식한 후 토해내는 과식증(bulimia)을 앓고 있는 사람이 3,000만명이나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부분 여성일거라는 통념과 달리 남자가 3분의 1이나 되고, 백인들의 문제로만 알려졌지만 사실은 흑인, 라티노, 아시안도 많은 수를 차지한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회복하는 사람도 있지만 회복과 재발의 사이클을 반복하다가 만성적 중병이 되어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있다. 전국 식이장애협회(National Eating Disorders Association)에 따르면 거식증 아노렉시아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망 가운데 최고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거식증은 1983년 유명 가수 카렌 카펜터가 이 병으로 충격적인 죽음에 이르면서 일반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으며 아노렉시아라는 이름도 1870년 윌리엄 걸이라는 영국 의사가 붙인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수세기 동안 이런 증세가 인식됐으며, 가톨릭교회가 성인으로 추대한 몇몇 여성은 거식증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카렌 카펜터가 32세에 죽었을 때 사람들은 쉬쉬했지만 모두들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그녀와 오빠 리처드 카펜터 남매는 197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듀오였다. 히트곡을 연달아 냈고, 레코드는 수천만장이 판매됐다. 지금 중장년에 이른 사람치고 카렌 카펜터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노래들에 푹 빠지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카렌의 극한적인 다이어트가 문제였다. 거식증의 전형적인 증세를 보였던 그녀는 아무리 체중을 줄여도 만족하지 못했다. 어느날 이들의 라이브 공연에 참석한 팬들은 너무 놀라서 충격에 빠졌다. 과거 5피트 4인치의 키에 145파운드의 건강한 모습이었던 그녀가 1975년에는 체중이 91파운드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1982년 9월 체중이 77파운드까지 내려가 생명이 위독해지면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녀의 모습을 본 한 친구는 “얼굴에 두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의료진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체중을 더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신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었고, 카렌 카펜터는 1983년 2월4일 심장 정지로 숨을 거뒀다.

그때 이후 식이장애라는 문제에 대해 대중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다른 연예계 유명인사들이 자신도 같은 증세로 고통 받은 사실을 털어놓은 것도 중요한 계기였다. 제인 폰다, 레이디 가가, 켈리 클락슨, 칼리스타 플록하트, 피오나 애플, 폴라 압둘 등이 그들이다.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2011년 27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사인은 마약과 알코올 과용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와인하우스의 남자형제는 그녀가 잦은 불리미아로 인해 몸 상태가 너무 허약했기 때문에 약물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노렉시아 같은 식이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구. 그냥 먹으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퀸스에 살고 있으며 지금은 식이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치료를 돕는 비영리 단체(Project Heal)에서 일하고 있는 아야나 베이츠(20) 역시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식이장애는 보통 사춘기 시절에 찾아오는데 베이츠도 13세부터 음식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학대하기 위해 굶곤 했어요. 자신을 통제하는 수단이었죠. 그게 내가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굶을 때는 흥분이 됐고, 완전한 파워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건강 전문가들은 지금은 식이장애가 심리적, 생리적, 환경적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고의적으로 먹기를 거부하는 증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보다는 뇌와 관련된 질병이라는 사실이 지난 수십년 동안의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고 뉴욕 장로병원의 식이장애센터 소장 에블린 아티아는 말했다.

어떤 사람은 유전적으로 이 질병에 취약하고,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특별한 계기들로 인해 식이장애를 겪게 된다. 또한 사회적, 환경적 요소도 물론 있다. 날씬하고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예를 들 것도 없이 미스 아메리카 경연대회 수상자들의 체형 변천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7월 애틀란틱 매거진은 지난 100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아온 이 대회의 역대 수상자 체질량지수를 게재한 바 있다. 체중과 신장과의 관계를 수치로 보여주는 이 BMI 지수는 25 이상이면 과체중, 30 이상이면 비만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18.5 이하면 저체중이다.

매거진이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1920년대 미스 아메리카의 전형적인 신체조건은 5피트 6인치의 키에 체중 136파운드, 그리고 체질량지수는 22였다. 그런데 2000년대에 이르러 이 대회 수상자들의 신체조건은 같은 5피트 6인치이지만 체중이 105파운드, BMI 지수는 16.9였다.

미네소타의 식이장애 치료 ‘에밀리 프로그램’의 질리안 램버트는 식이장애의 원인은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전자, 트라우마, 사회적 미적 기준의 압박감 등 모든 것이 융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전에는 이런 문제가 서구 나라들에서 주로 발견됐지만 식생활이 전세계적으로 비슷해진 요즘 세상에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를 치료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어떤 주에서는 아노렉시아와 불리미아를 정신병으로 분류하지만 다른 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보험회사에서 커버해주는 곳도 있고 안 해주는 곳도 있다.

카렌 카펜터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거식증의 문제와 고통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자전적 경험을 담아 ‘아노렉시아 해독하기’(Decoding Anorexia: How Breakthroughs in Science Offer Hope for Eating Disorders)라는 책을 쓴 캐리 아놀드는 이렇게 고백했다.

“증세가 극심해졌을 때 나의 피부색은 회색기가 도는 노란색으로 변했고,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다. 몸은 완전히 쪼그라들어서 옷을 입으면 그대로 흘러내리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이렇게 묻곤 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다이어트 팁을 달라는 것이었다. 나의 심장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거식증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사실들

거식증 소녀를 다룬 2017년 영화 ‘투 더 본’ (To the Bone)의 한 장면.



<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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