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연 출산, 두려움에 떠는 출산은 그만… 엄마와 아기의 축제로

2017-11-24 (금) 강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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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만 해도 진저리‘굴욕 3종세트’, 관장·제모·회음부 절개 없는 출산

▶ 회복 속도 빠르고 스트레스 적어, 그네·수중분만 등 편안한 방식 선택

자연 출산, 두려움에 떠는 출산은 그만… 엄마와 아기의 축제로

엄마가 진통하는 중에 첫째 아들이 그 곁에서 간식을 먹고 있다. <신정민씨 제공>

유민서(36)씨는 지난 6월20일 딸 쌍둥이를 품에 안았다. 그녀는 35세 이상 산모이자 쌍둥이 임신이기에 병원에선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이 정도만 듣고도 출산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들은 “아! 제왕절개를 했구나”라고 단정짓기 십상. 하지만 유씨는 그날 수술대에 눕지 않았다. 약물 처치도 없이 오롯이 그녀의 호흡과 이완, 자신의 힘 만으로 두 딸을 낳았다.

출산 당일 의사와 유씨의 행적을 따라가면 ‘저래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가 막힌 순간들이 더 많다. 그녀는 그날 오전 9시30분 남편과 쌍둥이(당시 37주차)가 잘 있는지 정기검진을 받으러 서울 한남동에 있는 대학병원에 갔다. 의사는 “진통이 규칙적이니 오늘 중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겠다”며 “밥 먹고 운동하고 오라”고 말했다.


유씨는 병원 근처 이태원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한 뒤 오후 2시가 넘어서 병원을 다시 찾았다. 물론 그 동안 진통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진통과 진통 사이 몇 분간의 휴식기가 찾아오면 남편과 수다를 떨고, 간식을 먹고, 걷던 길을 마저 걸었다. 이후 유씨는 병원에서 최고조에 다다른 진통을 겪은 뒤 오후 4시20분 4분 간격으로 두 딸을 낳았다. 유씨는 “검진 상 내 신체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아기집 하나에 두 아이가 있는 일란성에 비해 아기집 2개에 각각 아이가 있는 이란성 쌍둥이는 상대적으로 위험도도 덜해 제왕절개 대신 자연출산을 택했다”며 “환자 취급을 받는 것 대신 내가 출산의 주체가 되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출산의 경험이 있다면 아이가 태어나던 그날을 떠올려 보자. 평화롭고 행복했는가. 아니면 이른바 ‘굴욕 3종 세트’(관장ㆍ제모ㆍ회음부 절개) 기억에 진저리가 나는가. 그저 고통만 남은 공포였는가. 개인별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출산 시 겪는 진통은 보통 신체 일부가 잘려져 나갈 때 느끼는 통증과 유사하다. 어떤 이는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온다’고 표현할 정도다. 당연히 아이를 낳기 전 이런 통증만 상상한다면 ‘출산=공포’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자연출산이란

최근 몇 년 새 출산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바로 유씨와 같이 아이를 낳는 ‘자연출산’(Nature Birth)이다. 이는 삶의 과정(well-being)과 마무리(well-dying)를 논하기 전에 그 출발점, 즉 어떻게 출산할 것인가(well-birthing)를 먼저 생각해 보자는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보통 출산은 ‘1단계 진통(금식과 관장 필수, 상황에 따라 촉진제와 무통주사 동반)→2단계 출산(아기가 안 나오면 배를 누르거나 겸자 동원 또는 제왕절개)→3단계 후처치(태반 꺼내고 회음절개 봉합)’ 등 단계를 거친다. 겸자란 날이 서지 않은 가위 모양의 외과 수술 기구다.

자연출산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는 행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연분만은 의사가 안전하게 산모의 몸에서 아기를 빼낸다는 의미가 강하고 모든 결정권이 의료진에게 있는 반면, 자연출산은 ‘출산의 주체’가 산모와 아기란 점에서 결을 달리 한다. 출산의 1~3단계에서 행해지는 각종 약물과 처치 등은 최소화하고 산모가 능동적으로 출산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가령 임신 주수(40주)가 지났어도 인위적 진통(촉진제)을 택하는 대신 자연 진통이 걸릴 때까지 기다린다. 산모는 금식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내진과 관장을 거부할 수도 있다. 분만대에 누워 일률적으로 다리를 벌리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 가정집 분위기의 방에서 쭈그려 앉아 낳거나 그네를 타고 낳을 수도 있다. 수중 분만도 가능해 출산 방법도 자유롭다. 탯줄도 맥박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자른다. 출산 후 아기는 신생아실로 보내지지 않고 엄마와 한 방에 같이 있게 된다. 산모가 존중 받고 배려 받는 환경 속에서 새 생명을 맞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부부가 주도적으로 출산을 하기도 한다. 신정민(34)씨는 지난해 9월 1일 둘째 아들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낳았다. 신씨는 “집안 거실에 어른 3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유아 튜브 수영장을 설치해 물 속에서 아기를 낳았다”며 “진통하는 동안 남편은 뒤에서 마사지를 해주며 격려를 해줬고, 4살 된 첫째 아들도 동생이 나오는 과정을 함께 지켜봤다”고 말했다. 신씨 부부는 출산 후 첫째 아이에게 “동생이 주는 선물”이라며 케이크를 건넸다. 그녀는 “축제 속 분위기에서 둘째를 낳으니 첫째 아들도 동생에 대해 갑자기 엄마를 뺏으러 온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지금도 동생이 태어난 날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한국은 1% 미만

자연출산으로 얻는 효과가 산모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박지원 연앤네이쳐 산부인과 원장은 “자연출산을 한 산모는 임신 전부터 운동 등으로 몸을 단련시키기 때문에 일반 산모와 비교했을 때 회복 속도가 훨씬 빠르고, 출산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만큼 출산 후 분비계통이나 혈액 순환 계통 이상으로 생기는 산후풍도 잘 겪지 않는다”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서 함께 하기 때문에 모유수유 성공률도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자연출산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메디플라워병원 조사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1960년대부터 프레드릭 르봐이예와 미셀 오당 등의 의사들이 신생아가 출산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의료 개입을 최소화하는 출산이 확산됐다. 이런 영향으로 현재 네덜란드는 산모의 70% 정도가, 프랑스와 영국은 30~40%가 자연출산을 택하고 있다. 한국의 병원 시스템에 영향을 준 미국 역시 10% 정도는 자연출산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0.5%(2015년 기준ㆍ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불과하다. 7년째 대학병원에서 자연출산을 담당하고 있는 최규연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유럽이나 호주, 캐나다 등 외국은 조산원 출산이 많고 자연출산 관련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보니, 한국의 일률적인 출산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외국인이 많다”고 말했다.

■대중화하려면

자연출산이 좀 더 대중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위험하다’는 편견과 싸워야 한다. 자연출산 병원이라 하더라도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항상 대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응급 또는 비상상황 시 언제든 기존의 출산 방식으로 즉각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다.

다만 위기 상황이 와도 “수술과 약물은 절대 불가”라고 거부하는 산모도 있는데, 의료진은 이런 시각은 위험하다고 단호히 말했다. 최 교수는 “정상 산모와 태아일 경우 의료 처치를 최소화하겠다는 등의 산모 요구사항을 존중하겠다는 것이지, 아예 의료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진통과정 중 문제가 있을 땐 의학적 판단에 따른 처치와 개입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산모가 자연출산에 대해 너무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박 원장은 “언론 등에 비친 자연출산의 긍정적 모습만 보고 특정 병원이나 특정 조산사를 찾아오는 산모도 많은데, 결국은 본인이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며 “넓게 보면 자연출산은 건강하고 주체적인 삶의 태도와 연결돼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연출산을 위한 제도적 지원도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은 의료 행위에만 건강보험(급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에 일반 병원에서 촉진제나 무통주사 등 의료 처치를 다 받아도 다인실 2박 3일 기준 출산 비용이 보통은 50만원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출산은 1인실에서 이뤄지고 조산사와 간호사 등 여러 인력이 산모 한 명을 위해 출산이 끝날 때까지 투입되는데도 이런 인력 지원이나 1인실 경비는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자연출산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의료보험 적용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사보험에서도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지원 부문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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