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저임금 인상 넉달…‘승자는 없다?’

2017-10-23 (월) 류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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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주들 인건비 부담에 음식값 슬그머니 올려

▶ 근로자 근무여건 악화, 일자리 유지도 불안

지난 7월1일 LA 카운티와 LA 시의 최저임금이 직원 25인 이하 업체는 시간당 10.5달러, 26명 이상은 12달러로 오른지 만 4개월이 되어가지만 한인 경제권은 여전히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업주들은 인건비 부담이 늘었다고 하소연하고, 고객들은 야금야금 오른 가격 탓에 울상이다. 직원들도 분명히 시간당 임금은 올랐지만 일각에서는 불안해진 고용환경에 열악해진 근무여건 탓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분위기다. 특히 업주들 사이에서는 오는 2021년까지 매년 7월1일을 기해 최고 15달러까지 오를 최저임금의 인상 로드맵이 ‘시한폭탄’ 같다는 말까지 오가고 있다.

■업주들 “이길 방법이 없다”

LA 한인타운에서 대를 이어 20년 넘게 영업 중인 한 식당은 올 상반기 미리 음식 가격을 1.45달러에서 최고 6달러까지 올렸다. 꽁치처럼 저렴한 식재료 대신 가자미, 민어, 굴 등 고급 재료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였지만 기존 메뉴도 가격이 올랐다.


이 식당 관계자는 “불과 3년 전 8달러였던 최저임금이 또 앞으로 4년 뒤에는 15달러로 2배 가까이 뛸텐데 이길 방법이 없다”며 “대신 재료를 아끼지 않고, 맛을 지켜나가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고객들의 불만도 이해하지만 업주들은 가격인상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했다. 한 중식당의 오너는 “최저임금 올랐지, 노동법 강화됐지, 재료비까지 올라 지난 1년 사이에 마진이 15% 넘게 줄었다”며 “전체 메뉴는 아니고 일부에 대해 7~8% 정도 가격을 올렸다”고 털어놨다.

업주들의 불안감은 의외로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괘를 함께 하며 확대되고 있다. 한때 타운에서 잘 나가는 비즈니스는 월 매출의 8~10배까지 매매가가 정해져서 거래됐지만 지금은 많아야 5배를 넘기기 힘들게 됐다.

■고객들 “내 봉급은 그대로인데”

고객들도 나름대로 고충을 겪고 있는데 가장 큰 불만은 당연히 가격 상승이다. 한인타운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김모 씨는 “요일에 따라 거의 비슷한 메뉴로 점심을 해결하는데 지난달 가게부를 보니 지난 5월에 비해 점심값으로 50달러가 더 나갔더라”며 “나중에 따져 보니 음식값이 2~3달러씩 오른 걸 발견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인타운에서 스튜디오 시티로 이사를 한 이모 씨도 짜증이 났다. 올해 초 같은 이사짐 업체를 이용한 지인의 소개로 500~600달러 정도 비용을 생각했는데 700달러 이상이 나온 것. 이씨는 “최저임금이 올라 그렇다는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며 “법에 따른 인상분을 고객이 물어야 하는지 나중에 궁금해졌다”고 의아해했다.

일부 샤핑몰에서는 발렛파킹 비용이 덩달아 올랐다. 기존 1~2달러였던 것이 2.5달러에서 3달러까지 올랐다


그나마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이라도 봤다면 모를까 고객들은 본인의 소득은 정작 그대로인데 오른 임금 부담을 져야하는 것이 불만이다. 여기에 일부 업소의 경우는 직원 숫자를 줄이고 셀프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변화가 생기면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제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등 덩달아 고객들의 불편도 늘었다.

■직원들 “아직 모르겠다”

지난 7월 LA타임스는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LA의 50만명 이상 근로자들이 누릴 것으로 추산했다. 직접적인 수혜자인 이들은 지난 4개월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해하는 분위기지만 속내는 직종과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글렌데일의 한 소매점에서 일하는 이모 씨는 “6월까지 10.60달러였던 시급이 12.10달러로 오르면서 월급이 10% 이상 늘었다”며 “고맙게도 근무시간이 줄어들지 않아 손에 쥐는 수입이 그대로 늘었다”고 만족해했다.

그러나 업주들이 교대근무제를 도입해 파트타임 직원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오버타임을 줄이는 경우도 있어 직원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지난 6월 나란히 시애틀을 표본으로 각각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효과를 분석한 UC버클리와 워싱턴대의 결론은 정반대로 발표됐다.

UC버클리의 마이클 리치 교수팀은 최저 시급이 8.55달러에서 13달러로 인상된 2010~2016년의 변화를 외식업계 근로자로 한정해 조사했는데 결과는 최저임금이 10% 오를 때마다 소득은 1% 증가했고, 고용은 줄지 않았다.

반면 워싱턴대 제이콥 비그도르 교수팀은 최저 시급이 11달러에서 13달러로 오른 지난해 모든 직종의 최저임금 근로자의 근로 시간과 소득을 분석했는데 결론은 근로시간 9.4% 감소, 일자리 수도 6.8% 축소로 소득이 월 평균 125달러 감소했다.

<류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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