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페이퍼타월을 먹게 하라

2017-10-23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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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타월을 먹게 하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아이오와주의 상황은 여전히 참담하다. 주민의 3분의 1은 3주째 깨끗한 물 없이 지내고 있고, 수인성 전염병이 확산중이다.

전기도 주민의 6분의 1에게만 공급되고 있다. 의료체계는 무너졌고. 일부 오지에는 기아문제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다행히도, 연방정부는 피해복구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난구호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한 대통령은 아이오와 주민들의 영웅적인 자구노력을 치켜세우는 한편, 필요한 모든 지원을 차질 없이 계속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 내가 꾸며낸 이야기다. 위에 언급된 참담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한 곳은 아이오와가 아니다. 아이오와와 비슷한 숫자의 주민을 거느린 미국령 푸에르로리코다.

그리고 앞서 묘사된 연방정부의 긍정적인 대응은 만약 재난지역이 푸에르토리코가 아니라 아이오와였다면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는 내 개인적 상상일 뿐, 실제 진행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지금 350만 명의 미국 국민이 당하는 배신과 포기의 실상을 목격하고 있다.

허리케인 마리아에 대한 정부의 초기 비상대응이 한심할 정도로 부적절했고 미국내 다른 지역의 재난발생 당시의 대응수준에 크게 못미쳤다는 숫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재난 복구작업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전력과 물, 음식 부족이 누적효과를 보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현지 주민들의 생활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참사를 시급히 풀어야할 연방정부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주민들에게 부분적으로 책임을 돌리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홍보용 이슈로 몰아가려는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긴다.

이재민들에게 자신이 직접 페이퍼타월 두루마리 몇 개를 던져 준 것을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이라 생각하는 도널드 트럼프는 처음부터 푸에르코리코가 이번 재난에 책임이 있음을 여러 차례 시사했고, 주민들의 상조노력을 조직적으로 폄하했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최근 그의 트위터를 통해 대부분의 독립적인 언론보도 내용과 달리 현지의 재난복구 노력을 낙관적으로 조명한 비디오를 내보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푸에르코리코 현지주민은 소수에 불과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지적대로 비디오는 편집한 흔적이 역력했다. 산림청 근로자들이 길을 치우는 장면은 인터뷰에 응한 연방 관리가 현지 관민의 노력을 칭찬하는 대목 바로 직전에 잘려나갔다: 삭제하기 전의 비디오를 보면 산림청 관리는 “푸에르코리코 주민들이 필요한 구호물자 운송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길을 치우는 등 헌신적인 구호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행정부 관리들이 시사하는 바와 달리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올바르게 행동했다.

반면 트럼프는 허리케인 마리아가 푸에르토리코를 강습한지 3주가 지나서야 비로서 의회에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가 요청한 지원은 무상지원이 아 융자금이었다. 푸에르토리코가 사실상 파산상태임을 생각한다면 어이없는 조치다.

이어 지난 12일 아침, 트럼프는 프에르토리코가 이번 재난에 자체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마치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군의 지원을 끊을 것처럼 재차 으름장을 놓았다.

한가지만은 분명히 해두자: 푸에르토리코는 허리케인이 닥치기 전에 이미 심각한 경제난과 재정난에 처한 상태였다. 일부는 재정관리 잘못에 따른 결과이지만, 상당부분은 글로벌 경제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푸에르토리코에 제공되던 결정적인 세금혜택 폐지와 화물운송을 값비싼 미국적 선사에만 의존하도록 규정한 ‘존스 액트’(Jones Act)를 워싱턴이 강행하면서 라틴 아메리카국가들과의 경쟁이 심화됐다.

글로벌 경제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은 비단 푸에르토리코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지역들은 연방정부의 지원에 의존해 어려움을 제한할 수 있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가 전체 주민의 44%를 커버하지 않는다면 웨스트 버지니아가 어떤 형편에 처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수천명이 재정파탄, 혹은 조기사망의 위험에 직면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주 전체 노동력의 16%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의료와 사회지원 분야의 고용에는 또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들 분야의 일자리는 트럼프의 핵심지지 그룹인 미국 탄광산업 전체 일자리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어찌됐건 이 모든 것은 부수적인 일이다. 단순한 진실은 수백만 명을 헤아리는 우리의 동료 시민들이 재앙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곤궁한 처지에 놓인 그들을 도대체 왜 그렇듯 헌신짝처럼 버리려드는 것일까?

대답은 의심의 여지없이 레이스(race: 인종)라는 네 글자에 담겨 있다. 예컨대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백색인종인 노르웨이인의 후손이라면 아마도 지금보다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공정해지자: 트럼프는 독자들이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인 수백 만 명의 의료보험을 파괴하기 위해 열심을 내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근로계층에 속한 비 히스패닉 백인들로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몰표를 던졌다.

트럼프는 분명 소수계에 대한 반감을 지니고 있지만 나는 그를 기회균등 괴물로 몰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완전한 자기중심주의와 공감력 결핍은 꽤나 폭넓게 연장된다.

모티브를 이루는 정확한 요소들이 무엇이건 간에, 푸에르토리코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참으로 수치스럽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가 수치스런 짓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탠 모든 사람들이 죄책감을 나눠가져야 한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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