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기 잡는 모기, 이기적인 박테리아 덕분이죠

2017-10-19 (목) 정길상 국립생태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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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포질에 기생하는 볼바키아 자손 번식에 유리

▶ 수컷이 될 알 죽이거나 암컷으로 모두 변화

모기 잡는 모기, 이기적인 박테리아 덕분이죠

신생아에게 소두증을 유발할 수 있는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 <연합 뉴스>

‘모기 잡는 모기’를 아시나요. 박테리아에 감염된 수컷 모기와 감염되지 않은 암컷이 교미를 한 뒤 낳은 알은 깨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모기 번식을 막는 방식인데요. 최근 미국이나 브라질에서는 지카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인공적으로 감염된 모기를 숲에 풀어놓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모기를 숙주로 삼는 ‘볼바키아(Wolbachia)’라는 박테리아가 활용되는데요. 볼바키아는 모기의 발생을 제어할 뿐 아니라 뎅키 바이러스(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말라리아 원충 같은 모기가 옮길 수 있는 병원체들도 억제한다고 하네요.

■성을 교란하는 이기적 미생물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체의 기본 화두를 진화이론으로 집대성한 이후 생물학자들은 생명체가 어떻게 생존하고 번식하여 번성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죠.

다윈이 살던 당시에는 요즘 우리가 실험실에서 매우 쉽게 볼 수 있는 염색체라든가 유전자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다윈은 더 적합한 형질을 가진 자손들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손 번식의 핵심 도구인 성이 어떻게 결정되고 더 적합한 형질이 어떻게 자손에게 전달되는 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죠.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동시대에 살았던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 그레고어 멘델이 가지고 있었지만, 다윈은 멘델의 완두콩 연구를 통한 과학사 최대 발견 중 하나인 유전법칙을 몰랐습니다. 다윈은 멘델이 편지로 보낸 실험결과를 읽지 않았고, 다윈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멘델의 유전에 대한 연구 결과는 믿지 않았습니다.

다윈 이후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로 불리는 영국의 윌리엄 해밀턴은 1967년 사이언스(Science)지에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하는데 그 내용은 ‘벌류의 성비가 왜 암컷으로 치우치는 지’와 ‘성을 교란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이기적인 존재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었습니다.

4년 뒤인 1971년 미국의 미국의 제니스 하루미 옌과 랄프 바가 집모기류의 개체군간 번식 실패가 모기의 세포질에 살고 있는 볼바키아에 의한 것이라는 논문을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뒤로 볼바키아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됐습니다.

■수컷 곤충의 탄생 막는 볼바키아

볼바키아는 많은 벌레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부 나비나 딱정벌레에 기생하는 볼바키아는 수컷이 될 알을 발생 초기에 죽여버리죠. 이를 웅성사망(male killing)이라고 하는데요. 이를 통해서 암컷들은 더 많은 먹이를 먹을 수 있고 더 튼튼한 자손을 낳습니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개체들이 그렇지 않은 개체들보다 생존에 유리하게 되는 거죠.


공벌레류의 경우 유전적으로 수컷인 개체가 볼바키아에 감염되면 암컷으로 변하는 자성화(feminization)가 발생합니다. 감염돼서 암컷으로 바뀐 개체는 다른 수컷과 교배해 정상적으로 자손도 번식할 수 있죠. 이렇게 성이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은 공벌레의 성을 결정하는 호르몬의 작용을 조절하기 때문이죠. 볼바키아에 감염된 기생 벌 중에서는 모든 자손이 암컷으로 발생해 자손을 낳는 단위생식(parthenogenesis)을 하는 개체가 있다고 하는데요. 성을 교란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이기적 존재에 대한 해밀턴의 예측이 들어맞는 순간입니다.

볼바키아가 만들어내는 가장 흔한 교란작용은 20세기 기초 곤충학의 8대 대발견 중 하나로 인정받는 ‘세포질 불합치(ytoplasmic incompatibility)’입니다. 볼바키아에 감염되지 않은 암컷이 감염된 수컷과 짝짓기를 하면 그 암컷이 낳은 알은 모두 죽게 되는 현상입니다. 각각 다른 종류의 볼바키아에 감염된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하는 경우에도 알이 모두 죽어버리죠. 구체적인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볼바키아 때문에 정자와 알의 핵막, 염색체의 행동이 크게 교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볼바키아는 왜 성을 교란할까

성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는 ‘기생체에 대한 저항기작’입니다. 그런데 볼바키아는 그 성을 교란할 수 있게 진화했죠. 곤충들이 자체적으로 성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도 볼바키아가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볼바키아의 삶의 터전이 숙주의 세포질이라는 데 있습니다.

고등동물에서 수컷이라는 존재는 자손에게 유전자만을 제공하는 반면, 암컷은 세포질도 함께 전달합니다. 이 때문에 볼바키아는 자신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암컷으로 숙주개체의 성을 극적으로 유도하고, 필요 없는 수컷을 없애거나 감염되지 않은 암컷이 자손을 남기는 것을 억제합니다. 한마디로 이기적인 유전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죠.

볼바키아는 모기 등 절지동물뿐 아니라 여러 선충에서도 발견됩니다. 이 선충에서의 작용은 나비나 딱정벌레, 벌 같은 다른 곤충에서 나타나는 성비 교란 작용과는 전혀 다릅니다. 감염된 선충들은 볼바키아 없이는 새끼를 낳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거든요. 볼바키아에 감염된 선충에 항생제를 투입해서 볼바키아를 죽이자 알을 낳지 못하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또 한번 볼바키아에 감염되면 그 후손들도 모두 감염되죠.

■오랜 외면끝에 발견한 볼바키아의 가치

사실 볼바키아가 모기의 세포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1924년입니다. 볼바키아가 모기 번식을 억제한다는 내용이 1971년에야 밝혀졌으니 50년만에 그 존재가치가 드러나게 된 것이죠.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침묵과 외면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비단 볼바키아 뿐만이 아닙니다. 볼바키아 이후 연구가 지속되면서 숙주의 성비를 교란하는 여러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가 차례로 밝혀지기도 했죠.

‘예외를 소중히 하라!(Treasure your exceptions)’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 한 영국의 유전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의 명언입니다. 눈도 보이지도 않고 곤충의 몸 안에 사는 것들을 찾아내기는 것은 그간의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아니었더라면 가능치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예외를 휴지통에 던져 버렸으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예외를 만나게 될까요.

<정길상 국립생태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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