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화 첫 주연 유정아 전 아나운서 “이젠 배우로 불리고 싶어요”

2017-10-05 (목)
작게 크게

▶ 박기용 감독 신작 ‘재회’서 주연…부산영화제서 공개

영화 첫 주연 유정아 전 아나운서 “이젠 배우로 불리고 싶어요”

유정아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천명(知天命). 그동안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나이다.

올해로 만 오십인 유정아(50) 전 KBS 아나운서가 생애 처음으로 스크린에 도전했다.

영화 '모텔선인장' '낙타(들)'를 연출한 박기용 감독의 신작 '재회'에서 주연을 맡았다. 어느 겨울날,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자와 여자가 25년 만에 인천공항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뒤 설렘과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내용의 멜로영화다. 이달 12일 개막하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첫선을 보인다.


최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유씨는 이제야 천직을 만난 듯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를 찍으면서 젊은 날 방송이 아니라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스크린 데뷔는 박 감독과 인연이 계기가 됐다. 신작에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고 싶었던 박 감독이 10여 년간 알고 지냈던 유씨를 떠올린 것이다.

"작년에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저는 중국에서 8개월 정도 살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친분이 있던 이창동 감독님께 상의드렸더니 '살면서 중국에 갈 일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괜찮은 감독의 영화에 주연할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조언하셨죠. 결국, '오케이'를 했어요."

2013년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출연하면서 연기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체감했기에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컸다고 했다.

"저는 어떤 일을 스스로 도모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다만 제안이 왔을 때, '예스'라고 말하는 성격이죠. 돌이켜보면 방송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었죠. 방송할 때는 항상 끝나는 시간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연극을 할 때는 제가 무대에 서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죠."
영화 첫 주연 유정아 전 아나운서 “이젠 배우로 불리고 싶어요”

‘재회’ [유정아씨 제공]

'재회'는 쓸쓸한 중년 남녀에게 다시 찾아온 사랑을 그린다.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가 한국에 온 여자와 유학길에 오르는 딸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남자, 공항에서 재회한 두 남녀는 만나서 밥을 먹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나이 들어감은 무엇인지, 또 지나간 사랑을 되돌릴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극 중 여주인공은 별로 말이 없어요. 연기하면서 원래 제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죠. 어쩌면 제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삶이기도 하고요."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유씨는 1989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해 'KBS 9시 뉴스' '열린음악회' 등을 진행했다. 1997년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에는 방송인, 강사,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다. 모교인 서울대에서 6년간 말하기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는 "말하기를 업으로 삼았지만, 그 전까지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면서 "다만 직업적으로 단련됐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연기는 달랐다. 방송과는 다른 희열을 줬다. "살면서 다른 사람의 삶에 일부러 감정을 이입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배우는 다른 누군가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도를 닦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베테랑 방송인이지만, 연기자로서는 신인이다. 전문적인 연기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래도 '재회'에서 자신의 연기에 대해 "주변의 평가가 나쁘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유씨는 연극, 클래식, 글쓰기 등 문화예술 여러 방면에서 조예가 깊다. 음악회 진행 등도 꾸준히 맡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정치권에서도 끊임없이 러브콜이 오고 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시민캠프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2014년에는 '노무현시민학교' 교장으로 발탁됐다.

지난 대선 때도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다. 올해 5월에는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에 내정됐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그는 "이 정부에서 할 일이 있으면 하겠지만, 정치에는 전혀 뜻이 없다"면서 "1년에 한편씩 작은 영화에라도 출연해 배우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