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해숙, ‘엄마 장르’ 대표 배우의 고백

2017-09-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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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숙, ‘엄마 장르’ 대표 배우의 고백

영화 ‘희생부활자’의 김해숙 / 사진제공=쇼박스

김해숙(62)은 작품이 자식 같다고 했다. 오는 10월 12일 개봉을 앞둔 영화 '희생부활자'(감독 곽경택)는 그녀가 품었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유독 애정이 가는 자식이다. 김해숙은 "엄마가 자식 예쁘다고 하면 팔불출이라 하는데"라고 말미를 두면서도 "어디 내와도 손색없을 만큼 잘 나왔다"고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다시는 못 한다 싶을 만큼, '희생부활자'는 만만찮은 작품이었다. 제목인 '희생부활자'(RV)란 복수를 위해 되살아난 죽은 자이고, 김해숙은 7년 만에 돌아온 RV이자, 난데없이 사랑하는 아들(김래원 분)을 죽이려 하는 엄마가 됐다. 촬영 내내 극한의 상태를 표현하면서 쏟아지는 겨울비를 온 몸으로 맞았다. '국민엄마'로 불린 그녀에게도 도전과도 같은 '엄마' 캐릭터였고, 김해숙은 기꺼이 그리고 기어이 그 모두를 해내고 말았다.

한때 그저 '엄마'라는 이름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데 회의를 느꼈다는 그는 "엄마라는 장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녀의 말 대로라면 '희생부활자'는 엄마 장르의 극한일 것이다. 끝나고 나서야 한참을 앓았다고, 다시는 액션 같은 것 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으면서도 김해숙은 이내 그렇게 태어난 작품이 예쁘고 소중해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그녀는 지독했던 산고를 어느새 잊어버린 엄마 같았다.


-'희생부활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잘 나온 것 같다. 전개가 빠르고 반전이 대단하다. 엄마가 자식 예쁘다고 하면 팔불출이라 하는데, 해외에 내놔도 손색 없을 만큼 잘 나왔다. 자랑이 심한 것 같지만 사실이다. 공포 스릴러 액션 감동까지,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가 될 것 같다. 시나리오가 좋았고, 배우 감독 스태프 모두 정말 열심히 잘 만들었다. 구멍이 없을 것이다.(웃음)

-죽었던 사람이 복수를 위해 살아 돌아온다는 '희생부활자'(RV)는 소재부터가 독특하다.

▶RV 자체가 생소했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니, 비슷한 것들이 참 많더라. 원혼이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죽었다가 몇 시간 뒤에 살아나 천국을 봤다는 사람도 있지 않나. 저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덮고 생각났던 건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다. 지금 3년이 되셨다. 당시 한창 엄마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이 제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아실 텐데, 저희 엄마를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찍었고, 열심히 해서 제 마음을 전달하실 것이다.
김해숙, ‘엄마 장르’ 대표 배우의 고백

영화 ‘희생부활자’의 김해숙 / 사진제공=쇼박스

-'국민엄마'라 불리기도 하고, 수많은 엄마 캐릭터를 해 왔다.

▶불만은 없다.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것,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이 엄마더라. 그런 생각을 했던 게 '해바라기'였던 것 같다.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받아들이는 엄마 캐릭터였다. '왜 나는 엄마 역할 밖에 못하지?' 하며 배우로서 존재감 있는 역할을 하고픈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하면서 엄마 또한 한 장르가 아닐까, 그 안에 수많은 엄마가 있구나 하는 자부심·자긍심이 생겼다. '엄마'란 두 글자는 가장 쉽고 가장 보통의 단어지만 가장 어렵고 힘들고 깊은 단어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엄마가 있지만 모정은 하나고, 상황이 다른 엄마를 풀어나가면 되겠구나 했다. 그 다음부터는 엄마를 연기하더라도, 항상 김해숙이더라도, 조금은 다른 엄마를 해야한다고 결심했다. 그런 자세로 임해 왔다.

-이번 '희생부활자'의 엄마는 전형적인 엄마와 완전히 다르다.


▶제가 수많은 엄마를 해 왔지만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충격이었다. 자기가 너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러 온 엄마라는 것 자체가 너무 공포스럽고 충격적이어서 저도 감독님처럼 처음엔 시나리오를 읽다 덮었다. '이게 뭐지' 하다가 다시 시나리오를 폈고 흥미롭게 끝까지 읽었다. 그 안에 굉장히 많은 엄마의 모습이 있었다.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저도 시나리오를 덮었다. 너무 공포스럽고 충격이었다. 이게 뭐지 하다가 너무 흥미로워서 다시 끝까지 읽었다. 엄마지만 그 안에서 굉장히 많은 엄마의 모습이 들어있구나 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달랐다. 너무 재미있고 너무 좋았다.

-마침 김래원과 3번째 작품으로 모자 호흡을 맞췄다.

▶말이 필요없었다. 배우가 어떤 상대든 같이 극을 이끌었다 다음에 만나면 시너지가 소진돼 서로 피하곤 한다. 그런데 래원이랑은 이상하다. 래원이랑은 눈빛만 봐도 통한다. 걔도 저를 엄마라고 하고 저도 아들이라고 부른다. 연기할 때 낸 아들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다. 배우로서 3번을 호흡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도 깊고 그 믿음이 연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귀는것도 10년이 넘어가기 쉽지 않고, 수많은 아들 딸들의 엄마를 했다. 김래원과는 더 애틋하게 생각하는 게, 배우로 만났지만 저를 믿어주고 제게 많은 사랑을 준 걸 느꼈다. 통하는 뭔가가 있다. 살갑게 전화하고 밥먹고 이런 것 없지만, 잊고 있다가도 서로 전화라도 하면 반가운 마음이 그대로다. 그게 더 소중한 것 같다. 10년 넘게 지켜봤는데 모습은 점점 멋있어지는 것 같고 성격은 그대로다. 무뚝뚝한데 요새는 그래도 어리광도 부린다. 그런데 또 이야기하면 웃기는 게 있다. 제가 너무 래원이한테 빠져 있다.(웃음)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도전과 같은 촬영이었을 텐데.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다 썼다. 몸도 힘들었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인생의 획을 그을 작품이라 했는데 그 정도로 힘이 들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액션이 있다. 살해당하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비를 맞으며 길바닥을 끌려다닌다. 처음엔 걱정이 정말 많았다. 다음날이 촬영이면 '오늘은 무사하게 해 주세요' 기도하고 나갔을 정도다. 이제껏 찍은 적이 없으니 감독님도 지켜보시고 배려해 주셨다. 그래도 하실 건 다 하시더라.(웃음) 예고편 보고 제가 그렇게 무서운 여자인 줄 처음 알았다. 눈빛을 보고 사람들이 나를 저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맞은 물이 무려 77톤이라고.

▶저도 77톤인지 몰랐다. 말이 77톤이지만 100톤 정도 맞은 것 같다. 쏟아붓는 물 외에 실제 비도 맞고 그랬으니까. 매일 나가면 안에서도 밖에서도 비를 맞으니까 그 정도인지 몰랐다. 거기에 너무 추운 겨울이 겹쳤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찍었다. 힘들었는데 나중엔 비가 안 오면 이상하더라.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약을 달고 살았고, 감기 걸려 촬영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버텼다. 끝나고 나니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 싶더라. 영화를 보며 기분이 그렇게 새롭더라.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라고 할 거다.

-그런 가운데 스스로에 대한 관리는 어떻게 하나.

▶아무 생각없이 했다. 관리 이런 생각을 했으면 못했을 것이다. 역할이 주는 중압감이 컸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제가 하는 작품 수가 늘어나고 나름의 연기 철학이 있지 않겠나. 아무 생각없이 하다가 언젠가부터 두렵기 시작했다. 작품이 늘어날수록 점점 두려워진다. '어느 작품에서 보였던 모습이 보이면 어떻게 하지' '나도 사람인데 어쩌지' '기대치에 어긋나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 고통스럽다. 특히 이번 작품은 엄청난 작품이라 하루하루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따. 그러다보니 촬영이 끝나더라. 그러고 나서야 한참을 앓았다. 너무 힘들었는데 미리 알았다면 도망갔을 거다. 응급실 실려간다고 하고 드러누워 쉬고 그랬을지 모른다.(웃음) 정신적으로 버텼던 것 같다. 액션? 이제는 힘들 것 같다.(웃음)
김해숙, ‘엄마 장르’ 대표 배우의 고백

영화 ‘희생부활자’의 김해숙 / 사진제공=쇼박스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좁다는 이야기가 늘 나온다. 공감할 텐데.

▶문소리씨가 영화로 만들기도 했고, 저도 느끼고 있는 점이다 .모든 여배우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그럴 것이다. 남자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쌓아 놓고 있는데 여배우들은 한창 일할 나이에 속절없이 세월만 보내는 것이 안타까웠다. 저야 이 나이에 계속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앞으로 저희 여배우들이 나이 상관 없이 연기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이 감독님들께서도 많이 써주시고 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남자만 있는 건 아니니까.

여배우들은 나이라는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감사한 것은 저야 막내지만, 윤여정 나문희 김혜자 선생님이 나이가 드셔서도 본인의 연기를 하시며 활동하고 계시니까 그 길을 후배 여배우들이 간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저희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너무 감사하다. 그걸 우리 후배 여배우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상황이니까.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다작' 배우이기도 하다.

▶다작이라기보다 영화가 너무 좋다. 다행히 저는 배우가 되고 싶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솔직히 사람이라면 주인공 하고 나서 비중이 작은 역할을 당연히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게 없다. 영화가 너무 좋다. 캐릭터가 좋으면 하고 싶다. 끊임없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행복하고 좋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재미있는 역도 오고 작아도 존재감 있는 역이 오고 큰 작품도 온다. 그렇게 순환하다 보면 다작이 되는 것이다. 그게 배우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말이지만, 남들이 다작이라는데, 제 꿈은 여자 오달수 여자 이경영이다. 제일 많이 하시는 두 분. 제가 욕심이 엄청 많나 보다. 그 많은 작품들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하고 싶은 역할은 '무방비도시'처럼 센 것들이다. 강렬한 캐릭터를 특히 좋아한다. 아, 그럼 액션도 해야 하나.(웃음)

-'도둑들' '암살' 1000만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영화의 관객은 내가 얼마라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관객의 몫인 것 같다. 배우가 섣불리 이야기할 수 없다. 1000만이 될 지 누가 알았겠나.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자세로 영화를 만들었냐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누구는 쉽게 만들었다, 이게 아니라 그런 영화들이 결과가 좋았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이야기하면 저희도 이번에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찍었다. 결과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000만은 꿈이다. 기적이다. 물론 좋다. 능력이 되면 표를 사서라도 1000만 만들고 싶다. 그만큼 관객들이 사랑해준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연기관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싶다.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 쉬운 게 가장 어렵다. 저는 연기관이 따로 없다. 그 인물이 되는 것, 빨리 그 사람화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름의 연기관이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할 땐 '테레즈 라깡' 원작을 주셨는데 안 읽었다. 감독님에게 말씀도 드렸다. 제가 그 인물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과연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몸이 허락하는 한까지 하고 싶다.
김해숙, ‘엄마 장르’ 대표 배우의 고백

영화 ‘희생부활자’의 김해숙 /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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