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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소설부문] 가작 ‘가족’ 이현주

2017-08-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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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1인용 뚝배기에 해물을 가득 넣은 순두부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방 안에서는 두 딸이 조용했다. 퀸 사이즈 침대 하나와 옷을 넣는 서랍장 하나, 작은 책상 하나, 의자 하나로 꽉 차는 방이었다. 큰 아이는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작은 아이는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

찌개를 끓이던 불을 끄고, 혜란은 옆 눈으로 차려진 식탁을 한 번 보았다. 오리 모양을 한 사기 수저 받침 위에 한 쌍의 수저가 나란히 놓여있고, 반찬은 테두리가 파란 사기 접시 네 개에 예쁘게 담겨 있었다. 배추 김치, 오징어 젓, 달걀말이, 멸치 견과류 볶음이었다.

혜란이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차가운 물 한 컵을 마시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성철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너무 날카롭고 높은 소리가 싫다고 했다. 딸들이 아기였을 때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노크를 하던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혜란이 가서 문을 열어주자, 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첫마디가 같았다.

“애들은?”

“방에.”

“안 자고?”

남편 얼굴에 싱긋 웃음이 스쳤다.

“학교 갔다 와서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만 있었어. 안 피곤해 보여서 안 재웠고, 영인이는 숙제 해. 오늘 가져간 숙제 중에 몰라서 못한 게 있대. 영아가 가르쳐 주고 있어. 아예 다 해서 월요일에 가져가게 책가방에 넣고 자라고 했어. 내일 토요일이라 늦잠 자게 놔 두려고. 곧 재울거야. ”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는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혜란은 다시 찌개를 데워, 달걀 노른자가 깨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넣었다. 밥을 푸고, 찌개를 올려두는데, 남편이 나왔다.


“씻고 먹을까 했는데, 지금 먹어?”

“싱크대에서 손만 씻어. 먼저 먹고 씻어. 먹고 나서 조금이라도 더 있다 자라고, 차 한 잔 마시고 샤워하면 되잖아.”

“네.”

남편은 아이처럼 말을 잘 들었다.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숟가락에 그득하게 밥을 떴다. 혜란은 냉장고에서 차게 식힌 옥수수차를 컵에 따라 남편의 오른편에 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해물 순두부찌개를 워낙 좋아해서 다른 반찬 안했어.”

“찌개 맛있네.”

“별 일은 없고?”

“뭐, 맨날 똑같지.”

남편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소파에 가서 텔레비전을 틀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아내가 신문과 뉴스를 보고 미국의 소식을 말해주면 그것으로 족했다. 현장에서도 일하다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는 먹고 마시고 쉬고, 다시 일을 하기 때문에 영어를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아침에 하이, 인사하고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쉬고 다시 일하고, 바이, 인사하고 오면 그만이었다.

혜란은 말 없이 식탁을 치우고, 따뜻한 홍삼차를 남편에게 가져다 주고 그 옆에 앉았다. 캘리포니아에서 시간당 최저 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에 주지사가 서명을 했다는데, 남편이 일하는 곳에서는 아무 말이 없는 것 같았다.

남편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주택을 짓는 현장에서 일을 하는데, 한 달에 이십일 이상 일을 하기 때문에, 제법 벌이도 괜찮았다. 지금 받는 돈이 시간당 십칠 달러 정도인데, 최저 임금이 오르면 남편이 받는 돈도 오르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한 것이다.

‘아니라도 할 수 없지, 뭐.’

혜란은 영인이가 1학년이 되면서 세탁소에서 오전 일을 시작했다. 다릴 세탁물이 많은 날은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야 할 시간까지 점심도 굶고 서서 다림질을 했다. 어떤 날은 한 두 시간 일거리도 안 되어, 괜히 세탁물에 이름표를 붙이거나 수선을 하는 사람들 옆을 어정이다 눈칫밥을 먹기도 했다.

일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지만, 직원들은 혜란이 일을 배워 자신들의 밥그릇에 숟가락이라도 얹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편, 세탁소 주인은 혜란이 수다 떨거나 남들 방해하지 말고 기계처럼 열심히 다림질만 하고 끝나면 순식간에 공기 속으로 사라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런 날은 비를 들고 세탁소 바닥을 싹싹 쓸고 카운터에 마른 걸레질이라도 하고 일터를 나서는 것이었다. 출근한 이상, 오분 십분이라도 더 있고 싶었다. 하루에 십분, 일주일이면 한 시간의 시급이었다.

남편과 둘이 벌어서 방 하나가 있는 아파트 월세에 딸 둘과 생활하는 데는 충분했지만, 나중에 영주권 수속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지 몰라서 한 푼도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이민 사기가 너무 많다고 하니, 섣불리 알아볼 수도 없었다.

혜란은 식단을 짜서 장보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장을 보러 가면, 그 날 세일하는 것, 덤으로 많이 얻을 수 있는 것, 또는 싱싱한 것들이 며칠의 먹거리가 되었다.

아내가 부엌을 치우고 정리하는 동안, 남편은 차 한잔을 다 마셨다. 피곤이 태산처럼 밀려와서 텔레비전에서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찻잔을 설겆이하는 아내에게 넘겨주고 남편은 방으로 들어갔다. 영아가 엎드린 옆에 털썩, 하고 쓰러지니, 두 딸들이 키득거리며 아빠 몸에 들러붙었다. 아빠, 아빠를 부르며 코를 비비고 옆에 착 붙어 안기는 것은 영인이였다. 옆에 길게 누운 모습을 보니 그새 키가 자란 듯했다. 아니면, 잘 먹지 않아서 야윈 것인가 싶기도 했다.

“아빠, 피곤하지요?”

영아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안마 흉내를 내며 어깨를 조물락거렸다. 흙먼지가 묻어 엉망인 몸으로 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미안했다. 성철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빠 더럽다. 씻어야지. 밥먹고 양치도 안 했고.”

아빠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자 침대 매트리스가 출렁했다. 영인의 몸이 살짝 공중으로 떴다가 푹 떨어졌고, 그것이 재미있는 아이는 까르륵 거리고 웃어댔다. 성철은 마치 이불 위의 흙먼지가 보이는 것처럼 손으로 쓸어 내렸다. 영아는 읽던 책을 잡고 다시 좀 전과 같은 자세로 엎드렸다.

성철이 씻고 한결 상쾌해진 기분으로 나왔을 때, 거실의 소파는 안에 있는 매트리스가 밖으로 펴져서 침대가 되었다. 부부의 침실은 거실이었고, 두 딸은 방을 썼다. 엄마가 방에서 이불을 가지고 나오는데, 두 딸은 또 생글거리며 거실로 따라나왔다.

딸들은 자고 나면 예뻐지고 자고 나면 또 예뻐졌다. 일곱 살, 열 살이었다. 언젠가 혜란이 물었었다.

“저러다 시집간다고 남자 데려오면 당신 무지 섭할거야.”

성철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시집 안 보낸다.”

두 딸들이 조르르 달려오자 아빠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가서 서 봐라. 그새 키 컸는지 보자.”

부엌과 식탁이 놓인 공간 사이에 있는 벽에는 아이들의 키를 재는 막대가 붙어 있었다. 아파트 벽에 자국을 남기면 안 되기 때문에 홈디포에서 긴 나무 막대를 사다 중간중간에 테이프로 벽에 붙이고 거기에 아이들의 키와 날짜를 표시해 두었다. 곧, 혹은 나중에 집을 사게 되면 그 나무 막대를 그대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두 달 반 전에 잰 자국과 비교해 보니, 영아는 5밀리 정도, 영인이는 3밀리 정도 자랐다.

“영아가 많이 컸네. 영인이가 훌쩍 해 보였는데, 안 먹어서 말랐나.”

“그새 이만큼이면 둘 다 많이 컸는데, 영인이가 잘 안 먹어.”

영인이는 힝, 하며 언니 뒤로 숨었다가 다시 얼굴을 내미었다. 성철은 안 먹는다는 작은 딸의 얼굴을 보았다. 입 가에 조그만 뾰루지인지 벌레 물린 자국인지 발갛게 돋은 것이 보였다.

“영양제라도 사 먹이지. 남들은 곰돌이 비타민 그런 거 사 먹인다던데.”

“그럴까봐. 그런데, 곰돌이 젤리는 먹이지 말라고 미란 언니가 그랬어. 그 젤리가 치아에 안 좋다고, 차라니 알약처럼 씹으면 깨지는 걸로 먹이래.”

“거기가 뭘 좀 아나?”

성철은 미란을 불편해했다.

그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며 때로는 아쉬워하고, 때로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괜찮다고 했다. 같은 아파트에 한국 가정이 두 집밖에 없어서 아내들끼리는 수시로 붙어 있고, 남편들끼리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같이 밥을 먹거나 술잔을 기울였다.

미란의 남편은 아내에 대한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고, 미란은 남편은 항상 흘겨보기 때문에, 함께 만나는 자리는 좀 어색했다. 미란이 혼자 올 때는 있어도, 그 남편이 혼자 오는 법은 없었다. 성철이 술 한 잔 하게 건너 오시라고 전화를 하면, 미란은 반드시 따라왔다.

“언니는 교회 사람을 많이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어떤 치과 의사가 그렇게 말했대. 언니 또래는 다 우리 애들보다 큰 애들이 있으니까.”

혜란은 우유를 데워 초코시럽을 타서 아이들에게 주었다. 초코 우유가 너무 진해서 무지방 우유에 초코 시럽을 타서 주었더니, 아이들은 밖에서도 핫 초코나 초코 우유를 잘 안 먹었다. 너무 달다고 해서, 무지방 우유와 섞어 두 잔이나 세 잔을 만들어 주면 좋아라 하며 마셨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양치질하고 자야지.”

딸들이 식탁에 앉아 우유를 불면서 마시는 모습을 보고, 성철도 곁에 와 앉았다.

“맛있나?”

두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아의 입가에 묻은 우유 거품을 성철이 손으로 닦아 주었다. 아내를 보고 말했다.

“고기를 한 번 구워주지. 갈비 잘 먹잖아, 내일 갈비 한 번 구울까?”

“그러지, 뭐. 갈비 먹은지 좀 됐잖아. 양념으로 생으로?”

“나는 다 좋은데, 애들은 양념 좋아하잖아. 내가 내일 와서 구울께. 숯 있지?”

영아와 영인이는 환하게 웃었다. 작은 아파트에는 작은 베란다가 있었다. 거실에서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혜란은 거기 빨래를 널고, 한 켠에는 바베큐를 할 수 있는 그릴이 있었다.

“먹었으면 자야지. 이 궁뎅이들. 들어가서 양치질하세요.”

히잉, 딸들은 모처럼 아빠 얼굴을 보는 오늘이 좋았다. 아빠도 딸들을 보면 피곤이 눈 녹듯 사라졌다.

“기도하고 자야지. 다 마셨나?”

빈 컵을 가져다 놓고 혜란도 의자에 앉았다. 부엌의 불을 끄고, 거실의 불도 껐다.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있었고, 창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이 있어서 가까이 앉은 서로의 얼굴을 보는데는 아무 불편이 없었다. 아이들도 고사리같은 손을 앞으로 모으고 눈을 감았다. 성철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영인이부터, 우리 꼬맹이. 감사 기도 하나와 남을 위한 기도 하나.”

“내일 갈비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고픈 어린이에게 밥하고 갈비를 주세요.”

잠시 침묵이 있었고, 다시 성철이 말했다.

“이제 우리 영아. 길어도 괜찮아.”

“재미있는 책을 빌리게 해주시고, 아빠하고 늦게까지 있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앙카 가족이 함께 살도록 해 주세요.”

비앙카는 딸의 친구였다. 아버지가 본국으로 추방된지 벌써 삼년이 넘었다고 했다.

아빠를 보고 싶지만, 그 나라에는 음식도 모자라고 좋은 학교도 없어서 엄마와 여기서 살면서 학교를 가야한다고 했다. 엄마가 여기서 미국인 아저씨를 만나 결혼하고 시민권을 받게 되면 아빠를 보러 갈 수가 있지만, 그건 싫다고 했다. 비앙카는 자신이 여기서 어른이 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벌어서 큰 집을 사고 아빠를 초청할 거라며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

혜란은 혼자 식당일을 해서 딸을 키우는 비앙카 엄마와 비앙카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 비앙카는 공짜로 학교에서 주는 점심을 먹는데, 혹시 소풍을 가거나 학교가 일찍 끝나서 점심이 없는 날은 영아의 점심을 두 배로 많이 싸거나 간식을 들려보내었다. 아예 도시락을 싸서 두 딸과 비앙카와 교실 앞 벤치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비앙카를 방과 후 교실에 들여보내고 오는 날도 있었다.

학교는 무료지만, 방과 후 교실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혼자 벌어서 아이를 기르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컸다. 그래도 방과 후 교실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싶은 사람은 많아서 자리가 날 때까지는 한참 기다려야 했다.

“전에 비앙카가 아빠보러 다녀 온다고 하던데, 언제 간다고 안 해?”

“올 여름. 신나서 웃다가 갑자기 울 때도 있어요.”

“에휴, 진짜 못 할 짓이다.”

혜란이 고개를 숙였다. 성철도 잠시 말이 없었다.

오늘 점심을 먹으러 갔던 식당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그의 팀은 평소에 팀장이 사오는 햄버거 세트를 먹고, 금요일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근처 식당에 갔는데, 직원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손님은 많지 않은데, 혼자서 전화를 받고 주문을 받고 너무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일행은 나갈까 팀장의 눈치를 보았는데, 팀장이 그냥 앉아서 기다리자고 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가서 다른 식당을 찾아 들어가도 그만큼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한 이십여분 지났을 때 네 명의 직원이 더 나왔고 일행은 무조건 빨리 나오는 메뉴를 달라고 했다. 한 시간 안에 식사를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토요일에는 반 이상이 일을 안 하기 때문에 함께 해야 할 일은 늦더라도 금요일에 마치고 뒷정리는 성철과 다른 초과근무 신청을 한 사람 몇이 토요일에 나와서 했다. 퇴근할 무렵, 팀장은 그 식당에서 불법체류자 기습 단속이 있었다고 했다.

“해고된 사람 하나가 그 식당에 불법체류자가 있다고 신고를 했대.”

아무 소리도 안하고 나왔지만, 성철과 다른 몇 사람은 속이 불편했다. 그래서 일부러 퇴근할 시간에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리라 싶었다. 그리고, 최저 임금이 올라가도 기대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고, 성철은 표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은근히 좋아하는 마음이 드러났을지도 몰랐다. 성철은 아무 내색 하지 않고 퇴근했다.

영아는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옛날에 처음 몇 달은 너무 힘들었고 엄마가 맨날 울었대.”

옛날이라고 하면, 비앙카의 아빠가 체포되고 난 후 본국으로 가서 가족에게 연락할 때까지의 몇 달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불법 체류자는 가족의 연락처와 주소가 알려질까봐 체포되고 나서 가족들에게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추방 절차가 마무리 되어 본국에 가서야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가족들은 돌아오지 않는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을 못하고 속을 끓였다. 경찰에게 문의하거나 실종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3, 4년 전쯤 영인이 또래나 조금 더 어렸을 나이였는데, 비앙카는 그 당시의 힘든 몇 달은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어떻게 지우겠는가,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나이에 너무 아픈 기억이었다.

혜란이 기도를 했다.

“오늘 하루 건강히 보내고 이 자리에 모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지켜주소서.”

잠시 침묵이 있었다. 영인이가 감았던 눈을 뜨고 물었다.

“아이들이면 우리? 엄마 남을 위한 기도.”

“당연히 남이지. 네가 나는 아니잖아. 부모 자식도 따지고 보면 남이다.”

성철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 아이들이 소중하면 남의 아이들도 소중하지, 모든 아이들이라고 말하려던 혜란은 열었던 입을 다물었다.

영아가 피식, 웃었다. 성철이 말을 이었다.

“남을 위해 봉사하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라고. 기도 끝나면 영아는 엄마 아빠 커피 한 잔씩 타 주고 들어가.”

“네, 아빠.”

기도할 때는 한결 차분한 음성이었다. 그래도 아이의 목소리는 고왔다.

“건강히 일하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법체류자들의 가족이 헤어지지 않도록 해 주시고, 헤어진 가족들은 하루 빨리 모여서 열심히 일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소서.”

오랜 침묵이 있었다. 영인이는 숙제를 끝내러 방으로 들어갔고, 영아는 부엌에서 커피를 타 왔다. 성철이는 영아에게 앉으라고 했다.

“학교에서 동생 잘 챙기지?”

“네.”

“항상 감사하고, 네가 집에 올 때 혹시 엄마나 아빠가 못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네. 학교 앞에서 엄마 기다리고, 다른 엄마들 다 갈 때까지 아무도 안 오면, 영인이하고 걸어서 두 블락 뒤 월그린으로 가요. 거기 주차장 버스 벤치에서 기다리고 4시 반까지 아무도 안 오면 집으로 걸어와요. 돈은 파운데이션 밑에 있어요.”

“그래. 걸어오는 길에 조심하고. 파운데이션 밑의 돈으로 당장 필요한 거 주유소 앞의 작은 가게에서 하나씩 사서 쓰고, 기다리면 된다. 만약 안 보여도, 엄마 아빠 걱정은 하지 마. 먹을 거 다 주고, 잠깐 조사 받고, 나올 거니까. 학교 가려면 45분 이상 걸어야 하니까, 영인이 깨워서 먹고 일찍 나서면 돼. 비앙카네처럼 몇 달씩은 안 걸렸으면 좋겠지만.”

“할 수 있어요.”

“아파트 렌트비 체크 쓰는 거 알지? 아파트 사무실 문 닫고 나서 문에 있는 함으로 넣어도 되고, 엄마 심부름이라고 낮에 가져가도 돼.”

“알아요. 해보고 너무 힘들면 한국의 이모에게 전화할 거예요.”

“그래. 여기에서 주변 사람에게 알리는 건 하지마. 영인이가 아프거나 아파트에 불이 나거나 급한 경우가 아니면. 급하면 911 전화하고 아파트 매니저 아줌마에게 알리고. 미란 아줌마나 이웃 사람 누구라도. 기다리는 것도 너네 둘 다 건강하고 안전할 때만 하는 거야. 알지? 만약에 만약에 말하는 거니까, 알고만 있으면 돼. 항상 감사하고 마음 편하게. 마음이 불편하면 어디 있어도 지옥이고 마음이 편하고 감사하면 어디 있어도 천당이다. 우리는 지금처럼 우리끼리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면 돼.”

“네.”

“가서 자.”

영아는 생긋 웃고 방으로 들어갔다. 부부는 말이 없었다.

미란이 가까이 산다고는 하지만, 불안해 보여서 아이를 맡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파운데이션 밑에 있는 돈도 걱정이었다.

아파트 렌트비를 낼 체킹 어카운트가 있지만, 거기에는 결코 많은 돈을 넣어둘 수 없었다. 3개월간의 렌트비와 각종 공과금을 체킹 어카운트에 넣었는데, 5천 달러를 넘지 않았다. 체킹 어카운트에 넣기는 많은 돈이지만, 만일 영아가 혼자 몇 달을 지내야 하는 경우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영아는 체크 쓰는 법을 익혔고, 혼자서 공과금을 납부일보다 일주일 이상 먼저 우편으로 보내는 것도 할 줄 알았다.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모으는 다른 돈은 십 달러짜리로 바꿔서 봉투에 오백달러씩 넣었다. 매트리스 파운데이션에 구멍을 내고 봉투가 찰 때마다 그 안에 하나씩 밀어넣었다. 불법체류자 사면이 되면 변호사비가 필요했고, 만약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온다면 비행기표를 사고 당분간 필요한 비용을 해결해야 했다. 혹, 이곳에서 일을 하지 못할 상황이 온다면 그 돈으로 생활을 해야 했다.

성철이 일어나 방으로 갔다. 영인이가 숙제를 가방에 넣다가 달려와서 안겼고, 영아는 잠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아빠를 보며 웃었다.

“혹시 비앙카 보고 엄마한테 무슨 일 있으면 우리 집에 와 있어도 된다고 그래라. 엄마한테도 이야기해 놓을게.”

“네.”

혜란이 뒤에서 말했다.

“엄마가 비앙카 엄마에게도 메세지 보내 놓을게.”

혜란은 빨래 바구니에 세제를 얹고 윗도리를 하나 더 입었다. 윗도리 주머니에 동전이 충분히 들어있는지 확인했다.

“지금 이 밤에 나가나?”

“응. 낮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다려야 해. 지금이 조용하지. 당신 먼저 자. 빨래 돌리고 다시 들어왔다가 나갈거야. 건조기에 안 돌리고 베란다에 널 거라서 한 번만 더 갔다 오면 돼.”

머리 속은 복잡했지만, 성철은 몸을 눕히자마자 바위처럼 잠들었다.

이튿 날 아침, 딸들은 정신없이 자고, 성철은 간단히 밥과 달걀찜, 베이컨을 먹고 출근했다. 아내는 홍삼차를 커피 컵에 담아주었다.

“오늘 세탁소 가나?”

“전화해보고. 일이 많지 않으면 안 가거나, 가야 되면 애들 다 데리고 가려고. 언제 올지 모르지?”

“응. 가봐야 알지. 기다리지는 말고. 그래도 저녁까지는 올거야.”

현장을 두 블럭 남겨두었을 때였다. 홍삼 차를 거의 다 마셨고, 유난히 신호가 안 바뀐다고 속으로 생각할 때였다. 아직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전화기를 무심코 드는데, 메세지가 있었다.

“No work today, I’ll text you later, maybe Monday.”

팀장이었다. 십년 가까이 그의 팀으로 일을 해 온 터였다. 팀장이 설명 없이 지시를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4대 전에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이었다. 성철의 가족을 코스트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딸들을 무척 예뻐했었다. 혜란에게도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종종 해주셨어. 가족들 보니까, 그 때 우리 할아버지도 이렇게 자라셨겠구나 싶어. 건강하게 열심히 일하면, 우리는 우리의 일을 다 하는 거니까. 그렇지?”

성철은 1차선으로 계속 직진했다. 우회전 하면 멀리 공사현장이 보일 만한 곳에서 흘깃 오른쪽을 보았다. 오른 편으로 차선이 두 개나 더 있고 차들이 있었지만, 공사장으로 가는 좁은 길에 여러 대의 차들이 서 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성철은 그대로 직진해서 아예 고속도로를 탔다. 제일 일찍 문을 여는 홈디포에 들러 잔디깍이 기계와 트레일러들을 구경했다. 컴퓨터와 전자 기기를 파는 가게에 들러 새로 나온 노트북 컴퓨터와 텔레비전들을 보고, 쇼핑몰에 들러 서점과 장난감 가게를 보았다. 12시가 넘어서 몰에 있는 음식 중에 제일 저렴한 타코를 사서 얼음물과 같이 점심으로 먹었다.

아내에게 카카오 톡 메세지를 보냈다.

“곧 가는데 뭐 필요한 건? 갈비 샀어요?”

평소에는 반말을 하지만, 메세지의 끝은 항상 존댓말이었다.

바로 답장이 왔다.

“세탁소에 있어요. 이제 곧 나가려구요. 애들하고 같이 있어요.”

“집으로 가서 한 차로 장보러 갈까요?”

“그러든지.”

내일과 월요일, 팀장에게서 다른 연락이 없다면 아내에게는 말을 안 할 생각이었다. 분위기는 갈수록 험해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그나마 이민자들에게 낫다고 하는데도 하루하루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짬짬이 일하는 작은 세탁소는 조용하게 별 일 없을 듯 해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아빠와 장보러 가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무엇을 사건, 다 사라고 마구 집어주는 아빠가 함께 있어서 든든했다. 갈비 5파운드를 아내가 집자, 성철은 하나를 더 집었다. 혜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양념해 놓고 남으면 얼려두고 조금씩 꺼내서 먹으면 되잖아.”

김, 미역,멸치, 연근, 떡볶이 떡, 어묵, 냉동 만두 등등과 싱싱한 야채를 사고 계산대로 가는 동안, 아이들은 과자와 음료수를 몇 개씩 집고, 남편은 약과와 쌀자루만한 뻥튀기 자루를 들고 왔다. 혜란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 계산대 앞에 진열된 인절미와 무지개떡을 집었다.

무시무시한 금액을 현찰로 지불하고 부부는 트렁크를 가득 채워 돌아왔다. 딸들은 돌아오는 차에서 이미 바나나 우유와 초코파이를 하나씩 끝내고, 감자 과자를 사이좋게 먹어치웠다.

성철은 백미러로 연신 딸들을 보며 웃었다.

“과자가 있으니까 저렇게 사이가 좋네. 친한 척 하는 거 봐.”

혜란도 인절미를 먹으며 때때로 남편의 입에 넣어주었다.

“배부른데 화낼 일이 뭐가 있어.”

“그러게.”

주차장에서 부부는 고기와 음료수, 반찬 거리를 들고 아이들은 과자와 야채를 들었다. 2층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철제 난간과 받침이 있는 돌계단이 항상 걱정스러워서 아내와 딸들을 먼저 올려보내고 성철은 항상 맨 뒤에서 따라 올라왔다.

처음 이 아파트에 들어올 때는 1층이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도, 아기가 어릴 때도, 유모차가 드나들기도 편했다. 그런데, 2층에 범상치 않은 가족들이 이사를 왔다.

우선, 드나들면서 문을 여닫을 때 온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소리와 진동이 컸다. 낮잠을 자던 아기가 놀라서 울었다. 그리고, 사용하는 언어가 남달랐다. 아마도 영어로 욕을 하는 거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런데, 웃는 소리와 욕이 함께 들리기도 했다. 밤과 낮의 구분이 따로 없어서 새벽 1시에 물건이 날아가고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 심지어 구타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성철과 혜란이 사무실로 쭈뼜거리면서 갔을 때, 매니저인 신디는 그들에게 비어있는 2층 아파트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컴플레인이 들어와. 옆집 사람은 나가겠다고 하고. 2층인데 괜찮을까? 1층 다른 유닛은 빈 자리가 없고.”

“우리가 그 사람들 아래층이라서 우리만 힘든 줄 알았어요. 영아가 이제 4살이라서 말을 배워야 하는데 영어로 욕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욕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욕을 한다고 옆집 사람이 그러더군. 영어를 모르는게 오히려 다행이지. 가족끼리 욕을 한다고 아파트에서 쫓아낼 규정이 없어. 컴플레인이 들어온다고 여러 번 말을 하고 편지도 보냈는데, 나한테는 욕을 안 하더군. 다행인지 불행인지.”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음 주에 가족은 2층으로 이사했다. 범상치 않은 가족들에게서 좀 떨어진 유닛이었다. 혜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가 오고, 사람들이 모여 있고, 남자가 연행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여자가 계단 아래칸에 앉아 있었는데, 머리를 수건으로 눌렀고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어. 사람들이 뭐라는데 계속 고개를 흔드는게 병원을 안 가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둘 다 덩치가 꽤 크던데.”

아내도 그 부부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 후, 신디는 1층 다른 유닛이 비었다고 말해주었는데 부부는 그대로 2층에 있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2층에 올지 알 수 없었다. 큰 길가에 위치한 값싼 아파트는 입주민들이 자주 바뀌었다. 십년 넘게 살아온 혜란의 가족을 위해서 신디는 재작년에 오븐과 냉장고를 새로 바꿔주었다.

오후에 혜란은 갈비를 재고, 장 본 것들을 손질하느라 분주했다. 성철은 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욕실 청소를 하고, 베란다도 깨끗하게 쓸고 닦았다.

큰 집은 살 수 없지만, 제일 작고 오래된 집 한 칸이라도 융자를 끼고 살 수 있게 되면, 잔디도 깍고, 딸들하고 꽃도 심고,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바베큐를 먹으면서 맥주 한 잔씩 할 수 있는 그릴하고 테이블을 놓고 싶었다. 곧 그렇게 되겠지, 그런 날이 오겠지.

부엌에서 혜란이 성철을 보고 물었다.

“신디하고 미란이 언니네 전화 한 번 해볼까?”

신디는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아이들하고는 이야기도 잘 통해서 아이들이 이모처럼 따랐다. 단지, 남편이 미란을 불편해 하기에 혜란으로서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그러든지.”

성철은 선선히 대답했다. 마음이 불편할 때는 주변과 나누는 것도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이었다. 남의 나라에서 비자없이 일을 하면서 처자식들을 책임져야 하는 노동자였다. 순간순간 스트레스와 번잡해지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버티기 힘들었다. 아이들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건강했고, 밝았고, 빛이 났다.

신디는 신발을 벗으면서 갈비 냄새를 맡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Always amzing, How‘s everything going?”

남편이 베란다에서 고기를 굽는 동안 식탁 옆을 분주히 오가던 혜란은 크게 팔을 벌려 신디를 안았다. 어깨가 넓은 신디는 아이처럼 혜란을 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이들은 신디가 가져온 아이스크림 콘을 보고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그리고 신디를 방으로 데리고 가서 종이접기와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공부를 잘하는 영아는 성적표도 보여주었다.

성철이 들어와 식탁에 앉았고, 혜란은 맥주를 꺼내왔다. 휴대폰에서 까똑, 소리가 들려 보니 미란이었다.

“우린 나중에 8시나 넘어서 잠깐 들를게. 별 일은 없어. 미안.”

“ok”

혜란은 별 신경쓰지 않고 남편에게 전했다.

신디는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고 상추를 먹고, 김치도 잘 먹었다. 주말에 가고 싶은 동물원을 이야기하고, 소풍을 이야기하고, 모래 사장이 좋은 강변과 바닷가를 이야기했다. 신디는 바다에 대해 항상 예민해했다.

“내 여동생이 상어에게 물려서 아직도 허벅지에 흉터가 있다고. 오십이 넘었는데. 거긴 상어가 나온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바다는 그냥 바라보는 것.”

아이들은 까르륵 거리고 웃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 놀랍고 어떨 때는 그냥 눈물이 나. 너희 둘 다 엄마가 임신했을 때부터 보았는데, 이렇게 예쁠 줄은 미처 몰랐던 거지.”

아이들이 배부르게 먹고 물러가자, 혜란은 잠깐 일어나 식탁을 정리하고 차를 내왔다. 신디는 카페인에 예민해서 잠 잘 때 마시는 카모마일 차와 딸기 모치 아이스크림을 내왔다.

신디가 성철에게 물었다.

“별 일은 없고? 일도 잘 되는 거지?”

성철이 고개를 끄덕였고, 혜란이 대답했다. 성철이 영어를 잘 못해서 신디하고 있으면 혜란이 주로 이야기를 하거나 남편 대신에 통역을 했다.

“저는 세탁소 파트타임을 하고 이 사람도 지금은 괜찮아요. 그런데, 항상 불안해요. 게다가 우리는 미국에 아무도 없으니, 만약이 걱정되는 거지.”

“알아. 조금만 버티자. 매일매일 건강하게. 걱정이 해결해 주는 것은 없고. 이러다 풀리면 순식간에 풀릴 수도 있어. 한국도 지금 위태로와 보이던데, 가족들도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여기서 보기에는 그런데, 정작 가족들은 별로 걱정 안하나봐요. 북한이야 맨날 그러는데, 하면서. 지금으로서는 여기 이렇게 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물론이지. 급한 일 있으면 연락하고. 학교에는 비상 연락처로 내 이름하고 번호 , 사무실 번호 다 넣었지?”

“네. 고맙습니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건강하고. 다 괜찮을거야.”

신디가 가고 나서 부부는 설겆이를 하고 그릴을 청소했다. 저녁 마무리가 끝났을 즈음, 초인종이 울렸다. 미란 언니일 거라고 혜란이 나갔는데, 잠시 소리가 없어서 성철이 현관으로 갔다.

미란이 서 있는데 왼쪽 눈 언저리에 큰 멍이 들어있고,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뒤에는 팔짱을 낀 그의 남편이 장승처럼 서 있었다. 성철이 일단 둘을 안으로 들였다.

“들어오세요. 형님도 좀 들어오세요.”

아이들이 방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기에 혜란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고 하고, 아이들을 다시 방으로 들여보냈다.

미란은 식탁의자로 가서 털썩 앉았다. 그의 남편은 아내에게서 등을 돌리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아내들은 식탁에 남편들은 소파에 앉아 있게 되었다. 혜란이 조용히 물었다.

“언니, 저녁은? 갈비 구웠는데 지금 좀 드세요.”

“아 됐어, 난 저 인간하고 같이 밥 먹을 생각 없으니까. 자기 삼천 불 빌려줄 수 있어? 나 비행기표 사서 한국 갈거야.”

“아, 남의 집에 와서 삼천 불은 왜? 비행기표는 팔백 달러면 사는데. 왜 여기서 지랄이야? 저게 정신 못 차리고.”

성철이 형님 좀 진정하시라며, 냉장고로 갔다.

“밥은요? 밥 생각 없으시면, 갈비 안주에 맥주 하실래요? 이 쪽으로 오세요.”

가까스로 네 사람이 식탁에 앉았다. 분위기는 살벌했다. 부부는 서둘러 맥주를 내고, 접시에 갈비를 담아 데웠다. 이 부부를 만날 때면 이런 날이 워낙 많았다. 양쪽의 주장은 항상 같았다.

“마누라가 나이를 먹었으면 점잖아져야지, 뻑하면 시민권자 남자 만났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아주 가라고 그러면, 나가지도 않고 귀 옆에 붙어서 시끄럽게. 여자가 가정교육을 저 따위로 받아서 자식이 없는게 하늘이 주신 복이라고.”

“거기 가정교육이 왜 나와. 계집 치는 주제에. 남자가 오죽 못나면 밖에서는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집에와서 여자한테 유세를 떨어.”

“아, 그러니까 나가라고. 나가서 시민권자 만나서 살아.”

“하이고. 돈을 줘야 나가지.”

“나간다면서 뭘 바래. 네가 돈을 벌어서 살림을 불렸나, 애를 낳아서 키웠나, 한 게 뭐 있다고 돈을 받아. 내 참 미치겠네.”

미란의 남편은 거칠게 맥주 캔을 열어 마시고, 갈비를 씹었다. 미란도 젓가락을 들었고, 네 사람은 묵묵히 앉아서 마시고 먹었다. 미란이 입을 열었다.

“아까 왔었는데, 신디가 있는 거 같아서 좀 기다렸어. 얼굴이 이 모양이니 어찌 감출 수가 있어야지.”

성철이 미란에게 갈비 접시를 조금 밀어 주었다.

“많이 드세요.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뭐 이쁘다고 고기를 밀어주노. 남편이 일 며칠 못 나가면 지 발싸개만도 못하게 여기는 거를.”

“형님, 일이 요새 없었어요?”

휴우, 미란의 남편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새 단속이 심해서. 조심해야 된다고. 핑계 좋지, 뭐. 젊은 애들 요새 일 할라고 눈이 벌겋거든. 저 혼자 입에 풀칠만 하면 되니까, 우리처럼 시급 1불 더 달라고 징징 거리지도 않고.”

미란의 남편은 커다란 마켓의 창고 정리를 했다. 나이는 못 속인다고 허리가 아플 때는 진통제를 먹고 복대를 두르고 일을 나갔다.

“뭐, 유학생들요? 걔들은 일 안하잖아. 돈이 많아서.”

“그것도 애들 나름이지. 여기 애들도 많고.”

“여기 애들 쓰면 최저 임금 줘야 되고, 이것저것 서류 많고, 잘못하면 고소당하고 쉽지 않을 텐데.”

“우리가 떠들면 차라리 걔들 쓴다고 보여주는 거지, 뭐.”

“그러면 아예 일은 안 나가요?”

자신의 일도 알 수 없는 상태라, 성철은 차마 일을 알아봐줄까 묻지 못했다.

“아니, 좀 있어 보라고 하더라.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있는데 최저 임금 어쩌고 이야기하면서 강하게 얘기를 했나봐. 단속이 떴는데, 매니저가 우리한테 미리 오지 말라고 연락을 돌리면서 얘만 쏙 빼놓고 한 거라. 그래서 단속반에서 잡아갔거든. 그게 너무 표 나니까, 아예 우리도 며칠 쉬라고 좀 있다가 다시 나와서 오버 타임 좀 하자고 하더라. 안 좋지, 뭐. 이래저래.”

“그거는 뭐.”

성철은 별 말이 없었다.

“휴가다 생각하고 좀 쉬세요.”

“그럴까 하는데, 내가 집에 있는 꼴을 못 보니까.”

“불안하잖아. 부른다 해놓고 안 부르면 또 어쩔건데.”

“언니, 그래도 어째요. 상황이 그런데.”

네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미란의 남편이었다.

“그래서 가정폭력으로 신고할 거면 신고하고, 나가서 팔자를 고칠 거면 고치라고. 난 무능해서 해 줄 게 없으니까.”

미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님, 그럼 내일 우리 근처 바다에 놀러나 갈래요? 바람도 쐴겸. 근처 일식당에서 회도 좀 먹고.”

“아, 일도 안 나가는 사람이 놀러는 무슨? 굶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혜란이 식탁 아래로 손을 내려 끝도 없이 늘어놓으려는 미란의 허벅지를 눌렀다.

“형수님, 이럴 때 우리도 애들 데리고 한번 바람쐬러 가요. 교회 내일 하루 안가도 괜찮죠?”

“이 얼굴로 못 가지.”

네 사람은 근처 바닷가에 가기로 하고 일어섰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일어선 시간은 아홉시쯤이었다.

미란의 부부를 배웅하러 그들이 사는 아파트 앞까지 갔다 와서 확인하니 성철의 휴대폰에 7시쯤 메세지가 와 있었다.

“Everything is fine, sorry, uninspected inspection it was. Will you come to work on Tuesday?”

성철은 짧게 답을 보냈다.

“Sure, see you on Tuesday.”

혜란이 뭐냐고 물었다.

“아, 팀장. 그냥 월요일 하루 쉬고 화요일에 간다고 했어. 당신도 일 안 나간다고 소리지를 거야?”

“아니. 잘 됐네. 바다 갔다오고 월요일에 피곤할까봐 좀 걱정했는데.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니까. 됐어요. 이제 침대 펴고 주무세요. 난 정리 좀 하고. 낮에 장 보기를 잘했네. 있는 거 대충 집어가고 가서 사 먹고 그러자.”

혜란은 웃으며 부엌으로 갔다.

수상소감

저는 미국에 온지 19년이 됩니다. 유학생인 남편과 1998년에 미국에 왔고, 지금은 18살, 14살, 11살, 8살인 딸 둘, 아들 둘이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보낸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쉬이 지나는 날은 하루도 없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곳에 오는 분들을 모두 환영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족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어른들을 응원합니다. 서툰 어른들의 그늘에서 열심히 커가는 아이들이 항상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포함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문예 공모에 입상하여, 제 마음이 전해질 수 있어서 고맙고 기쁩니다.
[2017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소설부문] 가작 ‘가족’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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