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수면시간 OECD 꼴찌 충동성↑ 결정능력↓ 위험
술 마시면 쉽게 잠들지만 수면 질 떨어뜨려… 피해야
▶ 부작용 줄인 수면유도제도 2, 3주 적정량 먹어야 바람직
“수면은 피로한 마음에 가장 좋은 약이다.”(미겔 데 세르반테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하루 10시간 잠잤다. 50년 동안 248건의 논문을 발표했던 그의 왕성한 생산력은 숙면과 맑은 정신에서 비롯됐다.
한국인은 잠이 부족하다. 수면 시간이 7시간41분 밖에 되지 않는다. 프랑스(8시간50분), 미국(8시간38분)보다 1시간이나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꼴찌다(2016년 기준). 수면 질도 떨어진다. 불면증, 기면증(嗜眠症ㆍ과다수면증),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한해 72만 명(2015년 기준)이다. 2010년(46만 1,000명)보다 5년 새 56%늘었다(국민건강보험공단). 매년 3월 셋째 주 금요일(올해엔 17일)은 세계수면학회가 정한 ‘세계 수면의 날’이다.
코골이에서 시작되는 수면장애
“드르렁 드르렁”, 코골이에서 수면장애가 시작되다. 수면장애는 단순히 잠 못 이루는 불면뿐만 아니라 충분히 자도 낮에 각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기면증, 잠들 무렵이면 다리가 쑤시고 저리는 증상, 코골이를 동반해 수면 중 호흡이 멎는 수면호흡증 등 다양하다.
제대로 잠자지 못하면 뇌 기능도 문제된다. 수면시간이 짧아지면 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줄기 때문이다. 민아란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로토닌은 뇌에서 충동을 조절하고 올바른 결정을 돕는다”며 “세로토닌이 덜 분비되면 충동성이 늘고 결정능력도 떨어진다”고 했다. 수면장애가 우울증(일반인보다 10배 가량 높아진다)과 불안장애, 알코올 중독,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조현병(정신분열병) 등 정신질환도 일으킬 수 있다.
남녀간 수면장애 차이도 뚜렷하다. 여성 수면장애(42만 7,000명ㆍ2015년 기준)가 남성(29만 명)보다 1.5배나 많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신경과 교수)은 “여성은 임신과 출산, 폐경과 함께 찾아오는 갱년기 등으로 모든 연령층에서 수면장애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폐경되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줄면서 수면과 관련 있는 아세틸콜린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감소한다. 이에 따라 생체시계가 혼란을 느껴 밤에 제대로 자지 못하거나 자주 깨게 된다.
수면장애 여부를 알려면 ‘수면다원검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이 안돼 비용이 30만~100만 원이나 드는 게 단점이다.
술은 숙면의 묘약? “NO”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술에 의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술은 숙면 방해꾼이다. 술 마시면 금방 잠들 수 있지만 자주 깨고, 깊이 자지 못해 결국 숙면시간은 줄어든다. 호흡을 담당하는 근육도 이완돼 수면무호흡증이 악화할 수 있다.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수면학회 교육이사)는 “알코올은 쉽게 잠들게 하지만 유지시키지 못해 오히려 일찍 깨우고, 수면무호흡증을 악화시켜 수면 질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녹차나 커피 등 카페인이 든 음료도 피해야 한다. 몸을 각성해 잠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잠이 안 오면 수면을 유도하는 ‘트리토판’ 성분이 든 우유나 바나나, 상추, 호박 등을 먹고, 졸음을 일으키는 둥글레차도 좋다.
적당한 운동도 숙면에 도움된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격하게 운동하면 체온을 올려 수면을 돕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가 억제되고 생체리듬마저 깨질 수 있다. 밤에는 요가ㆍ스트레칭 등 가벼운 운동을 하고, 되도록 잠들기 5시간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 운동 후 자기 2시간 전에 반신욕이나 미지근한 물로 샤워해 체온을 낮추면 숙면에 도움된다.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숙면하는 법이다. 잠자리는 최대한 어둡게 해야 한다. 잠자리에 누워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TV나 스마트폰과 같은 푸른 색 빛을 내는 전자기기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저해해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부족환 잠을 한 번에 몰아 낮에 자기보다 낮에 너무 졸리면 15분 이내, 휴일에는 30분 이내 자는 것이 좋다.
올바른 수면자세는 똑바로 누워 입을 다물고 코로 호흡하는 것이다. 입으로 숨 쉬면 구강이 말라 이물질에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감기나 천식, 알레르기성 비염, 구취 등이 생길 수 있다.
“수면제도 필요하면 먹어야”
수면장애 증가와 함께 수면제로 쓰이는 항(抗)불안제(벤조다이아제핀)와 신경안정제(할시온), 수면유도제(졸피뎀) 복용도 늘고 있다. 비(非)벤조다이아제핀 수면유도제인 졸피뎀은 2013년 19개 품목 1억1,310만 정에서 2015년 1억2,025만 정으로 늘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따라서 수면제 부작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항불안제는 불안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 유도, 근육 이완, 경기(驚起)ㆍ발작 예방 등 다양한 작용을 한다. 억지로 뇌파를 졸리게 해 기억력이 떨어지고, 잠에서 깨어도 머리가 띵하고 개운하지 않은 부작용이 있다. 역시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할시온(성분명 트리아졸람)도 불안감, 짜증, 건망증, 공격적 성향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따라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약에서 수면 유도 기능만 작용하게 해 부작용을 줄인 약이 바로 비벤조다이아제핀 수면유도제(졸피뎀)다.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 수면유도제는 졸림을 부작용으로 동반하는 감기약 계열 약이다. 최근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멜로토닌이 부족을 보충하는 ‘서카딘’(서방형 멜라토닌)도 나왔다.
수면제 부작용으로 기억력 저하나 밤에 잠자다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이상행동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수면제를 적정 용량으로 2~3주 정도 단기간 먹는 게 원칙이다. 취침ㆍ기상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면 효과도 떨어진다. 취침시간을 정해 잠들기 전에 바로 먹어야 한다. 수면제를 먹은 뒤 잠자다 돌아다니는 등 엉뚱한 행동이나 기억력이 떨어지면 즉시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은 “불면증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면 수면제 복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보통 수면제를 3주 정도 먹으면 증상이 대부분 좋아진다”고 했다. 한 원장은 “다만 수면제를 3주 이상 먹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우울증ㆍ불안장애ㆍ수면무호흡증 등 불면증의 다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공단도 부작용을 우려해 졸피뎀을 한번에 28일 이상, 할시온은 21일 이상 처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낮 시간에 너무 졸리는 기면증은 뇌 시상하부에서 각성을 유지해주는 물질인 ‘히포크레틴’이 적게 나와 생긴다.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하게 졸리면 전문의에게 수면다원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 기면증 치료제로는 ‘프로비질(성분명 모다피닐)’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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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