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대변화 외면하다 위기 초래한 ‘유니비전’

2017-01-16 (월) LA타임스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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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층 이탈로 ‘최대 스페인어 미디어’ 입지 흔들

시대변화 외면하다 위기 초래한 ‘유니비전’

시대의 변화와 젊은 시청자들의 기호를 제대로 못 읽어 위기에 빠진 유니비전.

스페인어 TV 자이언트인 유니비전커뮤니케이션스는 경쟁사들을 항상 압도해 왔다. 멕시코로부터 들여온 신데렐라 스토리들의 인기에 힘입은 바 컸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유니비전은 위기에 빠져 있다.

전국 최대 스페인어 미디어인 유니비전은 익숙지 않은 상황 속에서 2016년을 끝냈다. 시청자들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경쟁사인 텔레문도와 프라임타임 시청률을 놓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뉴욕에 본사를 둔 유니비전은 지난 2013년 이후 프라임타임 시청자가 45% 이상 줄었다. 지난 7월 이후에는 TV 광고의 스윗 스팟이라고 하는 18~49세 시청자에서 경쟁사인 텔레문도에 뒤지고 있다.


유니비전의 이런 상황은 안좋은 시기에 찾아왔다. 이 회사는 오랫동안 지분을 갖고 있던 LA의 억만장자 하임 세이반을 포함한 개인 에퀴티 투자가들이 지분 정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업공개를 준비해 왔다. 준비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일부 에퀴티 소유주들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시청률 부진과 광고수입 감소, 그리고 이사회 갈등은 유니비전이 월스트릿에 결코 설명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다. 유니비전은 지난해 3분기에 3,05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던 중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세우겠다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공약은 유니비전의 가장충성스러운 시청자들인 멕시코 이민자들을 흔들 수 있다. 유니비전은 인구 구성과 TV 소비방식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시청률 부진을 초래했다. 지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 내 라티노 인구를 보면미국태생이 이민자들보다 더 많았다.

미국태생은 통상 이중언어를 구사하지만 주로 영어를 사용하고 TV도 영어로 보는 경향이 있다.

라티노 미디어 전문가인 헥코르 오르치는 “유니비전은 미디어 세계를 재편하고 있는 기술적, 문화적 변화라는 혁명적 변화의 최악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유니비전은 길을 잃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비전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드라마는 이 매체의 TV 네트웍인 유니비전과 유니마스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들처럼 요란하다. 하 중역은 “모두가 위기모드”라고 전했다. 시청률이떨어지면서 에퀴티 투자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이것은 이사회 내부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이반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유니비전의 지분 10%를 갖고 있으며 이방송에 TV 드라마들을 만들어 공급하는 멕시코 거대 연예기업인 그루포텔레비사에 좌절감을 드러낸다. 유니비전은 이 기업에 매년 3억5,000만달러 정도를 프로그램 비용으로 지불한다. 현재의 실패를 고려할 때 쉬 받아들이기 힘든 액수이다.

유니비전의 가장 큰 불만은 가난한 소녀가 역경을 극복한다는 식의진부한 플롯라인이다. 그리고 느린 전개와 같은 배우들의 반복 기용, 또 대부분 라티노들이 살고 있는 도심이 아니라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등도 불만의 이유이다.


유니비전 시청률 하락은 젊은층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샌앤토니오의 마케팅 전문가인 어네스트 브롬리는 “TV 드라마는 닐슨 시청률 조사가시작된 이래 시청률을 지배해왔다”며 “드라마들은 지난 50년 동안 스페인어 방송의 상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미디어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NBC유니버설이 소유하고 있는 텔레문도의 경우 토픽이 될 만한 소재로 빠르게 전개되는 드라마들로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 항상 추방 위협에 시달리거나 아들이 갱에 가압하려고 해 고민하는 이스트 LA의 근로가정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텔레문도는 드라마 포맷을 바꿔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마약 드라마이다. 범죄자이거나 마약딜러이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우려는 로비후드 유형의스토리들로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고있다.

오르치는 “미국에서 제작된 드라마들이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둔다”며 “텔레문도는 이밖에도 쇼들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유니비전의 프로그램들이 텔레문도에 비해 떨어진다고 느끼고 이를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유니비전은 미국 내 제작시설이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을 멕시코 텔레비사에 의존하고 있다. 몇 년 전 유니비전의 경영자인 랜디 팔코가 텔레비사 제작 드라마들의 부진에 대해 불평을 했지만 “멕시코에서 잘 먹히고 있는 검증된 방식”이라는 텔레비사파견 이사의 주장에 묻혀버렸다고 관계자들을 들려줬다. 헥토르 오르치의 아들인 앤드류 오르치는 “미국에 사는 라티노라는 경험은 멕시코서 사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텔레비사는 마약 관련 스토리를 다루길 꺼려한다. 텔레비사는 멕시코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약 스토리로 정부를 자극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멕시코 내 텔레비사 시청률도 폭락하고 있다. 점점 많은 멕시코인들이 모바일로 뉴스를 보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연예프로그램들을 본다. 앤드류 오르치는“멕시코 젊은이들은 TV를 보지 않는다. 그들은 코드를 잘라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LA타임스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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