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태환 칼럼] 민족자결로의 회귀

2016-06-29 (수) 11:41:57 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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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에서 민족사관으로 한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할 무렵 조선이 중국에 조공무역을 한 사실을 ‘능동적 사대주의’라고 교과서에 기록했다. 중국에 조공을 하긴 했지만 가져다 바친 물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아 왔으며 결과적으로 국익에 보탬이 되었다는 얘기다.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조공했다는 것 보다야 민족 정서에 도움이 될 터였다. 국력 때문이든, 실리 때문이든 국익을 우선 따져 외교를 편 것 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세계화가 화두였다. 구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 국가들의 독립, 냉전시대의 종식,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국제질서가 미국 만을 초강대국으로 남겼을 때 중국이 꿈틀거렸다. 유럽은 이 새 체제에 대응할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유럽연합(EU)이다. 국제화 , 세계화는 1990년대 보편화하기 시작한 인터넷 망을 타고 급속도로 확산한다.

앞서 예를 든 조선은 주변 국제 정세에 때로는 능동적으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편승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주창한 세계화는 적극적으로 세계질서에 편입하자는 의미였다. 한국은 이제 세계적인 기업을 여러 개 거느리고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경제 블록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여러 FTA를 성사시켰다. 세계화는 한류를 타고 넘실거린다.


김대중 정부는 IT 강국을 부르짖었다. 인터넷망이 가장 발달한 나라로 한국이 꼽힌다. 인터넷은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통계만 봐도 이해가 간다. 현재 전세계에 등록된 웹사이트 수는 2014년을 기준으로10억개가 넘는다. 인터넷을 생활화하고 있는 인류의 수와 맞먹는 규모다.

경제와 기술의 글로벌화, 웹사이트로 연결된 세계, 여기서 역설이 시작된다. 블록이든 글로벌이든 내막은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다. 고립되면 국익이나 회사의 이익을 취할 수 없는 경제환경과 온라인으로 연결된 기술환경이 글로벌화를 촉진시켰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국력의 확장을 위해 세계 각국이 자유무역의 블록화로 합종연횡했다.

반면 글로벌화로 야기된 인력의 아웃소싱과 사회 전분야에 걸친 자동화는 글로벌화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금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브렉시트(Brexit)다. 영국민의 절반 이상은 글로벌화가 꼭 좋은 것 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다. 주로 난민과 이민의 유입으로 일자리를 위협받는 서민들이 EU탈퇴에 찬성표를 던졌다. 글로벌화의 혜택을 소수 만이 누렸기 때문에 발생한 반작용이다.

글로벌화의 최대 수혜자는 글로벌 기업과 자본가, 자본을 활용할 줄 아는 지식인들이었다. 세계경제가 침체기를 맞고 있는 지금 최대 피해자는 저소득, 저학력층이다. 한국도, 미국도 , 유럽도 그랬다. 브렉시트는 부의 편중을 가속화한 책임을 글로벌화에 묻고 있고 이 질문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시인 김수영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고 민중의 본능을 갈파했다. 글로벌화 분해가 바람이라면 영국 민중은 브렉시트 탈퇴로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났다. 스코틀랜드가 독립적으로 EU잔류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나 이 움직임도 분해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의 국제정치경제 유럽센터 프레드릭 에릭손 소장은 “글로벌화의 시대는 확실히 끝났다”고 단언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미국 대선의 두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도날드 트럼프는 12개국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TP)에 반대한다.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온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반대세력도 목소리를 키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브렉시트 이후 대책으로 글로벌화의 혜택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으나 시대의 흐름을 돌리기에는 늦었다. 글로벌화의 대척점에서 민족주의의 부활이, 100년여 전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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