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획] 애 돌봄이로 내몰리는 노인들

2016-02-12 (금) 03:17:47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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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부모 미국오라고 하더니 ”너희 애들 보란 거였니?”

▶ 보모에 가정부 역할까지 커지는 ‘갈등’, 애 업느라 허리•관절 아파도 “쉬쉬”

아들 초청으로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된 최모(72•65세)씨 부부.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한국에 살면 뭐하시냐고, 노후를 즐길 수 있고, 연금도 나오는 미국이 최고라고 바람을 넣어서 왔는데…”이들 부부는 느지막이 미국에 간다는 데 두려움은 있었지만 아들도 있고, 한인도 많아서 친구도 금세 사귈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에 빠졌다. 최씨는 아들의 “저희가 모시고 살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약속과 무엇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생각에 미국행을 결심하게 됐다. 그렇게 수년간의 수속을 마치고 작년 초 미국에 오게 됐고, 5살 난 손자와 중간에 낳은 1살 된 손녀, 아들과 며느리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좋았어요. 며느리가 애를 낳으면서 그만뒀던 직장으로 돌아가기 전 까지는요. 한두 달 지나더니 ‘두 아이를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하는데 아이들을 남에 손에 맡길 순 없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더군요” 최씨 부부는 손자손녀를 앞에 놓고 의사를 물어보는 아들내외에게 “알았다. 우리가 키울 테니 걱정하지마라”라는 말을 했다. 그때만 해도 얼마나 힘들지 그 말의 무게를 몰랐다.


시도때도 없이 안아달라고 울고 보채는 한 살배기 손녀에, 툭하면 자지러지면서 뒤로 넘어가는 손자. 퇴근하고 돌아와서 우는 아이들을 보며 “어머니” 소리와 함께 애 하나 제대로 못 보냐는 서슬 퍼런 눈초리에 이들 부부는 지쳐가고 있었다. 최씨 부부는 “이제 애들 본지 1년이 다돼가는 데 마음 같아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한 번은 유모차 태우고 공원에 가니 나 같이 애들 데리고 온 노인들이 있더라고. 그걸 보면서 ‘아, 이래서 우릴 불렀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긴 한숨을 쉬었다.

남편과 사별한 이 할머니(64)도 딸의 초청으로 미국에 오게 됐다. 4살 난 손자를 보면서 얻은 건 관절염이었다. 작년 말 피곤에 지쳐 잠깐 조는 사이 손자가 탁자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쳐 피가 났다. “전화를 받고 달려 온 딸 첫마디가 ‘애 하나 제대로 못 보고 뭐했냐. 손자인데 이렇게 성의 없이 볼 수 있냐’는 고함에 지난 2년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군요”딸과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이씨는 올 5월까지만 봐주고 딸집을 나갈 계획이다.

사이가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이씨가 선택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공원에 가보면 어린 애들을 데리고 있는 노인들은 거의 다 동양인에요. 어디 활짝 웃고 있는 노인네 얼굴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보세요. 그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말이 무슨 뜻 인줄 알고요” 유모차를 끌고 딸네로 향하는 이 할머니의 뒷모습은 무거웠다.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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