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적·물적 자원 최우선 배분체제로 전환…에볼라 때 늑장 대응 만회 노력
WHO, 지카 바이러스 국제 보건 비상사태 선포 (제네바 EPA=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는 1일(현지시간) 신생아에게 소두증을 유발할 수 있는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이 이례적인 사례라고 보고 국제 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사진은 마거릿 찬 WHO 사무총장이 이날 저녁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긴급위원회 회의 결과 지카 바이러스가 국제 보건 비상사태에 해당한다면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일 브라질 등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국제 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고 지카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전면전에 돌입했다.
국제보건규정에 따라 소집된 지카 바이러스 대책 긴급위원회가 이날 회의엔서 지카 바이러스 확산이 국제 보건 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마거릿 찬 WHO 사무총장에게 권고함에 따라 WHO는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지카 바이러스 박멸에 최우선으로 배분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지난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해 국제 보건 비상사태를 너무 늦게 내렸다는 비판을 받아온 WHO로서는 이번에는 최대한 빨리 지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초 2일 오후로 예정된 것으로 전해졌던 긴급위원회 회의 결과도 앞당겨서 발표했다.
WHO가 이처럼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 이후 조직을 철저하게 뜯어고치려는 노력이 때마침 지카 바이러스 확산과 공교롭게 맞아떨어지면서 가능했다.
WHO는 그동안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와 서태평양 지역본부 등 전 세계 6개 지역본부가 `집단 지도체제' 형태로 운영되면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조직적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에볼라 사태 이후 WHO 본부와 지역본부 그리고 회원국이 하나의 명령체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한다는 `하나의 프로그램'(One Program)과 긴급상황 발생 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력이나 예산을 파견하는 `하나의 예산'(One Budget)을 목표로 WHO 구조개편 작업을 진행해왔다.
아울러 에볼라와 같은 질병이 언제든지 다시 발생하면 인력과 장비를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1억 달러 규모의 별도 긴급대응기금을 마련하기로 하고 현재 약 2천5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한 상태이다. 사태가 터지면 기존에 편성된 예산과 인력을 끌어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WHO 사무총장 책임하에 즉각 인력과 예산을 운용하고 이후 정규 예산이나 추가 기금 모금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또한, 현재 전염병 등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국제 보건 비상사태 선언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 인도적 지원기구들이 지진이나 해일 등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1, 2, 3단계로 나눠 대응하는 것처럼 중간 단계의 대응 구조도 만들기로 했다.
마거릿 찬 WHO 사무총장과 6개 지역본부 사무처장들은 최근 공동 성명을 통해 이런 구조개편 작업을 천명했고,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어 오는 5월 WHO 총회에서 확정할 계획이다.
WHO가 이처럼 앞으로 예상하지 못한 각종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들을 준비해왔지만 당장 에볼라와 성격이 너무 다른 지카 바이러스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 나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에볼라처럼 지카 바이러스도 특별한 백신이나 치료법이 없는 상황은 비슷하지만 사람끼리 전염돼 감염경로만 잘 관찰하고 감염자를 격리치료하면 됐던 에볼라와 달리 모기가 매개체인 것으로 알려진 지카 바이러스는 에볼라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
또한, 지카 바이러스가 치사율은 에볼라보다 높지 않지만 미래 세대인 신생아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소두증이나 신경마비 증세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인과 관계에 대한 조사도 철저하게 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더구나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의 상당수는 에볼라처럼 열이 나거나 특정 신체부위가 아픈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감염자 확정이나 격리·치료 등에서도 에볼라 바이러스때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WHO 미주지역 본부는 이런 특성때문에 지카 바이러스와 비슷한 댕기열 등의 발생 사례 등을 고려해 미주지역에서만 내년까지 300만-400만명이 감염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더구나 올해 엘니뇨 현상으로 여러 지역에서 모기 개체 수가 급격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찬 WHO 사무총장도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지카 바이러스가 신생아 출산에 소두증 등을 유발하는지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지만, 사태의 위협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면서 "여행이나 교역에 대한 금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국제적인 신속한 공동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만 언급했다.
하지만 WHO가 남미와 멀리 떨어진 인도네시아에서도 감염자가 확인되는 등 동남아 지역에도 전파되고, 중국도 지카 바이러스 대책에 나서는 등 전 세계가 또다시 공포에 사로 잡힌 가운데 서둘러 행동에 나선 것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토마스 프라이든 박사는 "WHO가 국제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세계가 모두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것"이라며 "CDC는 물론 미국 정부도 전 세계적인 지카 바이러스 대응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유엔본부의 한 관계자도 "지카 바이러스가 주로 이집트 숲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모기들도 전염 매개체가 될 수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면서 "특히 1-2건 밖에 보고되지 않는 사람 간 전염 사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며 WHO의 국제 보건 비상사태 선포를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