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태환 칼럼] 변 회장의 부음

2016-01-27 (수) 12:00:00 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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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변효현 전 한인회장의 부음을 들었다. 나는 고인과 생전에 기자로서 많은 만남을 가졌으나 개인적인 추억은 거의 없다. 자택에 한 차례 방문한 적은 있다. 뒤뜰의 수영장이 여름 방학 손주들 놀이터라며 웃던 기억이 난다. 1950년대 시카고로 유학 왔다니까 고인이 시카고에서 살아온 역사만큼 알고 지낸 이들이 적지 않을 테고 다들 나름 고인과 얽힌 사연들을 나눌 터다.

얼마 전 나는 고인 보다 앞서 한인회장을 지낸 장영준씨를 뵐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눈 말이 부음과 겹쳐 새삼스럽다. 역대 한인회장을 지낸 분들이 모두 시카고에 산다. 50년을 넘긴 역사에 비추어 신기한 일이다. 선벨트를 찾아 떠나는 트렌드를 몰라서가 아니다. 적어도 이곳서 한인회장을 지낸 이들은 시카고를, 시카고 한인사회를, 이 곳서 맺은 수많은 인연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는 반증이다.

장회장을 뵙기 또 얼마 전 이윤모 선배가 한인사회발전협의회 행사에 다녀온 소회를 적은 글을 접했다.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카고 한국일보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지금의 한발협 회원 다수와 당시 한인사회의 발전 방향을 놓고 티격태격하던 기억을 애증으로 표현하고는 그 분들의 절반이 타계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는 서서히 한 두 사람의 부음을 들으며 사라져 가야 되는가’ 반문했다. 그 물음에 쓸쓸함이 배여 있다.


고인은 의학박사였지만 회장으로 더 잘 불렸다. 한인회장과 상록회장 등을 역임했다. 19대 한인회장 임기를 채운 뒤 연임을 위해 20대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과열된 경선으로 입후보한 누구도 회장에 오르지 못했다. 고인에게는 아픈 기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록회장을 맡으며 시카고 한인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만든다. 나도 여전히 현장을 기억하고 있는1995년의 일이다.

변 상록회장은 당시 상록회 장영준 이사장과 함께 영어 미숙으로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한인 노인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이민국장을 만나 협조를 구하고 당시 셰리단 길에 밀집했던 한인 노인들의 시민권 취득을 독려했다. 상록회가 세 들어 있던 셰리단 길 건물 내 공간을 추가로 빌려 시민권 인터뷰 장소로 이용했다. 이민 판사들이 기꺼이 출장을 나왔다. 한인노인들의 교통편의까지 배려한 일이었고 긴장될 법한 시민권 인터뷰에 편한 분위기 마저 느껴졌다.

그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무려 700여명이 신청을 하고 589명이 시민권을 받았다. 리차드 데일리 시장의 협조로 다운타운 네이비 피어가 선서식 행사장으로 마련되었고 이 행사는 미국 주류언론뿐 아니라 한국의 KBS가 취재팀을 보낼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늘 지나면 알게 되지만 이 이벤트는 ’사건’이었다. 600명 가까운 단일 국적의 이민자들이 단체로 시민권을 취득하고 함께 선서하는 광경은 일찌기 없던 일이었다.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 강한 바람으로 상징되는 시카고를 상대로 여전히 사랑가를 부르는 사람들 중에 변회장은 항상 있었다. 가장 최근의 내 기억으로는 구세군 한인영문에서 열린 평화문제연구소 주최의 포럼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해 인사말을 한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행사 마다 모습을 보였다. 그 옆에는 조카인 진안순 한인회장의 부축이 따랐다.

돌이켜 보면 시카고에서 맞는 역대 한인회장의 부음은 이번이 초대 정보라 박사에 이어 두 번째다. 오래 전 얘기로 정박사 타계 후 나는 한인회 관계자나 한인사회 단체장들을 만날 때 마다 흉상이라도 하나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냈었다. 한 분은 ’그 말 어디 가서도 하지 마라, 내가 하겠다’고 의욕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뿐 이었다.

지금, 시카고 한인 역사를 만들어 온 분들이 하나 둘 떠나는 지금 그들의 발자취를 개개인의 기억으로만 남길 건가 우리에게 묻는다.

<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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