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에 힘 실어줄 교황엔 ‘환대’…사이버 갈등 고조 속 시진핑엔 ‘냉랭’
지난해 3월 바티칸에서 만난 오바마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 (AP)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APEC 회의에서 만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
프란치스코 교황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이라는 초대형 외교 이벤트 두 개를 한꺼번에 치르는 백악관의 분위기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전 세계 10억 가톨릭 신자의 수장인 교황과 14억 인구의 공산국가를 이끄는 시 주석 모두 국제사회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이들을 맞이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속내는 대조적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21일 보도했다.
22일 나란히 미국에 입국해 이틀 차이로 각각 오바마 대통령과 회동하는 두 정상 중 환영받는 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이민 정책, 기후변화 대응, 사법시스템 개혁 등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말 주요 정책과 비슷한 견해를 지닌 프란치스코 교황의 도덕적 권위와 개인적 인기가 오바마 행정부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교황이 많은 미국인이 높은 가치를 두는 엄청나게 중요한 단체의 지도자이자 세계의 도덕적, 영적 지도자라는 점에서 그의 방미는 특별하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찰리 쿠프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담당수석도 "백악관은 교황과 대통령이 공유한 목표를 구체적 행동과 새로운 실행계획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메릴랜드 주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직접 나가 교황을 영접하기로 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반면 시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의 만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라는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의 표현대로 교황 방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냉전 이후 가장 심각해진 양국 갈등 탓에 어느 때보다 냉각된 분위기다.
해킹 등 사이버 안보 문제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국 내 인권 문제 등의 민감한 현안을 놓고 오바마 대통령이 시 주석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 문제 등을 놓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양국 정상이지만, 이번 만남에선 여러 가지 복잡한 갈등 사안을 놓고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WP는 진단했다.
라이스 보좌관은 21일 워싱턴대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국가의 후원을 받는 사이버 경제 스파이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분명하게 언급해왔다"며 중국의 해킹을 "사소한 짜증(mild irritation)이 아니라 경제적이고 국가안보적인 우려"라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다수의 공개 행사를 통해 환대를 받는 교황과 달리 시 주석이 몇몇 지도층 인사와 비공개 회동을 몇 번 하는 게 워싱턴 일정의 전부라는 점도 이런 분위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을 요구하는 의회의 목소리가 공화당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최근 주식시장과 경제 위기로 시 주석의 국제사회 입지가 약해진 상황도 여기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한편 바티칸이 독립국으로 공인된 이후 교황과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같은 주에 워싱턴DC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WP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