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레버리지의 함정

2015-09-21 (월) 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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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지렛대와 무게를 지탱할 장소를 준다면 나는 지구도 움직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엔지니어인 아르키미데스가 한 말이다. 그는 물질의 채적과 질량 비중에 따른 부력 이론인 아르키미데스 원리로 우리에게 유명한 학자이다.

인간이 지렛대를 이용한 역사는 훨씬 오래 전부터였지만 그는 지렛대 원리를 수학적 공식으로 정의했다. 지렛대는 움직일 대상 물질에 힘을 전달하는 작용점과 그 힘을 지탱해 주는 받침점 그리고 힘을 가하는 힘점의 단순한 구도이지만 인류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발견이라 생각된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손톱깎이나 가위 그리고 못을 뽑을 때 쓰는 장도리도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 생활의 필수품들이다. 대표적 도구인 장도리는 바닥의 받침 부분과 힘을 가하는 지점이 멀수록 에너지가 적게 들고 가까우면 반대의 경우가 된다. 즉 지렛대 원리는 힘을 가하는 지점과 마지막 전달되는 지점의 운동속도의 차이다.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도르래나 자동차에 사용되는 변속기도 같은 원리로 작동되므로 출발하거나 언덕을 오를 때 저속 기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경영에서도 작은 자본을 극대화하여 기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일반적인 활동이며 이를 레버리지 효과로 부른다. 기업이 자본이나 상품을 신용으로 구입해 재무제표에 적용하면 부채가 증가하지만 자산도 커진다. 100만달러의 자본금을 가진 회사가 200만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다면 자산이 300만달러로 늘면서 부채 비율도 200%로 올라간다. 이 정도 부채 비율을 결코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없지만 기업이 마음대로 활용 가능한 자산은 수익을 창출하는 자원이 되므로 자본 효율성 측면에선 긍정적인 숫자일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레버리지 활용은 기업 경영과 개인 투자에서 성공과 실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특히 매출 대비 마진이 작은 유통회사는 레버리지의 극대화가 요구되는 업종인 만큼 밴더들이 제공하는 크레딧 조건은 매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처음엔 건설적이고 효과적 방법으로 활용되던 레버리지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칙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유통기업들이 파산법원에 제출한 자료들을 보면 부채가 자산보다 월등히 많은 것이 특징이다. 최근 한국일보에 보도된 파산 의류업체가 제출한 자료도 부채가 자산의 7배가 넘어 황당하기까지 했다. 은행이 이렇게 많은 융자를 제공했을 리 만무하고 분명히 밴더들로 부터 공급받은 상품의 외상 매입금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경우 처음부터 그렇게 많은 규모의 크레딧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액수가 커지고 지급 기일도 더욱 길어졌을 것이라 판단된다. 밴더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고 파산하는 기업들의 패턴을 보면 크레딧 텀을 점차적으로 늘리는 경우가 많다. 상품이 판매되는 회전률이 늦어져 그렇다기보다는 당일 혹은 길어야 2주 이내에 현금화 될 물품을 외상으로 구입하고 지급은 수개월 후 갚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보한 현금으로 점포수를 늘리면 매출이 증가하고 다시 매출의 몇 배만큼 가용 현금도 늘어난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사 구좌에 있는 현금이 자기 돈 인양 착각해 부동산 구입 등 본업 외에 다른 곳에 투자를 한다. 그러다 경기가 나빠지거나 경쟁구도 변화로 매출이 떨어지면 현금 흐름에 압박을 받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인 확장 모드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회사의 마케팅 전략은 수익을 더 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크레딧을 늘리기 위한 재무적 수단으로 전락해 결국은 문을 닫게 된다.

최근 남가주 진출을 선언하고 점포를 오픈한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파산을 신청한 수퍼마켓 체인도 이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지렛대를 이용해 움직이는 물체를 회사의 규모라 할 수 있으며 그 중량을 감당하는 받침대는 시장 환경이고 막대는 기업의 능력에 비유할 수 있다.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강도의 막대라도 받침대가 약하면 움직일 수 없고 아무리 받침대가 튼튼해도 지렛대가 부실하면 휘어지거나 부러지고 만다.

따라서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경영환경에서 과도한 레버리지는 매우 위험한 전략이 된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부족함만 못함이 세상의 이치고 진리다. 아르키미데스가 전제했던 무한정을 감당할 지렛대와 받침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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