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마치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과 같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도 글 속에 담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의 글을 통해 자신을 돌이켜보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많은 결점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비켜가는 성격일 것이다. 원시적인 강인함이라고나할까, 즉 힘들더라도 고지를 점령해 보겠다는 투지나 도전정신의 부재를 들 수 있겠다.
이를테면 힘든 고전읽기나 꾸준하게 글 쓰는 일 등을 기피하는 경향같은 것이라고나할까. 강인함으로 단련된 정신력…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원시적인 투지와 지구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는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가능한 것이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부울 줄 아는 정열… 그것은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얼마전,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서 몸 속에 잠들어 있던 신선한 야성을 다시 한번 일깨움 받았다.
이 작품(Lawrence of Arabia)은 1962년 콜롬비아사가 1천 5백만달러를 투입, 사막에서 직접 촬영했는데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 7개 부문을 휩쓸었고 영화시장에서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흥행작이기도 하였다. 1989년 스필버그 등의 노력으로 개봉당시 35분이나 단축됐던 오리지널이 복원(1989년), 다시한번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주인공 역의 피터 오툴(2013년)에 이어 알리 족장역의 오마 샤리프마저 지난 7월 사망, (로렌스의 추억을 간직한)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중학교 때 보았는데,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잘 알아 먹지 못했다. 그저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련의 전쟁신과 영화음악만이 간혹 떠오르곤 했는데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라는 인물에 대해 몰랐던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자연에 대한 도전이라든가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 그리고 사막을 사랑하게 되는 한 영국인의 이야기가 (‘지바고’ 등 멋진 장면만 기대하던)당시 사춘기 소년에게 너무 황당하게 들려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생은 마치 운명을 등에 업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인생이 고난스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생이 그 자체로 하나의 모험이기 때문이다. 고통… 목마름이 없다면 오아시스가 주는 희열도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생활의 피투성이 속에서 비로소 이 영화가 주는… 모험과 꿈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생은 도전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기루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사막처럼 단조롭게 이어지는 일상의 무료함… 그 긴 갈증 속에서 간혹 나타나는 신기루의 현혹은 때때로 사람을 파멸로 이끌기도 하지만 혹자는 그 속에서 과감히 도전, 영웅이 되기도 한다.
T. E. 로렌스는 원래 메소포타미아의 고고학 등에 관심이 있었던 옥스포드의 학자이자 연구원이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카이로 정보국의 장교로 근무하면서 로렌스의 신화가 시작되는데. 모래폭풍 뿐인 사막에서 모험적인 결단력으로 아랍인들을 이끌고 (터키와의)전쟁에서 승리, 아랍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
아카바를 기습공격, 일거에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로렌스는 전쟁이 끝나자 유럽의 아랍 개입을 격렬히 반대하지만 뜻이 좌절되자 자신에게 주어진 훈장을 내던지고 고립 속에서 (1935년 46세로)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아랍의 영웅, 로렌스는 귀국 후 예편되지만 다시 (이름을 바꾸고)무명졸개로 입대, 군대를 피난처 삼아 이름없이 살다가 일찍 요절했다. 사실 사막이 없는 삶… 그 신기루의 도전이 없는 삶이란 로렌스에게 더 이상 살아간다는 것의 큰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막으로 가라. 그리고 벌거벗은 자신에 도전하라. 요즘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향한 이러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특히 신문 지상을 통해 들려오는 무슨 이상한 사이트 등의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마치 고인물이 썩는 것 처럼 문명에 대한 권태… 원시로 돌아가고 싶은 갈증이 더해 지곤 하는 것이다.
‘사막은 거칠다. 그러나 깨끗하다’ … 로렌스의 외침은 도전없는 영혼, 야성없는 문명이란 결국 신기루일 뿐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가는 이번 여름은 사막으로 떠나는 여행… ‘아라비아의 로렌스’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리얼리틱의 명장면… 장쾌한 사막에서 울려오는 영화음악도 즐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