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림이 있는 산문] 최정 ㅣ 꿈 같은 꿈

2015-09-1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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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신문을 읽고 히죽히죽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산책을 나갔다. 지나가는 이들은 날보고살짝 맛이 간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다.

나를 웃게 한 기사는 이랬다.

길에서 20불을 주은 사람이 그 돈으로 생전 안사던 복권을 샀는데 그게 당선이 됐단다. (아뿔사! 나도 얼마전 길에서 이십불짜리 하나를 주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날쌔게 가게로 달려가 복권을 살껄.. 무릎을 쳤다.) 백불 이상의 돈은 헤아릴 능력이 없는 나인고로 그 사람이 받은 액수가 큰돈이란 느낌뿐 얼마인지 감은 없다.


그 돈으로 무얼하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선 오천불을 복권 산 가게에 선물하고 이십불짜리 돈을 여기 저기에 뿌려 놓고 다니겠다고, 그리곤 그 돈을 집은 누군가가 자기처럼 럭키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개 집을 사겠다던가 애들 교육비로 쓰겠다던가 아니면 사회에 좋은 일에 쓰겠다고 하는 게 정답 같던데 자신의 행운을 모르는 남과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유로움 이 느껴져 아이디어가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책 길에 행여 그 돈이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하며 비죽비죽 웃었던 거다.

둘러앉아 할 얘기 다 떨어지면 간혹 복권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가 있다. 복권을 받은 이의 대부분이 불행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기본이며 결론은 언제나 자신에게 복권이 떨어지게 되면 절대로 바보짓 안하고 잘 관리할 자신이 있는데 우째 그 눈 먼 복권이 자신에게는 떨어지지 않는거냐는 푸념으로 끝난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내 그릇을 알기 때문에 큰 돈이 내게 오면 내가 어떻게 변할지 자신이 없다.

우아하고 고상한 귀부인으로 변신할지, 사회사업가가 될지, 스쿠리지영감처럼 탐욕스런 눈동자로 돈보따리 움켜쥐고 다가오는 사람마다 적개심 불태우며 짜려보게 될지.. 생전 복권을 안 사는 사람이라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으나 행여 다시 한번 이십불짜리를 줍게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면 나도 그 돈으로는 복권을 사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으니 이런 게 바로 할일 없는 이의 백일몽일 터이다.

전부 기사를 통해 읽은 사연이지만 복권에 관해 잊지 못할 사연 몇 개를 기억하고 있다. 어느 노부부가 당첨되었는데 그 부부는 게임삼아 복권을 사왔기 때문에 당선된 걸로 충분히 만족한다며 그 돈을 몽땅, 한 푼도 안빼고, 고대로, 사회에 기부한 일이 있다. 그 부부의 사진도 나왔는데 동부에 사는 분들이어서 그렇지 가까이 살기만 하면 한번 찾아가 악수라도 하고 싶게 인상도 좋고 감동도 되었다. 대개는 복권을 살 때 당선 되면 반을 준다고 했는데 안줬다고 법원을 가기도 하고 당첨되자 배우자에게는 비밀로 하고 얼른 이혼을 했다가 오히려 몽땅 빼앗기기도 한다. 실제로 원수같은 서방 (마누라), 내가 복권만 당첨되 봐라, 그날로 이혼할껴., 가슴을 쾅쾅 치는 이들도 있다.

복권 당선된 이들의 사연 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어느 젊은여자가 복권이 맞자 그걸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남편에게 선물했다는 사연이다. 내가 복권에 당첨되면 남편에게 바치는 것 자체는 일도 아닐 것 같지만 그게 몇 일이었는지, 몇 달이었는지는 몰라도 나같으면 단 하루도 못 참을 것같다. 이런 기적같은 일은 그 순간, 발 빠르게 온 세상 방방곡곡에 알려야 하는 게 아닐까? 남편이 회의중이라고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면 지금 회의가 문제냐고 큰소리 뻥뻥치며 주저리주저리이 감격을 오래오래 나누고 싶어 할 것이다.

안그래도 시끄러운 세상, 더 시끄러워질까 봐 내게 그런 일 안 생기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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