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객원 논설위원] 도태환 칼럼

2015-09-0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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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인터넷

인터넷 밖의 세계.- 밤 벌레 소리가 크다. 아침 이슬이 차고 저녁 해는 짧다. 여전히 해가 따갑고 비가 잦아도 텃밭의 상추는 이파리 대신 씨 맺기에 바쁘다. 레이버 데이 이맘때 쯤이면 어김없다. 그렇게 가을이다. 올 여름 그리 덥지는 않아 선선한 기운에 별 감흥은 없다. 여름엔 겨울이, 겨울에는 여름이 좋다는 변덕도 올해는 덜 부리고 지냈다. 내가 계절의 변화에 밋밋해 진 건가. 아니면 올 가을에 수확할 게 없어서 인가. 아, 가을은 그렇게 맞으면 안될 일이다.

내가 오랜 시간 몸담아 온 언론계가 맞고 있는 변화가 마치 내가 지금 느끼는 가을 맞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의 공급과 소비가 확연히 구분되던 시절 후배 기자가 입사를 하면 신문 보도와 방송 뉴스의 차이점이 뭔가 묻곤 했다. 차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바에야 대답은 다양했으나 나는 소비자의 적극성 면에서 신문과 방송이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 지금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의 틀 안에 모두 들어가 있는 세상, 스마트 폰으로 아무 때나 뉴스를 검색할 수 있는 환경에서 신문과 방송으로 언론의 소비 양태를 구분 짓는 일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언론사의 주된 기능은 뉴스를 취재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하는 일이었다. 이 기능은 바뀌지 않았으나 다른 기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즉 독자나 시청자들의 뉴스 선택을 돕는 작업이다. 뉴스의 비중에 따라 헤드라인과 단신으로 나누어 배치함으로써 뉴스 소비자들의 선택을 용이하게 하는 일이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부동산 정보가 중개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지 오래 되었다고 말한다. 인터넷 상에서 시카고 지역 매물은 물론 한국과 전세계 부동산 매물을 다 살필 수가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아예 매물의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중개인을 찾는다. 그래서 언론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중개인의 역할도 변화를 맞았다. 수많은 매물 중 옥석을 가리는 일과 가격 변동 전망 등 전문적인 조언이 더 중요해 졌다.

언론이나 부동산이나 소비자와 고객이 전문가보다 더 많은 뉴스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그래서 전문가는 더 전문화해야 한다. 즉 이 쏟아지는 정보를 모아 소비자에 유용한 정보로 재생산하는 일이다. 과거에 정보를 던져주고 이를 선택하도록 했다면 이제는 가공하고 분석하고 함량을 재는 일에 더 비중을 둔다. 인터넷이 세계 곳곳의 소식과 정보를 컴퓨터 속으로 밀어 넣고 우리를 어디든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안의 세계는 내 집 조그만 뒤뜰이 주는 계절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 인터넷 밖, 사이버가 아닌 진짜 내가 만질 수 있는 세상에는 정보와 지식이 대체할 수 없는 자연과 감성과 지혜가 가득하다.

시카고 경제와 미국경제, 세계 경제의 흐름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모두가 접하지만 그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을 모두가 하지는 못한다. 부동산 경기가 조금씩 풀리는 것 같기는 한데 현재의 매물이 적정가격인지, 향후 전망은 어떤지, 부동산 시장을 읽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시카고 한인사회의 크고 작은 사건이나 행사를 보도를 통해 모두가 접할 수 있지만 여기서 한인사회의 변화를 감지하는 사람은 모두가 아니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 매여서는 지혜는 커녕 낙엽 하나의 정서도 느끼지 못한다. 대기권을 벗어나야 지구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벗어나서야 정보에 지혜를 덧입힐 수가 있다. 자, 지금 읽기에 긴 호흡이 필요한 한 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다. 벤치에 앉아 한 두 장 넘기다 말고 가을의 뜰을 본다. 그것이 인터넷 밖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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