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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보르네오(BIF) 가구점 김태현 대표

2015-08-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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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점 장수비결? 한 우물만 판 덕이죠”

보루네오 뉴욕지사 1년만에 철수하면서 홀로 남아
창고건물서 세일즈부터 조립.운송까지 혼자 다해
2년만에 릿지필드에 대형 쇼룸 갖춘 매장 오픈
뉴욕.버지니아.시카고 등 5개 기업형 가구점 성장

27년 동안 가구와 함께 외길인생을 걷고 있는 이가 있다. 남은 인생도 여전히 가구와 함께 살겠단다. 가구점 운영을 천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가정용, 사무용 가구는 평생 동반자다. 그래서 가구가 그의 삶 자체다. 그는 바로 보르네오(BIF)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태현(53) 대표다.

▲검정 고무신
그는 1963년 두메산골서 태어났다. 경북상주 은척면 장암리. 2남3녀 중 장남이었다. 누나 2명, 남녀 동생 1명씩. 어린 시절부터 소 꼴 베고 소를 먹이러 다녔다. 그렇게 집안일을 도왔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해야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책임감과 근면성을 기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어떡하든 해결하고자 한다. 그런 강한 책임감도 그 때부터 싹튼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 말씀을 잘 듣는 장남이자 효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향은 말 그대로 깡 촌이다. 전기가 없어 호롱불 아래서 공부를 했다.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장을 하던 아버지는 이웃돕기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늘 어려운 사람을 돌봤다. 그러다보니 어린 시절 복장은 항상 똑 같았다. 신발은 검정 고무신. 윗도리는 흰 색 내의. 거기에 깜장 바지를 입고 다녔다. 학교는 20리(8Km)의 산길. 겨울에는 남보다 하교도 먼저 했다. 깜깜한 산길을 다니는 위험함에 대한 선생님의 배려였다.

기차는 중학교 때 처음 타봤다.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생활은 인천에서 했다. 군대는 공군에서 35개월 복역했다. 그리고 뉴욕은 1990년 왔다. 지금은 가구점 5개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성장했다. 비록 두메산골에서 자랐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엄청난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것이다.

▲기업형태 가구점 운영
그가 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7년 전의 일이다. 1988년 보루네오 가구에 입사한 것이다. 그 곳에서 가구에 대해 배우면서 일했다. 그러다 뉴욕지사 설립 멤버로 1990년 3월 미국에 왔다. 그때부터 맨하탄 32가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다. 그러나 1년 만에 지사가 문을 닫았다. 한국으로 철수해야 했다.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미국에서 구멍가게 수준이 아닌 기업형태의 가구점을 운영하겠다는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3년 창고건물에서 혼자 사무용 가구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첫 몇 년간은 정신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세일즈는 물론 운송과 가구조립까지 직접 해야 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가구점을 운영한 것이었다. 그런 성실과 근면함으로 1995년 뉴저지 릿지필드에 2만 스퀘어피트의 쇼룸과 3만 스퀘어피트의 창고를 갖추게 됐다.

그는 릿지필드에 가정용 BIF 보루네오 가구점을 시작하면서 유명상품의 고급화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낫투지, 겜마, 니콜레티, 엑셀시어, 칼라가리스 등 100% 이탈리아 원목가구만 판매했다. 지금도 가정용 가구는 모두가 이탈리아 제품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마켓팅 전략의 성공으로 2000년에는 리틀넥에 보르네오 가구점을 오픈하면서 뉴욕에 진출했다. 2003년에는 버지니아에도 4만 스퀘어피트의 대형 BIF 매장을 열었다. 2006년에는 사무용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퍼시스(FURSIS) 가구점도 오픈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시카고에 보르네오(BIF) 매장도 오픈했다.

그는 앞으로 메릴랜드와 애틀랜타에도 대형매장을 오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형매장을 확대함으로써 기업형태의 가구점 운영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 우물만 판다.
그의 가구점 운영 노하우는 제품의 품질로 승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검증된 유명제품만 판매한다. 소비자가 믿고 만족할 수 있는 차별화된 고급제품을 취급하는 이유다. 결국 적정가격에 최고의 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이다. 그는 미국 마켓에 집중하고 있다. 타깃 고객은 타민족이다.

한인 타운에 위치한 릿지필드 매장만 한인 고객이 50%다. 리틀넥 매장의 고객 70-80%는 타민족이다. 버지니아와 시카고 매장의 고객 80% 정도는 백인들이다. 경기불황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고객을 타깃으로 하고 것이다. 그래서 지난 금융위기 때도 매출이 별로 감소되지 않았다. 금융위기의 타격을 덜 받은 고객들을 단골로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업원들을 가족처럼 여긴다. 종업원 관리는 지시보다는 스스로 하게끔 해준다. 종업원을 믿고, 자율적으로 해 주는 것이다. 현재 종업원들이 거의 10년 이상씩 일하고 있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이윤을 종업원에도 나눠준다.

돈은 종업원들이 벌어주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일하고 있는 한인 매니저를 위해서 적금도 들고 있다.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해 젊음을 다 받쳐 일하고 있으니 집이라도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그는 모든 종업원을 가족처럼 대해준다.

그의 경영철학은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60% 이상의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고 항상 위험에 대비한 40%의 예비비를 중요시한다. 건물 구입이나 비즈니스 확장 역시 그런 원칙 아래 이뤄진다. 무리한 확장을 하지 않고 확실한 계산이 선 다음 사업 결정을 내린 것이 매장 확대 등의 비즈니스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체 건물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했다. 건물 임대 재계약을 할 때 터무니없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망하는 사업주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적은 인력으로 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가 가구점이라 말하는 그는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자본이 많이 들며 덩치가 큰 만큼 위험부담도 높은 것을 단점으로 꼽는다.

그는 가구점 운영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다. 주위의 다른 비즈니스에 대한 유혹에는 아예 귀를 닫는다. 생각의 여지없이 무조건 ‘No!’라고 답한다. 오직, 가구점 운영을 평생 하기 위함이다. 그의 가구점 장수비결은 바로 딴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가구점 운영이라는 한 우물만 파고 있는 것이다.

▲가구는 나의 삶
그는 좋은 가구 선정의 1순위로 제품의 품질을 꼽는다. 가격보다는 품질을 먼저 생각하고 골라야 가구를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인들에게는 미국가구 보다는 유러피안 가구를 권한다. 한인 체형에 적합한 것이 유러피안 가구란 이유다. 미국식 소파나 침대 등은 한인체질에 맞지 않아 오히려 불편한 경우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항상 믿고 따라주는 아내를 늘 고맙게 여긴다. 1991년 친구 소개로 만나 1994년 3월에 결혼했다. 아내와 20년 이상 살면서 1남2녀의 자녀들 두었다. 두 딸은 대학생, 아들은 고등학생이다. 그에는 자녀들이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가훈처럼 잘 자라준 것이 행복이다.

그 동안 큰 근심이나 걱정 없이 비즈니스를 해 왔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행복으로 여긴다. 가능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성격이라는 그는 골프와 등산이 취미다.

그는 철저한 준비,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경영 철학, 열정 그리고 한 우물만 파는 외길인생으로 가구를 만지며 27년을 살아왔다. 남은 인생도 또 그렇게 살겠다고 한다. 가구와 평생 동반자로 살겠다는 의지다. 가구는 곧 자신의 삶 자체인 것이다. 가구를 자신의 삶으로 여긴다는 말 속에서 그의 인생관과 직업관을 느낄 수 있었다.<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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