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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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 일상(日常)안에서의 경계(境界)

2015-07-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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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전 한인회장>

우리는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에 길들여진다. 늘 같은 시간에 출발하여 같은 장소로 귀착(歸着)은 오늘 또한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날씨의 변화에 순응하며 무심하게 옷을 하나씩 꺼내 입었다가 다시 한 겹씩 덜어내는 동안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경쾌한 음악과 여자 아나운서의 맑은 목소리는 새 날이 밝았으니 힘차게 다시 시작하라는 진군가로 들린다. 습관처럼 커피 한잔을 사 들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제법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의 행렬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른다. 그들 무리에 눈치껏 끼어들며 마음이 바빠진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서면 첫 사거리의 정지 사인 옆에는 날마다 만나는 스쿨버스가 서 있고, 마음 좋아 보이는 흑인 기사가 먼저 가라고 수신호를 보낸다. 그 흑인 기사에게 손을 마주 흔들어 고마움을 표현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듯 멈추며 오늘을 시작한다. 아침이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아침의 출근길처럼 쫒기 듯 가지 않아도 되는 그 길에서 짐짓 여유를 부려 본다. 동네를 가로 지르는 간선 도로를 따라 천천히 운전하다 만나는 신호등 앞에서 조급함 없이 멈추어 설 수 있어서 좋다.

색색의 장미꽃이 보이던 건널목의 맞은편 꽃집 창가는 며칠 전부터 해바라기 꽃이 듬뿍 담겨져 놓여 있다, 그 빌딩 끝에 렌트 사인을 내걸었던 빈 공간은 키 작은 사내가 페인트칠을 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짧은 반바지 차림의 동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줄 서서 재잘거린다. 봄이 떠난 자리에 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꽃은 피었다. 일상에 길들여지는 사이 나도 모르게 여름 한가운데까지 밀려 와 있었다.

문득, 그 익숙한 일상에서의 경계가 어디쯤일지 궁금해진다. 그것은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이기도 하고, 일과 일 사이의 어떤 공간이기도 하리라. 사람을 얻기도, 또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는 동안 스스로 경계를 허물지 못하고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불행해지고 싶으면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사람 옆에 있으면 되고 행복해 지고 싶으면 행복한 사람 곁으로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한 뼘의 크기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돼지는 죽을 때까지 스스로 하늘을 쳐다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구조상 목뼈가 아래쪽으로 너무 굽어 있어 고개를 들어도 하늘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돼지도 하늘을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 돼지가 넘어져서 뒤집어 졌을 때라고 하니, 뒤집혀 버둥거리더라도 비로소 아름다운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된다면 새로운 세상을 보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때로는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 일상에 익숙해지고 안주하는 동안 새로운 기회를 볼 기회조차 잃고 마는 것은 아닐까? 간혹 뜻하지 않은 곳에서 뒤집어 지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이 세상은 그렇게 뒤집혀야 보이는 세상도 있는 것이다.

고희영 다큐 감독의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해녀들은 숨비와 물숨 사이에서 사는데 그것이 그녀들의 삶이라고 했다. 숨비는 물속에서 숨이 찰 때 수면으로 올라와 내는 소리인 반면, 물숨은 숨비의 순간에 내쉬지 못하고 숨을 삼키는 것이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좋은 물건’ 을 발견했을 때 ‘좋은 물건’ 갖고 싶다는 생각에 숨을 내 쉬는 것을 잊고 숨을 마시는 순간 죽음에 이른다.

욕망을 다스리면 바다는 넒은 품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 죽음에 이르니 바다 속에 들어가 욕심을 다스리는 법, 그것이 해녀들의 경계인 것이다. 그래서 해녀들
은 딸들에서 숨비를 가르치기 전에 물숨부터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처음부터 경계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하루를 살아가며 해를 넘기는 동안 문득 내 안에 있는 가장 가깝고도 먼 곳, 그 안과 밖을 부지런히 선으로 연결해 가며 스스로를 안개 속에 세워 놓고 싶어진다. 더 치열하고 숭고한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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