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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미들아일랜드 컨트리클럽(MICC) 정재균 대표

2015-07-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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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들아일랜드 컨트리클럽(MICC) 정재균 대표

“함께 즐기는 놀이터이자 만남의 장소로 만들고 파”
쉽지 않은 코스...매년 1,2개 홀은 변화주려 노력
장학금.선교.소년소녀 가장 돕기 등 남모르게 선행도

“좋은 골프장이란, 마음 편하게 와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 아닐까요?”

미들아일랜드 컨트리클럽(MICC)의 정재균 대표. 그는 어느덧 골프장 경영 10년차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게 있다. ‘골프장을 편안하고 또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이다. 골프장을 자신의 정원으로 여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정원에서 돈 벌이하는 사람은 없다. 더욱 소중하게 가꾸어 보다 많은 한인들과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뿐인 것이다.



남다른 골프사랑.

그는 1990년 골프에 입문, 구력 25년차이다. 핸디는 12. 자칭 고무줄(?) 핸디다. 싱글이자 보기플레이어. 동반자에 따라 들쭉날쭉 이다. 약자배려와 강자에 대한 승부욕이 그 이유다. 라운딩 때도 스스로에 엄격하고 동반자는 배려한다. 똑같은 규칙도 동반자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한다. 그의 삶의 철학이 그렇다. 약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약자는 계속 바뀌고,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골프사랑도 유별(?)나다. 20년 전 뒤뜰에 벙커와 그린 연습장을 만들었다. 골프를 너무 좋아해서다. 2006년 미들아일랜드 컨트리클럽(MICC)도 그래서 인수했다. 처음엔 27홀 중 9홀 지역엔 주택단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서 물거품이 됐다. 골프장은 개장해야했다. 개발부지에 30톤 트럭 40대 분량의 잔디를 깔아야 했다. 설상가상. 작업 중 폭우가 내렸다. 스프루스 9번 홀 그린을 덮은 잔디가 흘러 내렸다. 언덕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강한 빗줄기보다 더 굵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포기할 순 없었다. 골프애호가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더욱 골프장 관리에 매달린 이유다. 2개의 연못, 아일랜드 그린도 조성했다. 그린과 페어웨이 관리엔 더 신경을 썼다. 클럽하우스, 라커룸, 바와 식당 등의 부대시설 개선에도 나섰다. 10년 동안 꾸준히 변모를 시도했다. 새 모습으로 단장할 수 있었다. 편리하고 편안해졌다.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한다.

그는 “골프장은 부동산 개발로 연결되지 않으면 사업적 측면에서 수익모델이 아니다. 운영자체도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MICC가 우리의 놀이터이자 만남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쏟고 있다”고 자신의 바람을 말한다.

최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곳


그는 미들아일랜드컨트리클럽(MICC)은 각 홀마다의 특징, 좁은 페어웨이에 전장 7,000야드로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 쉽지 않은 골프장이라고 소개한다.
27홀 골프코스는 14개의 클럽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각 홀마다 성격이 다른 특징의 디자인 때문이다. 스프루스 7번 홀은 연못 위에 놓인 아일랜드 그린이 특징. 티샷이 쭉 뻗어야 2온할 수 있다. 독우드 9번 홀은 역 기억자로 꺾이는 페어웨이와 급경사 그린이 독특하다. 오크트리 9번 홀은 페어웨이가 좁고 길다.


골퍼들에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MICC는 샷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다고 생각될 때 기억나게 할 그런 곳이다. 샷이 안정됐을 땐 다신 한 번 긴장을 갖고 샷을 점검하게 만드는 곳인 셈이다. 그는 골프장 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코스가 좋아도 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기 때문이란다. 골프장 점검을 걸아 다니며 꼼꼼하게 살피는 이유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귀띔한다.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는 골프장으로 변모. 이미 조경작업 준비에 착수했다.

매년 1, 2개 홀 정도는 변화를 시도한다. 스파도 갖추려 한다. 숙소는 없어도 온돌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스프루스 9홀엔 라이트시설을 할 계획이다. 야간 골프를 즐기는 기쁨을 선사하려는 마음이다. 그는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하듯이 골프장 대표로서 보다 좋은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한다”고 말한다.

행운과 인연

그는 30대 초반 골프채를 잡았다. 18홀 베스트 스코어는 2오버파. 페스페이지 레드코스서다. 지난해 7월 MICC 독우드 6번 홀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했다. 골프장 주인이면 골프는 원 없이 칠 것이라 생각되지만 일주일 평균 2번 라운딩 한다. 그에겐 골프로 잊지 못할 기억들이 있다. 초보 때 골프사부(?)인 심재화씨 부부와의 라운딩. 장소는 그로싱거 골프장. 그 골프장에 파5 아일랜드 그린이 있어 핸디를 넉넉하게 받았다. 초보에게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 홀에서 행운으로 고수(?) 부부를 꺾었다. 어프로치 샷이 물에 튕겨 그린위로 올라갔다. 부부가 똑같은 방법으로 온 그린을 했다. 덕분에 내기에서 이겼다. 공짜(?)라 장어구이느 더 맛있었다. 행운의 홀인원 공으로 인연 맺은 사연도 있다. 지난해 홀인원 기념으로 공을 제작했다.

이름, 날짜, 장소를 적어 넣었다.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자신도 사용했다. 지난 2월 인니스부룩으로 겨울 골프여행을 다녀왔다. 얼마 후 연락을 받았다. 독일계 남성이었다. 인니스부룩에서 그의 홀인원 기념 공을 주어 자신도 홀인원을 기록했단다. 행운의 공으로 맺은 인연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는 ‘홀인원은 실력보다는 행운이다. 홀인원 기념 공으로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행운이라 생각한다. 골프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역시 행운이 따라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체험을 하게 됐다“며 미소를 짓는다.


직업에 대한 자긍심

그는 1957년 대전에서 2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는 영화를 좋아하는 수재. 중학교 땐 오락부장과 응원단장. 고등학교까진 작은 체구, 대학 땐 고무신 신고 다니는 기행. 학창시설 인생굴곡(?)이 심했다. 군에 가서야 저절로 철이 들었다. 미국은 1982년 유학생으로 왔다.

첫 직업은 샌드브라스팅. 암석으로 깬 모래로 선박의 수리작업을 하는 것. 동부 항구도시를 돌아다니는 힘든 일. 그래서 주급은 좋았다. 1년 후에는 포맨으로 승진했고 5년 정도 다녔다. 1983년 중매로 선을 보고 이듬해 4월28일 결혼. 믿음이 강했던 아내는 목사가 됐다. 2013년 3월3일 뉴욕한마음교회를 개척. 정양숙 담임목사로 첫 예배를 가졌다. 교회 표어는 빌립보서 2장2절 ‘주님과 한마음, 목자와 한마음, 성도간의 한마음’이다. 현재 가족은 결혼한 장남과 막내딸. 며느리와 친손녀 등이다.

그는 1989년 맨하탄 그로잉 델리를 시작으로 한 때는 10여 개 델리를 운영했다. 2000년 객실 280개 규모의 태국 호텔을 인수했다. 현재 뉴욕에서는 2006년에 인수한 MICC와 2개의 델리가게만 알차게 운영하고 있다. 비

즈니스 철학은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잘 벌어서 좋게 쓰는 환원정신 그리고 종업원 신뢰다. 세계 최대도시 뉴욕에서 델리 셀러드바를 운영하며 세계음식문화를 이끌어 간다는 자긍심으로 사업을 이끌어 왔다.

현재 26년 된 타임스델리엔 22년 이상 근무한 외국인 종업원이 4명. 종업원에 대한 신뢰가 낳을 결과다. 비즈니스 환원 방식은 조용하고 다양했다. 그의 지인에 따르면 동네아이들 생일 선물은 꼭 챙겼다. 매년 3명의 동네 장학생에게 장학금도 주었다. 지역노인들이 방범을 자처하고 가게나 나오면 먼저 알려줄 정도였다. 그뿐 아니다. 27년 동안 중국 선교사업도 지원했다, 10여년 넘게 고국고아들도 돌보고 있다.

8명의 소년소녀가장들에게는 대학 등록금도 지급했다. 서울의 불우한 아이들의 점심급식도 수년째 도와주고 있다. 그동안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마음으로 지역주민과 조국의 불우한 이웃과 아이들에게 남들 모르게 선행을 베풀어 온 것이다.
그는 제31대 뉴욕한인회 전후반기 이사장을 역임했다.

지난 달까지 제16기 평화통일자문위원회뉴욕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2004년 식품협회 수석부회장이었다. 이런저런 공로로 2011년 평통위원으로 한국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3년도는 이민자 출신의 성공한 미국 시민에게 수여하는 엘리스아일랜드 상도 수상했다.

그는 “잘 벌어서 좋은 데 쓸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행복할 일이다. 남들을 도와주는 것은 수익 환원차원”이라며 선행 이야기에 대한 질문에는 손사래를 친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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