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칼럼] 김문철 목사 ㅣ 공상허언증

2015-07-0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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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톤 대학의 브린 브라운 (Brene Brown) 교수는 그의 책에서 (The Hustle for Worthiness) 이렇게 말한다: “만일 내가 실제의 내가 아닌, 나와 맞지도 않는 상상속의 나를 좇기 위해 평생을 낭비한다면, 나는 나의 실상 밖에 서 있는 것이고, 결국 허상 속의 자신을 입증하거나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엉뚱한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격이다.”

브라운 교수의 말은 비교, 포장, 그리고 이미지 문화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주 볼 수 있는 증상이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그야말로 실제의 나는 없고 오직 상상속의 나를 사실로 알고 산다. 그래서 상상속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허상을 사실인것처럼 포장해서 선전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런 증상을 공상허언증 (mythomania) 으로 분류하고 있다. 최근 하바드와 스탠포드 대학 합격을 드라마틱하게 그려서 세상을 놀라게 한 한 영재 고교생의 경우도 이 증상과 유사하다. 언론에 드러난 것만 해도 이 학생의 허언증은 지나치다. GPA와 SAT 만점, 최고급 과학경시대회 우승, 교교 수석, 하바드 조기입학이라고 허언한다.


그런데 문제는 주변 동료들이 눈초리를 보내자 이 학생은 멈출줄 모른다. 공상의 사실화를 위해 더 큰 공상들로 대응한다. 그래서인지 SNS에서는 여기 옮기기에 민망할 정도로 이 학생의 허언증을 난도질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왠지 이러한 역반응 또한 병적일정도로 잔인해보인다.

이 학생의 허언증은 분명 병적 증상이다. 증상은 원인치료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결핵치료 없이 기침을 멈추게 할 수 없고, 트라우마치료 없이 과민반응이나 감정마비 상태를 멈추게 할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증상만을 질타하면 오히려 병을 키울뿐 치료는 요원할 수 있다.

환자는 환자로 볼때 치료가 용이하고 질타의 유혹에서 벗어나 이해의 폭을 넗힐 수 있다. 이 학생의 부친이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사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앞으로 가족 모두 아이를 잘 치료하고 돌보는 데 전력하면서…”딸 아이 증상과 원인을 직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학생에게는 잘된 일이다. 아마도 치열한 경쟁, 심리적 압박, 주변에서의 기대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공상증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알콜중독자가“다시는 안 마실거야”를 외치면서도 결국 자기도 모르게 또 술병을 손에 들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기에 이제는 질타보다는 오히려 이 학생이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집단 격려가 필요하다. 허언증은 일종의 관심병이다. 자기 방어병이고 투사병이다. 상처, 수치, 비교, 경쟁심리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해 자기포장 및 자기합리화의 방편으로 나타나는 현상중 하나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우리도 어느정도의 허언증을 갖고 있다. 성형수술 한다고 자녀가 이쁘게 태어날까? 하지만 그렇게 믿으며 행동하지 않는가?“왕년에 내가…”를 자주 외친다고 정말 왕년으로 돌아갈까? 유명인사와 찍은 사진을 자랑한다고 내가 유명인사가 될까?

하지만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불완전한 실상 그 자체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분이다. 심지어 우리의 약함을 강함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불완전함은 수치가 아니라 선물이다.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따라서 신자의 믿음은 공상이 아닌 현실에 뿌리를 내려야 강해진다. 약한 나의 실상을 인정하고 그 실상 속의 나에서 겸손하게 신실한 발걸음으로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 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은혜요 복이다. “…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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