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커뮤니티 미래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크죠”
폭스 뉴스서 뉴욕 한인여성 최초 리포터.앵커로 활약
“기부는 시작”후원금이 늘면 우리 목소리도 늘 커질 것
기금전달뿐 아니라 경영 노하우까지 전수, 파트너십 관계
뉴욕 첫 한인여성 방송국 리포터 출신으로 기부와 봉사의 기회를 창출하며 많은 한인단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있는 뉴욕한인커뮤니티재단(KOREAN AMERICAN COMMUNITY FOUNDATION, KACF) 윤경복 사무총장, 그의 삶을 듣는다.
▲커뮤니티의 미래
“평일에는 뉴욕한인커뮤니티 재단일로, 주말에는 뉴욕시립대 TV 프로그램 제작으로 늘 바쁘다. 연례갈라가 가을에 있다. 아직 날짜가 남아있지만 스피치 할 사람을 비롯, 초청인들의 스케줄을 맞춰야 하고, 나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일이다보니 아무리 바빠도 잘 해내고 있다.”
밝고 명랑한 윤경복 (Kyung B. Yoon), 그에게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충만하다. 윤경복 사무총장을 포함한 5명의 스탭과 19명의 보드 멤버가 재단을 이끌고 있다.
“어느 정도 커졌다가 갈라지는 한인단체가 많다. 미래를 위해서 커뮤니티는 뭉쳐야 한다.
KACF 재단에서 활동하는 2세들이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세대지만 한국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고 있다. 주류사회에서 전문직으로 성공한 2세들이 한인커뮤니티의 미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서 성공한 자들이 자신의 커뮤니티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KACF는 성공한 한인 젊은이들이 모인 단체로 후배들의 멘토가 되고 있다.
KACF가 해온 가장 큰 일은 기부금 모금과 후원금 전달이다. 개인 또는 한국과 외국계 기업의 거액 기부, 하루 1달러 캠페인, 자선골프대회와 여름후원의 밤, 마라톤 및 사이클팀 봉사활동 등으로 기금을 마련한다.
연례갈라 디너에 보통 1,000명 후원자들이 모여 하루 140만달러 상당의 기금을 모금, 한인단체와 아시안아메리칸아동가정연합, 뉴욕아시안여성센터 등에 기금을 전달해오고 있다. 2007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마이클 블럼버그 뉴욕시장도 참석할 정도다.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자급자족을 돕는 비영리 단체를 지원한다. 직접적인 돈을 주어 경영상태가 어려운 단체를 돕자는 것이 아니라 단거리만 보지 않고 5년, 10년, 20년이 지나면 훨씬 발전해 있는 단체의 가능성을 본다. 우리는 한인사회 단체들과 파트너십 관계다. ”
그의 취지는 명확하다.
▲봉사와 기부문화 조성
“2월에 신청서 받고 3월에 언론이나 커뮤니티 리더들, 2세 자원봉사자들이 모인 커뮤니티 그랜트협회 모임을 가진다. 모두 일을 하니까 저녁에 모여서 여러 차례 미팅을 하고 40명이 다시 여러 조로 나누어 단체의 크레딧을 보고 수여후 효과 등에 대한 의견 조율 과정을 신중하게, 투명하게 하고 있다.”
KACF는 한인사회와 미 주류사회 및 아시안계 커뮤니티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한인사회에 봉사의 필요성과 기부 문화 조성에 힘쓰고 있다. “또 비영리기관 전문가를 교육하는 커패시티 빌딩 펠로우십(Capacity Building Fellowship) 프로그램이 있다.
이중언어, 이중문화에 익숙한 전문컨설턴트를 파견하여 각 단체의 예산운용과 기금모금 전략, 정부지원금 신청, 조직관리 등 전문적인 교육을 시킨다. 지난 번 가정상담소와 무지개의 집이 통합되는데도 힘을 보탰다.”기금 전달에 끝나지 않고 경영 노하우를 알려주는 재단의 활동이 주류사회에 한인의 위상을 높이고 영향을 증대시키고 있다.
KACF는 2002년 창립되어 13년 된 발전이 눈부시다. 창립멤버는 윤경복, ABC 앵커 주주장, 황성철 변호사, 지영석 엘스비어 부회장 등 25~35세 전문직 한인 30여명이다. 이들은 당시 조원일 총영사 주최 모임에서 만나 ‘한인사회를 위해 우리도 뭔가 하자’는 의견투합이 시작이었다.
윤경복은 창립멤버, 이사를 거쳐 2008년부터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06년 뉴욕아시안여성센터의 피닉스 어워드, 뉴욕시 특별공로상, 2009년 뉴욕한인회 올해의 한인상, 아시아아메리칸 아동가족연합회의 상, 뉴욕시 ‘도시의 천사상’ 등을 받았다.
▲나는 한국인
“좋은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다. 미국에서 일찌감치 교육을 받았고 메인스트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도 되어 여러모로 축복을 많이 받았다. 하나님이 나의 라이프를 지켜주신다.”
윤경복은 6살에 워싱턴 DC 대사관에서 근무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왔다. 1남2녀의 둘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 한국 문화와 예절에 익숙하고 외교관 자제이니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은연 중 느꼈다. 그것은 1등에서 멀어질수록 성공과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과 통했다. 그는 ‘나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프랑스에서 3년간 있다가 다시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왔고 웨슬리대학에서 영어와 정치학을 공부했고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디벨럽먼트 이코노믹 석사학위를 받은 뒤 월드뱅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87년 WNYW FOX 채널5에 입사하여 95년까지 뉴욕 한인여성 최초의 방송 리포터로, 메인뉴스 앵커로 활약했다. 그 후 다시 월드뱅크에서 2001년까지, 6년 동안 25개국을 다니면서 글로벌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윤경복의 남편은 코넬대와 MIT를 나온 중국계 미국인 조지 왕 변호사로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큰아들은 2015년 코넬대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고 올여름동안 나사(NASA)에서 서머 잡을 한 다음 가을에 코넬대학원에서 엔지니어 분야를 공부한다. 작은아들은 뉴욕대 학생이다.
아내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일을 너무 잘해서 중국계 미국인 남편의 눈치는 안보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활짝 웃는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편은 내가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잘되면 기뻐해준다. 아들들도 장차 커뮤니티 일을 했으면 한다.”
▲많은 이의 동참이 필요
그는 미국식 이름을 쓰지 않는다. 그냥 경윤( Kyung B. Yoon)이다.
“채널 5에 있으면서 부르기 쉬운 미국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주위 의견도 있었으나 많이 생각한 후 경윤으로 하기로 했다. 시청자들에게 한국 이름을 익숙하게 하자 싶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방송 일을 떠났던 그는 2013년 6월 뉴욕시립대 저널리즘스쿨이 운영하는 CUNY-TV프로그램 ‘아시안아메리칸 라이프’에서 매달 프로그램을 만들고 리포트를 한다. 한국과 베트남 입양아를 다룬 프로그램이 올해 에미상 후보로 추천된, 그의 표현대로 ‘판타스틱’한 일을 경험했다.
은퇴 후 서울에 사는 부모님을 뵈러 한국에 자주 가는데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초청 기조연설을 하고 멘토 역할도 한다. “웨슬리 대학 시절에는 장학금이 필요했고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태권도 교관(1단)으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저소득층 여자들에게 호신술을 가르쳤다.”
“매일 익사이팅한 일들이 재미있다. 또 내가 한 일로 인해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리더십을 길러주고 서비스 마인드를 확장시켜주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는 윤경복은 ‘기부는 시작’임을 강조한다.
“뜻있는 이들의 동참이 늘어나면 2세들이 더욱 큰 자부심과 함께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선정된 후원금 단체는 앞으로 사회에 이익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보는 것이므로 어찌 보면 투자이다.”
더욱 발전하는 한인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금 모금 및 전달을 성공적으로 잘 해내고 있는 뉴욕한인커뮤니티재단(KACF)윤경복 사무총장, 그야말로 한인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하겠다. <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