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신문기사와 인터넷을 달궜던 게 한 유명 소설가의 표절 사건이다. 비슷한 즈음에 한 기독교 사이트에서도 한국의 유명 신학자들이 쓴 스테디셀러 책들의 표절을 고발했다. 전자는 한 양심적인 작가가, 후자는 한 침례교 목사가 작정하고 파헤친 노력의 결과물들이었다.
근데 놀라운 사실은, 그 두 개의 사건에서 고발한 표절 부분들이 원작자와의 것들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표절 주인공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 소설가는 처음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시간이 흐른 다음 시인했다. 그런데 그 시인이 매우 우회적인 시인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기억엔 전혀 없는 건데 내용을 보니 정말 그렇군, 식, 요새 많이 떠도는 말처럼 ‘유체이탈화법’식 시인이었다. 신학자들의 반응은 더 다양했다. 무조건 침묵 파, 원 저자에게 허락 받았다 파, 생각의 표절이지 문장 표절은 아니다 파, 그리고 출판사에게 책임 떠넘기기 파 등등.
사실 이런 표절 이슈는 정식 학위 논문 써 본 사람이면 한 번쯤은 고민해 본 문제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이게 진짜 표절의 범주에 들어가는 걸까, 아니면 여기다가도 인용 표시를 꼭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나의 그 아이디어가 어디선가 떠돌던, 어디선가 읽은 거였던, 또 어디선가 들은 것일 수 있는데 그 자료는 도저히 찾을 수 없고, 또 문맥 전개 상 꼭 삽입은 해야 되겠고, 이래서 쓴 내용일 수도 있다.
또 이런 경험도 있다. 최근에 출판한 내 책에서다. 무려 서너 페이지에 걸쳐 나의 주관적인 아이디어에 근거해 이미 써 놓은 건데, 후에 어떤 책을 보니까 그 내용이 비슷하게 거기 다 있는 것이다. 시간상으로 따져 보니까 그와 나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이 크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출판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해 컴퓨터 앞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만 쓰면 적절한 인용구들을 찾아낼 수 있다. 과거엔 그러지 못했다. 한 부분 인용을 위해 도서관에서 온종일 책과 논문들을 뒤적거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찾으면 다행이지만 못 찾아냈을 때의 그 절망감이란 정말 컸다. 이와 관련해 한 학구파 선배 목사님의 과장조의 충고가 생각난다.
인용해야 할 책이 부산의 한 대학 도서관에 있다면 서울에서 거기까지 기차 타고 가라는 거였다. 그래야 표절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정성 있는 논문을 쓴 훌륭한 학자로 평가 받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가만 보면 결국은 모든 게 다 ‘유통’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주관적 논지를 더 확고히 지지 받기 위해, 아니면 상대의 논지를 꺾기 위해 하는 게 인용 작업 아닌가? 결국 글 쓰는 일의 목적은 인용을 통해 모든 아이디어들을 원활히 유통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생각의 유통’을 사명처럼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를 외친다. 사람들이 자꾸 표절, 표절 하지만 결국은 그게 좋은 거라면 꼭 유통시켜야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난 좋은 건 무조건 다 갖다 쓴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유통 전도사이길 자처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것이다. 유통이 진짜 목적이면 유통만 잘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유통한다면서 그게 남의 것 갖다 쓰는 유통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두뇌에서 나온 것처럼 흘리는 게 문제다. 현재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표절 케이스들이 다 여기에 해당된다.
한국 정치권에서 개각할 때마다 감초처럼 등장하는 게 논문 표절이다. 이때 들키게 된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궁색한 변명이 “그땐 다 그랬다(관행이었다)”이다. 이 말은 들켰으니까 이러는 거지 안 들켰으면 그냥 넘어가도 될 문제라는 뜻일 게다. 이처럼 들킨 죄인이 있는가 하면 들키지 않은 죄인이 있다. 표절의 주인공들은 대개 너무 유명해져서 들켜버린 죄인들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물어 볼 일이다. 안 유명해져서 아직 들키지 않은 죄인이 유명해져서 이미 들킨 죄인을 향해 과연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들키지 않았으니 죄가 아닐까? 표절의 추억을 통해 있어야 할 자성의 촉구 내용은 이것이다. 들키든 들키지 않았든 우리는 다 죄인이라는 자성. 물론 들킨 그들이 들키지 않은 우리들보다 훨씬 더 문제의 인물인 건 분명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