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훈 기자의 앵콜클래식] 나타샤의 월츠

2015-06-2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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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부터 국어는 늘 우수했지만, 결코 문인이 되어 보겠다는 꿈을 꾸어 본 적은 없었다. 문학이란 무엇일까? 재능이란 능력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고 싶다는 욕구… 열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진리일 것이다. 문학은 늘 곁에 있으면서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책장 속의 서먹한… 그저 낡은 서적이었을 뿐이었다.

문학과 음악과의 만남… 이런 것이 아마도 이 컬럼을 시작한 이유라면 이유, 동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글을 쓸 때 마다 늘 문학성의 한계가 아쉽게 다가오곤 하지만 만약 ‘ 크로이체르 소나타’ , ‘ 전쟁과 평화’의 ‘ 나타샤의 월츠’같은 작품을 표현해 냈던… 대문호 톨스토이같았다면 어떤 글을 남길 수 있었을까? 톨스토이의 ‘ 전쟁과 평화’는 무척 오래 전, 상당량의 시간을 소비하며 진지한 자세로 읽은 (몇 안 되는)소설 중의 하나였다. 작품성은 물론 (읽은 바)최고였고,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면… 모든 면에서 대문호의 면모를 엿보이에 손색이 없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작품에는 어딘가 동기부여라고나 할까… 체험의 리얼리티가 빠진 것이 옥의 티라면 티였다.

톨스토이는 왜 이런 작품을 남기게 되었을까? 이 작품은 개인의 필연적 의식의 분출(체험)… 페이소스의 감동이 전혀없다. 여기에 묘사된 인물만도 근 6백여명… 호머의 ‘ 일리아드’와 비교될만큼 인류 최고의 (전쟁)서사시로 꼽아 손색이 없다는 ‘ 전쟁과 평화’ 였지만 과연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가 권할 만큼… 누구나 꼭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세기의 명작이기는 한 걸까? 소설이란 명예욕, 과대망상의 놀음일 뿐이라는… 톨스토이의 말년 고백은 어딘가 그의 작품 (전반)을 그늘지게 한다. 톨스토이는 후에 사상변화를 겪고 소설 무용론을 주장하게 되는데(이는 영화 ‘ The Last Station’에서도 그려져 있음) … 아무튼 톨스토이의 철학… 그 변덕이야 어떻든, 작품(의 구성) 하나만 올곧게 따지자면 ‘ 전쟁과 평화’만큼 대단한 작품도 드물 것이다.


특히 톨스토이란 인물이 얼마나 묘사력의 천재였는가 하는 것이 ‘ 나타샤 월츠’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이 장면은 결코 단순한 문장이 아닌, 극도의 예리한… 예술 전반에 대한 통찰력과 감수성이 없이는 그릴 수 없는, 인류 최고의 문학이라는 평에 부족함에 없다. (전쟁과 평화 전권는 아니래도 이 장면은 꼭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음) ‘ 전쟁과 평화’는 1956년 오드리 헵번 주연으로 파라마운트 사에 의해 영화화됐는데 1977년 리바이벌 됐을 때, 이 영화는 원래 2시간짜리에서 두 배 가까이(3시간 15분)로 훨씬 늘어나 있었다. 변두리의 어느 2류 상영관 이층에서 홀로 고독을 씹으며 이 지루한 영화를 끝까지 봤었는데, 순전히 (영화음악)‘ 나타샤의 월츠’가 흐르는 장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이 펼쳐져 가는데, 굳이 영화 속의 주인공을 꼽자면 나타샤, 피에르, 안드레이 등 3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이상형의 여인으로서 티 없이 맑고 발랄하며… 피에르와 안드레이는 톨스토이 자신의 야누스적인 모습을 그렸다 해도 무방하다. 어수룩하지만 인간적인 피에르… 사명감에 투철한 군인이자 신사인 안드레이… 이 두 톨스토이의 분신들은 삶, 사랑… 모든 부분에서 실패하지만, 결국 나타샤에 의해 구원받게 되는데, 나타샤의 지극한 간호 속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는 안드레이의 임종 장면은 영화의 길고 지루한 여정 속에서도 가장 감명 깊으며, 피에르 또한 안드레이의 사망 이후 나타샤를 사랑하면서 새 삶을 찾아 간다. 이야기는 문득 피에르란 인물이 결국 나타샤의 사랑을 성취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지만, 이야기의 하일라트는 뭐니뭐니해도 안드레이와 나타샤와의 운명적인 (사랑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 순간… 만남의 시발점이 되는 장면이 바로 ‘ 나타샤의 월츠’라는 이 작품의 정점이다.

문학은 삶을 풍요로운 정원으로 이끌어 준다. 그러나 삶이란 (그대를 속일지라도…) 문학으로만 규정하기에는 너무 큰 도박… 각본 없는 연극이다. 삶이란 때때로 홍역처럼… 신앙과 신비에의 열망… 그리고 음악도 필요한 법이다. - 음악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유쾌한 것이다 -<레후 톨스토이> 우리 시대의 로망… 추억의 영화관을 생각하며 ‘ 나타샤의 월츠’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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