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장>
갑작스러운 메르스 바이러스의 발병으로 한국사회는 불안과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름의 바이러스는 한 달이 다 되도록 진정되지 않더니 급기야는 4차, 5차 감염으로 이어져 지역사회에 전파 되고 있다.
일부 병원들이 자진 또는 강제적으로 폐쇄 되었으나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방송되는 모든 뉴스의 첫 머리는 어디에서 몇 명의 새로운 감염자가 나왔고 몇 명이 격리 되었으며, 또 몇 명이 이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했는지 상세히 보도 되었다. 한 여름 무더위에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의 무표정한 모습과 눈에 띄게 한산해진 시내 곳곳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의 불안한 사회상황을 전했다.
이국땅에 살며 한국에서의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내 형제들이 그곳에 살고 있고, 특히 이 바이러스에 취약하다는 노인 세대가 다름 아닌 우리의 병약한 부모님들이기 때문이리라. 혹시라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사는 지역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뉴스를 보다 문득 학창시절에 읽은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비에 갇혔던 지난주일, 서재 한 구석에 꽂혀있는 빛바랜 책 한권을 찾아 내려왔다. 소설의 무대는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해안에 자리한 오랑이란 도시이다. 이야기는 의사 리유가 목격한 쥐 한 마리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지는 페스트로 주민들은 허무하게 죽어가며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정부는 그것이 페스트임을 알게 된 후 도시를 폐쇄한다.
환락에 빠지는 사람, 미래가 두려워 자살하는 사람, 문을 닫아걸며 스스로를 유폐하는 사람 등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에서는 오랑을 방문했다가 재앙을 만나 갇히게 되자 외부로 탈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는 기자 랑베르를 통해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병과 정면 대응하는 의사 리유와 지식인 타르를 통해 희망을 읽게 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신념과 의지대로 처해진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고자 한다. 결국 뜻을 가진 몇몇 사람들의 사투로 병은 사라지고 도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작가 까뮈가 소설 ‘페스트’를 통해 이야기 하는 것은 질병이라는 극한 상황을 통해 맞서 싸우는 여러 유형의 인간을 제시하여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페스트는 다름 아닌 인간이 처한 한계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작가 까뮈는 이러한 상황을 ‘부조리(不條理)’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무의미하게 죽어 가는 일이야말로 허무한 일이며, 용기 있는 인간은 이에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의사 리유가 페스트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통해 악과의 처절한 싸움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소설 ‘페스트’를 다시 읽으며 그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현재의 한국의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 되어졌다. 동시대를 살며 악에 대응하고 반응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삶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리라. 오늘도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으며 격리된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애쓰는 의료진들이 있어 희망을 읽는다. 자신의 한계와 맞서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혹시라도 내가 소설 속의 기자 랑베르는 아닐지 돌아볼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 모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평범한 일상이 주는 편안함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껴지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