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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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집착·압박에 ‘멘붕’

2015-06-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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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진단-‘하버드·스탠포드 가짜 합격’파문

부모들 기대에 못 미쳐 스트레스 누적
가짜 대학생활.시험장 폭발물 설치 소동
성공 지상주의 잘못된 성공의식 버려야

’천재 수학소녀’로 화제를 모았던 한인 여고생이 하버드대와 스탠포드대에 동시 입학 허가를 받은 사실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 파문<본보 6월11일자 A3면 보도>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인사회에 만연해 있는 소위 ‘아이비리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른바 명문대 진학 압박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공부 스트레스로 인해 일부 한인 학생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거짓말을 동원하거나 학교에 폭발물 위협을 하고 심지어 자살에까지 이르는 등의 사건이 한인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인 부모들과 사회 전체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한인 학생들이 아이비리그 명문대 생을 가장한 사기극을 벌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에도 미 서부 지역에서 알아주는 명문고를 졸업한 한인 여학생이 8개월간 거짓으로 스탠포드대 학생 행사를 하며 기숙사 생활까지 해오다 결국 학교당국에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당시 김양은 스탠포드에 입학 허가를 받은 적이 없는 가짜 대학생으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생물전공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으며 교과서를 구입하고 학사일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들과 함께 밤을 세워가며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 김양의 친구들은 조용한 성격의 김양이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명문대 진학을 원하는 부모의 강요와 압력이 부담이 돼 이중생활을 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2013년 12월에는 워싱턴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심리학과에 재학중이던 한인 남학생이 성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기말고사를 피하기 위해 폭발물 설치 허위신고 이메일을 보냈다 연방 수사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한인 전문가들은 이 같은 명문대 사기극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한인사회에 만연해 있는 일등 지상주의와 성적 중심주의와 같은 교육 병리가 극단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뉴욕 차일드센터 아시안 클리닉의 윤성민 디렉터는 "김 양의 경우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학업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 자기애착심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부정 상태에 빠졌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습관적인 거짓말로 이어진 것으로 짐작된다"면서 "자기방어기재에 의해 거짓말하는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는, 결국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정신건강협회(KABHA)의 배영서 회장도 "이민사회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강박 관념과 생존 본능이 자녀들에게 ‘100점 만점’을 강요하는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며 “한인 부모들은 내아이가 무엇을 잘하는지 함께 고민하기 보다 일방적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성공한다’는 식의 잘못된 주입식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 회장은 특히 "한인 학생들과 부모들을 함께 상담해보면 대부분 아이의 능력치와 부모의 기대치에 큰 간극이 존재함을 찾아볼 수 있다"면서 "부모들은 자신들의 기대와 강요를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 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 하지만 자녀들은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결국 성적표를 숨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이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기보다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같은 눈높이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회적 위치’ ‘체면 위주’의 한국적인 생각을 버리고 아이의 진정한 행복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천지훈·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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