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훈 기자의 앵콜클래식] Romantic Rhine

2015-06-1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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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제일 알아 주는 차는 독일제이다. BMW, 벤츠 등은 아무리 비싸도 무조건 O.K.이고… 아우디니 폭스바겐 등도 수입차 중에서는 제일 잘 나가는 차종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마도 독일제품의 우수함, 그 장인정신을 높이 사는 차원이겠지만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어딘가 독일을 모범 국가로 생각하는 선입관(?)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독일의 철학… 독일의 예술… 독일의 과학… 독일의 우수한 교육… 우리도 한번 독일처럼 살아보자… 이를 악물고 라인강의 기적을 흉내내며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지만… 막상 캘리포니아에 와 보니… 이러한 독일적인 것에서 해방된 분위기가 가장 좋았다(?).

우선 날씨부터가 한국과는 달리, 우충충한 독일과는 달라서… (?) 좋았다. 거리를 나가 봐도 학교를 가 봐도, 어디서나 자유롭고도 풍만한 발랄함을 마음껏 뽐내는 라틴 여인들의 향긋한 perfume향이 어딘가 감추어진 자유의 본능… tropical한 행복을 마음껏 누려도 좋다는 신호탄인 것만 같아 설레이기조차 했다.


교정에서 은근히 윙크를 보내 오는 라틴 여학생들에게 정신을 팔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지만 그것은 회색칠로만 가득한 캔버스 위에 발랄한 남극의 오렌지 색채가 더 해진 듯한 젊음의 활기였다고나할까? 그때, 삶의 철학조차 일백팔십도 바뀌어 버린 것은, (어차피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기에) 그 변덕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그러나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자정이 지난 신데렐라처럼… 젊음의 과한 야상곡… 그 잔치가 그 자체로 절망이기도 한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젊음이란 꿈이 과하기에… 그라운드 제로… 그 현실은 또 얼마나 큰 절망이기도 한가?

마치 하얀 부라우스 사이로 파여진 눈부신 부라 속에 감추어진 플레이걸의 정체처럼… 젊음이란 경직된 우울… 독일 예술과도 그렇게 먼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도 젊음이 안겨준… 그 산물이었다면 산물이었을지 모르겠다.

만약 지휘자가 될 수 있다면, 멋지게 지휘해 보고 싶은 곡 중의 하나가 바로 슈만(1810-1856)의 라인 교향곡일 것이다. 왜? 가장 독일적인 음악이라는 생각때문이다. 무엇이 독일적인 것일까?

화려하지 않은 고뇌… 내면적이고 풍부한 맛… 초월적인 매력… 이런 것을 빼놓고 독일 예술을 말하긴 힘들 것이다. 독일을 말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바리안의 역사일 것이다.

치열한 저항정신, 불굴의 용기… 독립정신… 독일 민족은 합리적이고 검소하며, 질서와 문화를 사랑하며… 근면 성실의, 장인 정신이 투철한 민족으로도 알려져 있다.특히 독일이 남긴 여러 문화적 유산중에서 아마도 음악 분야가 가장 자랑스러운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독일 전 국토를 가로질러 흐르는 아름다운 라인을 보고 슈만이 멋진 교향곡을 탄생시킨것도 우연만은 아닐 테지만, 라인은 결코 지휘하기가 그렇게 만만한 곡이 아니다.


특별히 강렬하다거나 화려한 멜로디로 가득한 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독일적인 절도가 지켜지지 않으면 이 교향곡은 말그대로 ‘ 로맨틱 라인’으로 흘러버리기 쉽다.

라인강을 흔히 Romantic Rhine이라 명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름다운 풍광때문만이 아니라 과거 로마인(Roman)들이 라인강을 이용하여 서유럽 쪽으로 물류를 이동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한다.

노이슈바인슈타인, 라인슈타인, 센브르그 등 아름다운 성들이 즐비한 중 라인 유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흐르는 길이가 장장 1,232㎞(766ml)에 이른다고 한다.

자기를 잘 내세우지 않는 체면문화… 내성적인 민족일수록 어쩌면 지나친 자기 억제의, 스트레스의 결과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인격으로 흐르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괴로우나 슬프나 혹은 과하거나 부족할 때에도 늘 승화시킬 수 있는, 독일이 일본과 다른 점은 음악이 있었다는 점이었는지도 모른다. 독일을 가로질러 흐르는 라인의 그 깊고도 사나운 물살처럼… 어쩌면 그리 낙천적이지 않으며, 자기 부정적인 독일민족… 음악은 그 민족이 헤쳐 나가야 했을… 그 사나운 물결의 (운명적)예감 속에서… 어쩌면 신이 내려 준 가장 큰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과묵하지만 강하고 야성의 생생한… 그런 독일적인 교향곡 연주는 없을까?

라인이 간직한 신비… 그것은 어쩌면 아직 한번도 맘에 드는 연주를 들어보지 못했기에… (독일정신을 아쉬워하며)이 곡을 한번 지휘해 보고 싶다는… 주제넘은 망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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